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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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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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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송별시 -이황

 

(이 시를 옮기기 전에  먼저 밝혀둘 것은 퇴계와 하서는 성균관에서 함께 수학하면서 퇴계가 9살 위였지만 서로 오랜 벗처럼 존중하였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도 나타나지만 조정에 나가 관직에 있으면서도 그랬다. 퇴계가 나이가 많으므로 하서의 호칭을 '그대'라고 설정하고 약간 내림말로 옮겼으니 이해 바란다.)

 

-김인후가 부모봉양을 이유로 휴가 허락을 얻어 떠나자 송별하며

 

그대는 북해에 산다는 '곤'물고기가 변하여 하늘로 날개를 드리우는 것을 보이려 않네. 

구만리 쌓인 바람을 어찌 마침내 맞아서,

밑에 있는 자질구레한 메추라기 무리를 물리쳐,

느릅나무에 부딪쳐 땅에 떨어지게 하면 모두 참으로 즐겁다 않겠는가?

또 빼어난 박넝쿨이 열매를 맺어 다섯섬들이가 되는 것을 보이고,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면 넓다랗고 얕아서 못쓰는 걱정을 원치 않으며,

심지어 어찌 큰배가 되어 강과 호수에 띄워지기조차 원치 않는가?

장자가 살아서 심대한 뜻을 이루지 못하리라 웃으며 물리치네 그려.

내가 지난날 그대와 더불어 반궁(성균관)에서 노닐 적에, 

한마디로 서로 도가 맞아 기꺼이 사귀었지.

그대는 세상살이가 빈 배와 같음을 알았고, 

나는 흩어진 나무 같아 저력(잡목)처럼 쓸모없다 믿었지.

부귀영화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은 것, 

우연히 얻었을 뿐 내가 구한 바는 아니었네. 

바람과 구름처럼 감격하여 만나야 할 때에

조당의 인재들이 낌새를 알고 시류를 따라,

은혜와 영화에 맞게 마땅히 할 바를 그르치네.

세월은 어지러울 기미가 있고 파란이 예상되는데,

도산동에서 공부하며 좋은 책을 보지 못하고,

나의 이는 이미 쇠하고 그대는 막 한창인데,

뽑고 가리고 닫아걸고 열어제끼고 깊숙히 갈무리하며,

세상을 다스릴 지모와 크나큰 나라의 문장으로,

뜻을 펴보여서 조정을 조화롭게 하고 어지러워지는 것을 막아,

나라 부엌에서 귀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고 나라의 살림살이를 지키고 늘려야 하지 않겠는가?

옛사람이 이미 말하기를 감당할 수 없다 했는데,

하물며 어찌 내가 능력이 있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지 않겠는가?

가을바람 소슬하게 한강에 부는데

나는 밤마다 높은 벼슬과 이상 사이를 꿈꾸며,

높은 벼슬과 이상이 오히려 나를 막히게 하는데,

바닷길 산길 천리에 그대는 먼저 가네 그려. 

그대는 부모를 봉양하고 싶다고 말하며,

고향 현감자리를 얻어 유유자적하며 따로 살펴야할 곳이 없으니,

사람이 살면서 얻을 수 있는 낙을 그대는 얻었네.

양친이 다 계셔서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집마당에서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니,

만사를 제치고 이 것이 어찌 도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고관자리가 온다 해도 티끌같이 여겨,

구름을 희롱하는 그림인 듯 부러워하지 않네. 

꼭 지휘하는 대장깃발을 움켜쥘 필요는 없지.

그대는 참으로 바위를 갈아엎고 이미 이름을 떨쳤네.

조정에 직을 유지하며 은거하면 도를 아끼는 것이 아니지.

꼭 알아야할 것은 왕도는 본래 없느니,

벼슬자리에 오래 있는 것을 이상스럽게 여기지는 마시게.

돌아가는 그대를 송별하자니 내 머리를 긁게 되네.

그대를 위하여 노래를 부르고 맛은 없지만 술을 내었으니, 

서로 생각하며 자주 서신을 보내기로 하세.

나의 시를 이런대로 선물하니 뛰어나진 않아도 천금처럼 여겨주시게.

 

<送 金厚之修撰 乞假歸覲仍請外補養親 恩許之行(송 김후지수찬 걸가귀,뵐-근,인할-잉청 외보양친 은허지행)> /이황

 

君不見鯤魚化作垂天翼(군불현곤어화작수천익) 

九萬摶風竟奚適(구만,모을-단풍,마침내-경해,맞을-적)

下有區區斥鷃輩(하유구구척,메추리-안배)  

搶楡控地皆眞樂(창유공지개진락)  

又不見魏瓠種成實五石(우불현,나라이름-위/빼어날-외과종성실오석) 

不願爲瓢憂濩落(불원위표우,퍼질-호/익을-확락) 

何況作尊浮江湖(하황작준부강호) 

卻笑莊生未甚達(물리칠-각소장생미심달)

我昔與子遊泮宮(아석여자유반궁) 

一言道合欣相得(일언도합흔상득) 

君知處世如虛舟(군지처세여허주)  

我信散材同樗櫟(아신산재동,가죽나무-저,상수리나무-력) 

富貴於我等浮雲(부귀어아등부운)

偶然得之非吾求(우연득지비오구) 

風雲感激偶一時(풍운감격우일시)  

玉堂金馬接跡追時流(옥당금마접적추시류) 

恩榮合沓謬所當(은영합,겹칠-답,그르칠-류소당) 

歲月紛綸閱江浪(세월분륜열강랑)  

道山同讀未見書(도산동독미견서)  

我齒已衰君方壯(아치이쇠군방장) 

抽玄關發奧藏(추현관발오장) 

經世謀猷兮賁國文章(경세,꾀-모,꾀-유혜,클-분국문장)  

旨賜宮醞塵飛鞚(뜻-지사궁,빚을/조화할-온진비,재갈-공)  

珍分御廚廩繼倉(진분어주,곳름-름계창) 

昔人已云不敢當(석인이운불감당) 

矧余焉能不愧顔(하물며/잇몸-신,나-여,어지-언능불,부끄러울-괴,얼굴-안)  

秋風蕭蕭吹漢水(추풍소소취한수) 

我夢夜夜白石靑雲間(아몽야야백석청운간) 

靑雲白石我尙阻(청운백석아, 오히려/더욱-상,막힐-조) 

海山千里君先去(해산천리군선거) 

君言欲作反哺烏(군언욕작반포오) 

乞得專城有蟹無監處(걸득전성유,게-해무감처) (*專城之養전성지양: 한 고을의 원으로서 그 어버이를 봉양奉養하는 일)

人生至樂君有之(인생지락군유지)  

具慶堂前舞綵衣(구경당전무채의)  

此外萬事何足道(차외만사하족도) 

儻來軒冕如塵微(빼어날/갑자기-당래,초헌-헌,면류관-면여진미) 

不羨圖凌雲(불선도릉운)  

不須擁旌麾(불수,낄-옹,기 -정,기-휘)  

子眞巖耕名已振(귀하/스승-자진,바위-암,밭갈-경명이,떨칠-진) 

原憲蓬居道非吝(원,법/관청-헌,쑥-봉거도비,아낄-린) 

須知王式本不來(수지왕식본불래) 

莫怪邴曼終  難進(막,괴이여길-괴,고을이름-병만종 난진)  

送君歸搔我首(송군귀,긁을-소아수) 

爲君歌薄薄酒(위군가,엷을-박박주) 

相思莫惜寄玉音(상사막,아낄-석기옥음:편지) 

我詩聊贈千金帚(아시료증천금,비-추:弊帚千金폐추천금-몽당비를 천금인 양 생각한다는 뜻)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29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33세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하서 김인후(金麟厚, 1510~1560) 등과 교유하였고, 조광조의 직계 제자는 아니었으나 노수신을 통해 조광조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해 관직을 사퇴하고 귀향도중 김안국(金安國)을 만나 성인군자에 관한 견문을 넓혔다. 34세에 다시 문과에 급제, 37세에 내간상(內艱喪)을 당하자 향리에서 3년간 복상하였고, 39세에 홍문관수찬이 되었다가 곧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임명되었다. 43세에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먼저 낙향하는 친우 김인후를 한양에서 떠나보내고, 수찬 김후지(김인후의 자)가 휴가를 얻어 귀성하는 것을 전송한 시가 있으니, 이 무렵부터 이퇴계는 관계를 떠나 산림에 은퇴할 결의를 굳힌듯, 그 해 10월에 성균관사성으로 승진하자 성묘를 핑계삼아 사가를 청하여 고향으로 되돌아 갔다. 을사사화 후 병약을 구실삼아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46세(1546)가 되던 해 향토인 낙동강 상류 토계(兎溪)의 동암(東巖)에 양진암(養眞庵)을 얽어서 산운야학(山雲野鶴)을 벗삼아 독서에 전념하는 구도생활에 들어갔다. 이때에 토계를 퇴계(退溪)라 개칭하고,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

본관 울산. 10세(1519)에 현사 조원기, 기준 등을 만났고, 김안국, 박상, 송순, 최산두 등에게 도학과 문학을 배웠다. 18세(1528)때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였고, 21세(1531)때 성균관 사마시에 오른 뒤 이황 등을 만나 도학을 토론하였다. 30세(1540)때 승정원 부정자가 되었고, 명망있는 사림으로서 평가되었다. 홍문관 정자 겸 경연 전적,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 설서를 맡아 세자를 보도하였다. 이때 세자가 그려준 ≪묵죽도≫ 한폭과 김인후의 화제(畵題)는 군신 사이의 모범적인 정의(情誼)라고 칭송되었다. 홍문관 부수찬 겸 경연 검토관으로서 조정의 기강과 습속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 뒤 기묘년의 현사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도록 주청하였고, ≪소학≫과 향약(鄕約)의 필요성을 진술하였다.

 그 뒤 부모 봉양을 이유로 옥과현감으로 부임하였다가 중종이 죽고 인종마저 죽자 실의하여 35세(1545)때 관직에서 물러났다. 을사년 이후 관직에 전혀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소쇄원, 면앙정, 식영정, 환벽당, 풍영정 등에서 문사들과 교유하는 등 호남시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소쇄원48영>, <면앙정30영> 등은 누정미학의 구도를 그려낸 작품으로 그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다. ‘靑山도 절로절로 綠水도 절로절로 / 산 절로 물 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라는 <자연가>에서는 순리적인 인생관을 나타내고 있다. 제자로는 조희문, 양자징, 유경렴, 변성온, 정철, 기효간, 남언기, 오건 등이 있다. 문묘에 배향되어 동국 18현에 추존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正). 저서로 ≪하서집≫ ≪백련초해≫ 등이 있다. 

 

* 반포지효(反哺之孝) : 미물인 까마귀의 보은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극진한 효도를 의미한다.

* 까마귀는 몸이 검어서 눈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여 새 조(鳥) 자의 눈 부분의 한 획을 생략해 까마귀 오(烏)자가 되었다. 

까마귀는 한자로 오(烏)이지만 한편, 자오(慈烏), 효조(孝鳥), 반포조(反哺鳥 : 은혜갚는 새)로 불린다. 까마귀는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주어 키워준 것을 기억하고 어미가 늙으면 반대로 먹이를 물어다 준다. 이처럼 어미를 되먹이는 까마귀의 효성에서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나왔다. 

 

송별시의 첫머리는 장자의 '소요유'를 인용한 것이다.  

자(내편) 제1편 소요유(逍遙遊)  

절대 자유: 변화와 초월, 求同尊異

1. 가치 기준의 틀

1-1)<물고기와 새: 크기,변화,목적>

http://blog.naver.com/himoon25/220048759793 

1-2)<하늘색: 관점의 차이> 

1-3)<겨자씨와 술잔> 비교: 기준의 차이 

1-4)<매미와 비둘기> 비교: 안식의 차이 

1-5)<수명: 小大之辯> 견줌:  

1-6)<无所待者 无窮: 无+己,功,名> 초월 

http://blog.naver.com/himoon25/220386143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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