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상의 오지랖] 시계 하나로 정치권 폭풍 일으킨 이만희…‘대통령 시계’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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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04. 오전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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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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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차고 나온 ‘박근혜 시계’ 진위 논란
“가짜다”, “진짜다” 공방속 특정정당 연관설 등 계속 시끌
여당은 “그것봐라, 신천지와 통합당 관련있는 게 아니냐”
통합당은 “저열한 공작정치…그 저의가 의심된다” 반격
이런 모든 게 권력무상 ‘대통령 시계’ 정치학과 관련 커
박정희·김영삼·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모두 제작
‘박근혜 시계’ 놓고선 한때 선거법위반 여야공방 일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총회장이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 연수원 ‘평화의 궁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총회장의 손목에 청와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시계가 보이고 있다. [연합]


독자 여러분께 퀴즈 하나 내려한다. “태어났을때 하늘 높은줄 모르고 인기를 얻지만, 다섯살이 되면 그 가치가 뚝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즉 태어날땐 금값이었다가 다섯살이 되면 헐값이 되는 것은 뭘까요? ”.

정답은? ‘대통령 시계’다. 보통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시계’를 제작한다. 청와대는 이 시계를 청와대에 방문하는 사람 또는 각종 행사때 귀빈에게 기념품으로 준다. 만드는 갯수는 비밀이다. 통상 수천개에서 만여개 정도 제작한다는 게 통설이다. 적으면 5000개, 많으면 1만개 정도 만든다는 것이다.

이 시계는 고가는 아니고, 더더욱 스위스 명품시계 같이 초고가는 아니다. 그냥 평범한 시계다. 그러니 시계 하나 얼마나 하겠나. 하지만 받는 사람은 일반시계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이 일반제품과 다른 것은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문장과 대통령 친필 사인 등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시계를 받는 사람은 단순한 시계 이상의 가치를 느낀다. 대범하거나 올곧은 사람은 그렇지 않겠지만, 권력에 민감한 사람이나 대통령과의 친소관계에 연연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계를 받으면 우쭐대는 것을 많이 봐 왔다. 청와대로선 수천, 수만개 중 하나를 줬을뿐인데, 이를 놓고 대통령과 친하다는 등 ‘권력 근처에 가 있다’는 냄새를 내며 거드름을 피우는 이도 적지 않은 것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감독 데이빗 핀처) 영화를 오역한 이들이다. 마치 영화처럼 ‘시계’ 하나면 시간을 거스러 올라가 청춘의 힘을 되찾고 권력 근처로 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이들일 것이다. 대통령 시계가 가끔 모조품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근데 간과해선 안될 게 있다. 대통령 시계의 유효기간은 정확히 3~4년을 못간다는 점이다. 정부출범 초기 막강한 권력으로 인해 대통령 시계는 상한가를 치지만, 임기 3~4년후 레임덕이 찾아오면 그 대통령 시계를 손에 차고 있는 사람 거의 보지 못했다. 대통령 권력이 크고 정점에 달했을때만 그 시계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대통령 권력이 하늘을 찌를때는 손목에 그 시계를 차고 활발하게 악수하지만, 그 권력이 추락했을때는 재빨리 손목에서 시계를 빼 그 흔적을 지우는 게 보통이다. 손목에서 뺀 그 시계는 서랍장 어디, 아니면 베란다 짐박스에 내팽겨진채 담겨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대통령 시계는 권력무상이랄 수 있다. 권력과 함께 그 가치가 요동치는 대통령 시계는 그래서 ‘허무한 시계’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대통령 시계가 갑자기 정치권 이슈의 정중앙에 부상했다. 코로나19 확산의 기폭제로 꼽혀온 신천지의 이만희 총회장이 지난 2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에게 엎드려 사죄할때 왼쪽 손목에 반짝반짝하는 시계가 보였기 때문이다. 언론은 그걸 ‘박근혜 시계’라고 했다. 시계엔 분명 ‘박근혜’ 석자가 새겨져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시계를 만들었고 그해 8월15일에 독립유공자 등에게 선물한 바 있다. 그 시계에는 봉황 무늬와 박 전 대통령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다. 언론들은 당장 호들갑을 떨었다. 이 총회장이 그걸 차고 나온 의도에 집중했다. 코로나19 확산 위기감을 초래한 신천지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국민들께 백배사죄하는 현장에 그 시계를 차고 나온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얼마뒤 그 시계는 ‘박근혜 시계’는 아니라는 주장들이 나왔다.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에 몸담았다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가짜 박근혜 시계’라고 확인해줬다는 뉴스가 쏟아지면서 그 진위 공방은 불이 붙었다. 당시 그 시계를 제작했다는 업체도 직접 나서 진짜 박근혜 시계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진위 설전은 그치지 않고 있다.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평화의 궁전에서 지난 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만희 총회장이 큰절하고 있다. 왼손 손목시계가 명확히 보인다. [연합]


그렇잖아도 신천지와의 연관성 루머에 시달려온 미래통합당 인사들의 반발이 컸다. 이 총회장의 시계를 둘러싼 얘기 자체가 ‘공작정치’라고 반발했다. 김진태 통합당 의원은 개인 논평을 통해 “이 총회장이 논란의 시계를 차고 나온 것 자체가 저열한 정치공작”이라고 했다. 그는 “현 정권에서 살인죄로 고발당한 사람이 박 전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나 이렇게 박근혜와 가깝고 야당과 유착돼 있다는 것을 알렸으니 (여권에 보내는) 나 좀 잘 봐달라’는 메시지 아니었겠느냐”고 했다. 차명진 통합당 전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만희는 가짜 박근혜 시계를 차고 나와 자신을 잘못 건드리면 여럿이 다칠 수 있음을 암시했다”고 그 저의를 의심했다.

야당의 얘기엔 일리가 있기는 했다. 이 총회장은 기자회견 내내 시계를 부각시키는 듯한 자세를 계속 취했다. 국민에 사죄를 한다며 큰 절을 할때도 각도상 손목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반팔 와이셔츠를 입었는지, 아니면 와이셔츠 소매를 걷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손목은 분명하게 노출됐다. 사진기자들이 주목할 수 있는 포즈도 여러번 나왔다.

여권은 대조적인 반응을 내놨다. 이 참에 신천지와 일부 정당의 연관성을 샅샅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이 총회장과 신천지 측은 특정 정당과의 유착 관계에 대한 국민적 의혹에 대해 명백한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한다”고 한게 대표적이다. 이 총회장이 ‘박근혜 시계’를 차고 기자회견에 임한 것을 보고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모태인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와 신천지 관련성에 대해 공세를 취한 것이다. 즉 신천지와 미래통합당 연관설에 대한 세간의 온갖 루머를 재차 거론한 것이다.

이처럼 시계 하나로 정치권은 진흙탕 공방의 쑥대밭이 됐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을 다시 양분시킨 ‘이만희 시계’의 위력(?)은 역대 대통령 시계의 역사와 그에 따른 잡음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대통령 시계의 원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게 정설이다. 역대 대통령 중 손목시계를 만들어 기념품을 처음으로 돌렸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978년 12월27일 제9대 대통령 취임식과 관련해 선물용으로 시계를 마련했다. 손목시계를 선물한 이유가 흥미롭다. 박 전 대통령은 이보다 앞선 7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2583명) 중 2578명이 참가한 간접선거에서 2577표를 얻어 당선됐다. 1명 빼고 몰표를 준 것이다. 당연히 일부 언론은 의구심을 보냈고, 비판 여론이 조성됐다. 박 전 대통령으로선 이를 무마할 ‘당근책’이 필요했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날인 12월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고 ▷통행금지 해제 ▷고궁 무료 개방 ▷대규모 수감자 석방 등의 부정여론 전환용의 선심책을 썼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시계도 제작해 나눠줬다. 이 ‘박정희 시계’에는 봉황 마크와 대통령 친필 사인이 새겨졌다. 이후 이것은 대통령 시계의 표본이 됐고, 거의 같은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 시계를 받은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접고 우호적 눈길을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때부터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시계를 돌리는 일은 관례가 됐다.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평화의 궁전에서 지난 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만희 총회장이 퇴장하며 취재진을 향해 엄지를 치켜 세우고 있다. [연합]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도 기념시계를 만들었다. 전 전 대통령 시계 일부는 스위스제품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노 전 대통령 시계는 봉황마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눠져 공급됐다고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시계를 아예 대량으로 공급했다고 한다. ‘김영삼 시계’는 ‘대도무문(大道無門) 시계’로도 유명하다. 시계 앞면에는 한자 이름인 ‘金泳三’을 넣었고, 뒷면에는 평생의 좌우명이었던 대도무문 글자를 넣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92년 대선 선거 과정에서 이 시계를 대량으로 뿌렸고, 이에 금권선거 논란이 뒤따르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부로서 의미있는 역사적 사건을 새겨 시계를 만들곤 했다.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한 글귀를 시계 뒷면에 새긴 게 대표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시계를 만들었고, 그 시계 케이스에 권양숙 여사의 이름을 함께 넣은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계는 ‘MB 시계’로 불렸다. 이 시계는 이 전 대통령의 취임 초부터 가짜가 유통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시계’가 여러가지 말이 많자 처음엔 만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각계의 요청에 따라 제작했다. 하지만 이 시계 역시 논란을 일으켰다.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2014년 1월 새누리당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에게 남녀 손목시계 5쌍씩 2400여개를 선물했다. 일주일 뒤 당시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당협 위원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 시계를)어렵게 받은만큼 잘 활용하라”고 했다. ‘활용’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긴 했다. 당장 민주당은 이것이 선거운동용 금품을 뜻하기에 선거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며, 선관위에 질의서를 보내는 등 강력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시계는 흰 바탕, 동그란 모양, 베이지색 가죽 줄로 남녀용 시계를 각각 제작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봉황과 친필 서명은 예전 것과 같으나, 뒷면에 ‘사람이 먼저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신천지 총회장의 기자회견과 그 내용, 사과 장면 보다도 더 화제가 됐던 손목에 찼던 시계 논란은 어쩌면 해프닝일 수 있지만, 역대 대통령의 시계에 담긴 권세와 추락 등 ‘화무십일홍’을 생각해보면 그냥 웃을 수만은 없어 보인다.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 분)은 자신의 삶에 대해 시간이 갈수록 청춘을 맛보긴 했지만 결국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통령 시계는? 이것 역시 거꾸로 가든, 앞으로 가든 권력무상, 인생무상을 대표한다. 권력 주변에 어슬렁거리며 자신의 완장을 과시하고, 최고 권력의 열매를 조금이라도 주워 먹으려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대통령 시계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이 총회장 처럼 언젠가 누가 또 ‘대통령 시계’랍시고 들고 나올지 모를 일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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