세입자 안나가면 졸지에, 1주택자도 억대 세금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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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0.22. 오전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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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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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계약갱신청구권…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 터져나와
직장인 A씨는 5년 전 경기도의 한 아파트를 4억원에 샀다. 서울 출퇴근이 어려워 이 집을 전세 주고 회사 근처 셋방에 살았는데 최근 경기도 아파트를 9억원에 팔고 실거주 목적으로 서울 아파트(12억원)를 장만했다. 그런데 당초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가기로 했던 경기도 아파트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실거주하려던 매수인과 계약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계약 걱정만 하던 A씨는 새 주택을 구입한 뒤 1년 내에 기존 주택을 팔지 못하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망연자실한 상태다. 세무사에게 물어보니 양도세, 취득세 부담이 2억3000만원 이상 늘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픽=김성규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해 임대인, 임차인, 매수인 간 갈등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A씨처럼 세금 문제로 전전긍긍하는 1주택자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양도세, 취득세는 기존 집을 1년 내 처분할 것을 조건으로 비과세 등 혜택을 주는데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1년 내 처분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당과 정부는 지난 7월 31일 계약갱신청구권을 핵심으로 하는 새 임대차보호법을 통과시켰다. 임차인이 전세 계약 만료 전 6개월~1개월 사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그 집에서 2년 더 살 수 있고 집주인은 실거주 등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이를 거절할 수 없다.

세무사들은 “최근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된 세금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안 그래도 부동산 세금 부담이 크게 늘고 요건도 복잡해졌는데 갱신청구권 변수까지 생겨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1주택자도 양도세 비과세 못 받을 가능성

계약갱신청구권의 위력은 막강하다. 자칫 잘못하면 1주택자도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주택자가 새 집을 사서 이사할 때(이하 서울, 경기 등 조정대상지역 내 이사 기준)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기존 집을 1년 내에 팔아야 한다. A씨 사례에선 경기도 집을 1년 내 팔아야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작년 12월 부동산 대책으로 처분 기간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되고 1년 내 전입 요건도 생겼다. 그런데 경기도 집에 살던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하면 2년을 더 살 수 있게 돼 1년 내 처분 요건이 위태롭게 된다. 오랫동안 1주택으로 살다가 새집을 사 이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취득세도 문제가 된다. 1주택자는 기존 집을 1년 내 팔아야 취득세 중과를 피할 수 있는데, 기존 집에 살던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1년 내 처분이 어려워져 취득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1년 내 기존 집을 팔면 1주택자로 1~3%(주택 가격에 따라) 취득세만 내면 되는데, 못 팔면 2주택자가 돼 취득세율이 8%로 뛴다. 예를 들어, 서울의 10억원짜리 집을 살 경우 취득세 부담이 3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훌쩍 뛰는 것이다.

잘못하면 종부세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종부세는 매년 6월 1일을 기준으로 재산 상황을 따져 세율을 매기는데 연초 이사를 가려던 사람이 6월 1일까지 기존 집을 처분하지 못할 경우 1가구 2주택자가 돼 그해 세율이 크게 뛰게 된다.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에 은행이 대출을 꺼려 집 살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금난에 빠지기도 한다. 우병탁 신한은행 세무사는 “은행권의 경우 보통 세입자가 나가야 대출을 내준다"며 “갱신청구권이 도입되면서 대출을 받아 살 수 있는 집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결국은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만 세입자가 있더라도 집을 살 수 있는 것"이라며 "서민들이 돈을 빌려서 집을 사는 게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꺼리면서 전세 매물은 더 줄어들고 서민들 주거난은 가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남기 방지법'에 공인중개사들 반발

국토부는 뒤늦게 세입자가 사는 집을 팔 경우 매매 계약서에 세입자의 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명시하도록 하는 ‘홍남기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경기도의 한 공인중개사는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어떤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계약서에 쓰겠느냐”며 “혼란은 정부가 만들어놓고 책임은 (매매를 중개하는) 공인중개사에게 미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한 갱신청구권이 지금 와서 보니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방해하고 1주택자의 주거 이전의 자유를 사실상 침해하고 있다”며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계약갱신청구권이 ‘권리금청구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원준 한화생명 세무사는 “세입자들이 갱신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수천만원씩 위로금(이사비)을 요구하는 일이 관행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석 기자 com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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