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도 ‘공유’하지만 폐업도 속출… 이 ‘착한 경제’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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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7.15. 오전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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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공유경제 확산


’공유 부엌’과 ‘소셜 다이닝’을 운영하는 ‘진구네 식탁’에서 1인 가구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는 모임을 하고 있다. 진구네 식탁 제공


▶ 집, 자동차, 오피스를 공유하다 이제는 옷도, 부엌도, 재능도 공유하는 시대가 됐다. 더 이상은 ‘소유’할 필요 없이 함께 나눠쓰면 되는 공유경제는 미래 경제가 나아갈 착한 경제, 대안경제로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쪽에선 공유경제를 내세웠던 업체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 공유경제의 미래는 어디로 가게 될까.


1인 가구를 위한 부엌공유에서
드라이하는 법 등 재능공유까지
비싼 물건 공유하는 이익중심에서
‘가치’도 나누는 공유경제로 확대

패션공유는 수익성 악화로 폐업
카풀업체는 규제벽에 부딪혀 고전
“다양한 실험·시도 계속되고 있어
기존 산업과 다른 제도 적용해야”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의 한 옥탑방. 한쪽에는 여러 취사 도구와 요리 도구가 갖춰진 부엌이 있고, 다른 쪽에는 6~8인석의 넓은 식탁이 있다. 이 옥탑방에서는 한 달에 한번, 광진구에 사는 학생과 직장인 등 1인 가구들이 모여 함께 요리를 만들고 식사를 나누는 모임이 열린다. 참가비는 음식 재료비와 공간 대여비다. 음식을 같이 만들어 보는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 1인 가구로 살면서 겪은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고 싶은 사람, 동네에서 친구를 만들고 싶은 사람, 혼자 밥 먹기 싫은 사람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이 모임은 지난해 8월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임에는 최소 4명부터 최대 10명까지 참여한다.

이 옥탑방과 모임은 1인 가구를 위한 ’공유 부엌’과 ‘소셜 다이닝’을 표방하는 업체 ‘진구네식탁’에서 관리한다. 업체에서 직접 모임을 개최하기도 하고, 시간당 사용료를 받고 공간만 빌려주기도 한다.

진구네식탁 대표인 대학생 이지수(25)씨는 “광진구에서 1인 가구로 살면서 가장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이 식생활이었다. 해결 방안을 찾고 싶어 소셜다이닝을 먼저 시작했다. 이후 모임이 없을때도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 부엌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셜다이닝이나 공유부엌은 단순히 음식이나 식재료를 공유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함께 밥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 감정을 함께 공유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탈잉’은 개인의 재능을 오프라인 수업(튜터-수강생) 형태로 매칭해주는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능공유업체다. 현재 2000명 이상의 튜터와 5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잉여탈출’의 줄임말로 잉여 시간에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2016년 2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인생샷 찍는 법, 항공권 싸게 끊는 법, 문과생을 위한 정보통신기술, 셀프로 머리 드라이 하는 법 등 배우고 싶지만 현실에선 학원을 찾기 힘든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공유하자는 취지다. 재능 공유 플랫폼은 탈잉 외에도 ’크몽’, ’숨은 고수’ 등이 있다. 취미 활동을 함께 할 사람을 이어주는 플랫폼인 ‘프립’, ‘2교시’도 인기다.

공유경제 바람이 일상 속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숙박, 자동차, 고가 물품 등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최근에는 경험이나 재능, 가치 등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업체들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기존 업체들과의 갈등, 규제의 벽에 부딪혀 폐업하는 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공유경제의 미래가 장밋빛만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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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중심 공유’에서 ‘가치 공유’까지


공유경제란 ‘생산된 후 활용되지 않는 유휴 자원을 여럿이 공유해 사용함으로써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궁극적으로 사회 공동의 이익 증가에 기여하는 협력적 소비의 경제활동’(케이티 경제경영연구소)을 의미한다. 자동차, 사무실, 숙박 등의 유형자원뿐만 아니라 재능, 시간 등 무형자원도 공유대상이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교수가 최초로 사용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세계 공유경제 시장 규모가 2010년 8억5천만 달러에서 2015년 150억 달러로 5년 사이 17.6배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또 2025년에는 3350억 달러로, 10년 사이 약 20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에서 공유경제는 ‘공유 오피스’ 시장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토종 선두 기업인 패스트파이브가 2015년 4월 1호점을 열었고, 2016년 8월 글로벌 업체인 미국의 위워크가 강남역점을 열며 국내에 진출했다. 대기업들의 공유오피스 시장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현대카드가 2016년 강남에 스튜디오블랙을 열었고 지난 4월에는 한화생명이 서초사옥에 드림플러스 강남을 열었다. 엘지(LG)서브원의 공유오피스도 최근 양재에 들어섰다. 지난해 600억원 규모였던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은 2022년에는 77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서울의 공유오피스 면적은 지난해 약 14만㎡로 3년 전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넓어졌다. 최근 공유경제는 가격이 비싼 자산을 공유해 합리적으로 이용하자는 관점의 공유경제에서 재능과 경험 등 가치 중심의 공유경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케이티 경제경영연구소의 ‘정보통신기술로 도약하는 가치 중심 공유 경제’ 보고서(2016년)에 따르면, 공유경제는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번째는 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합리적으로 ‘사용’하자는 ‘이익 중심’의 공유경제다. 비싼 가전, 자동차, 설비 등을 렌탈료를 받고 사용권을 빌려주는 렌탈산업, 고가의 자동차나 주택을 공유하는 우버나 에어비엔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조업체 중심의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방식(B2C)이 주를 이룬다.

두번째는 경제적 합리성 너머의 ‘가치’를 중시하는 공유다. 진구네식탁처럼 만남이라는 가치를 위해 남는 부엌과 식탁이 활용되거나, 탈잉처럼 비싼 자산이 아닌 시간, 재능 등을 공유한다. 개인간의 거래 방식(P2P)이 주를 이룬다. 이익중심의 공유경제가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윤 극대화를 통해 가치를 추구하는 개념이라면, 가치중심의 공유경제는 먼저 가치를 추구하고 그에 이윤이 수반되는 구조다. 돈 대신 가치를 추구해 오히려 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케이티 경제연구소 나현 연구원은 “비싼 물건을 서로 공유하는 관점의 공유 비즈니스들은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으로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가치 중심의 공유 비즈니스는 공동체에 필요한 가치를 중심으로 자발적 참여자를 모으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기존 비즈니스가 보지 못했던 틈새 시장과 유휴자산의 활용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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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패션공유 업체는 어디로


패션 공유 서비스로 인기를 끌었던 ‘프로젝트앤’은 지난 5월 폐업했다.
지난 1월 회사원 박아무개씨는 주변에서 ‘코트 부자’로 불렸다. 매주 새로운 코트를 입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코트 중에 박씨가 ‘소유’한 코트는 하나도 없었다. 박씨는 전국의 누군가와 코트를 ‘공유’하는 중이었다.

당시 박씨는 에스케이플래닛이 만든 ‘프로젝트앤’이라는 패션공유서비스에 가입해 있었다. 2016년 9월 만들어진 이 서비스는 누적 가입회원 40만명(이하 2018년 3월 기준), 이용권 판매 3만3000건을 기록했다. 프로젝트앤은 모바일 앱을 통해 9만9천원짜리 월 정액권을 끊어 한 달에 옷 4벌을 빌릴 수 있었다. 원하는 옷을 골라 입은 후, 새로운 옷과 교환하면 되고 세탁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몸에 맞는 사이즈를 차지하긴 쉽지 않았다. 빨리 클릭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먼저 차지했다. 더구나 겨울코트 같은 고가의 옷을 빌릴 때는 회비가 아깝지 않았지만 봄이 되면서 얇은 옷을 입게 되니 회당 2만5000원꼴이어서 남들과 공유하긴 돈이 아깝게 느껴졌다. 자라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는 2~3만원이면 티셔츠나 니트를 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박씨는 세달 만에 패션 공유 서비스를 해지했다. 지난 5월 박씨는 친구의 결혼식에 입고 갈 원피스를 빌리려고 다시 프로젝트앤을 찾았다. 하지만 홈페이지에는 “서비스가 종료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공유경제의 확산 한편에선 문을 닫는 공유비지니스 업체도 있다. 특히 한때 우후죽순 생겨났던 패션 공유서비스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프로젝트앤과 유사한 패션공유 서비스였던 윙클로젯, 원투웨어, 코렌탈 등도 1년여만에 문을 닫은 상태다. 에스케이플래닛 쪽은 프로젝트앤 폐업에 대해 “회사의 주요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물류·유통·제품 확보 등 초기 투자 비용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최신 디자인을 저가에 유통하면서 의류 구입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에 옷을 공유하려 사람이 많지 않다. 그만큼 패션공유비지니스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공유경제가 지속가능한 비지니스 모델로 자리잡기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국내 대표적인 카풀 서비스인 ‘풀러스’는 지난달 기존 대표이사가 사임하고 직원 70%를 해고했다.
패션공유가 수익성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면, 국내 승차공유 서비스들은 규제와 기존 사업자들과의 갈등에 발목이 잡혔다.

승차 공유 서비스(카풀)를 제공하는 ‘풀러스’는 지난달 기존 대표이사가 사임하고 직원 70%를 해고하면서 사실상 서비스를 접는 분위기다. 풀러스 외에 국내 대표적인 승차공유 서비스들도 하나둘 서비스를 접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버스 공유 스타트업 ‘콜버스’는 전세버스 예약서비스 업체로 바뀌었다. 카풀 3위 업체였던 ‘티티카카’는 서비스 출시 5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2016년 5월 창업한 풀러스는 약 1년 만에 회원 수 75만명을 확보하고, 누적 이용 건수도 약 370만건에 이르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후 네이버와 에스케이 등에서 총 220억원을 투자 받기도 했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곤 이들의 영업을 금지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하 운수법)의 벽에 부딪혔다.

운수법은 ‘영업용 자동차가 아닌 자동차, 즉 자가용을 돈을 받고 운송용으로 제공하거나 임대 또는 알선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면서 출퇴근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풀러스는 운수법상 ‘출근’ 시간을 오전 5시~11시, ‘퇴근’ 시간을 오후 5시~다음날 오전 2시로 정해 그 시간 동안만 카풀을 제공했다. 그러나 법에는 ‘출퇴근 때’가 언제인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규정돼 있지 않다. 출퇴근 목적이면 시간대가 상관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최근 유연근무제 등이 확산되면서 특정 시간대만 출퇴근 때라고 지칭하기 어려워지고 있기도 하다. 풀러스도 이 부분을 파고들어 지난해 11월부터는 24시간 동안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자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풀러스가 운수법을 위반했다며 경찰에 고발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나서서 규제 개선안을 찾고자 했지만 “차량 공유 사업은 불법”이라는 택시 기사들의 반대가 높아지면서 논의는 좀처럼 진행되지 못했다. 풀러스의 경영난은 심해지기 시작했고 구조조정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버’, ‘에어비앤비’ 등 세계적인 공유 경제 기업들도 유독 국내시장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우버’는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2년도 안 된, 2015년 3월 사실상 사업을 포기했다. ‘에어비앤비’가 불붙인 공유 숙박업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공유 숙박업을 따로 관할하는 법이 없다. 이 때문에 국내 도심 지역의 에어비앤비는 도시민박업 규정을 적용받아 외국인 손님만 받을 수 있다.

음성원 에어비앤비 미디어 총괄담당자는 “공유경제는 ‘착한 경제’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공유경제는 저성장 시대에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라며 “산업의 특징상 남는 자원 활용 등을 통해 친환경적인 결과물이 나오고, 한 자원을 여러 명이 나눠쓰다 보니 서로 간에 예의를 지키는 등 순기능이 결과론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유경제를 착한경제로만 이해할 경우 전체 산업 중 일부만 인정하게 되어 산업 자체가 커지긴 어렵다”며 “국내에선 공유 경제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계속 되고 있는데, 기존의 전통적 사업영역과는 다른 규제와 제도를 만들어야만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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