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암 ‘장점마을의 비극’… “비료공장 발암물질 관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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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6.20. 오후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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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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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역학조사 연구결과 발표
전북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이 지난해 11월 8일 전북도청에서 마을 인근 비료공장의 불법폐기물 은폐 의혹을 수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전북 익산시의 장점마을에서 벌어진 집단 암 발병 사태가 인근 비료공장에서 배출된 발암물질과 관련이 있다는 최종 연구결과가 나왔다.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죽음의 땅’으로 변한 지 18년 만이다. 그 사이 마을 주민 99명 중 22명이 암에 걸렸다. 이 중 14명은 세상을 떠났다. 주민 건강영향 조사는 비료공장이 2017년 문을 닫은 뒤에야 시작됐다.

장점마을의 비극은 2001년 마을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비료공장 ‘금강농산’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공장을 가동하자 심한 악취가 마을을 뒤덮었고 공장 인근 저수지는 새까맣게 변했다. 주민들은 익산시에 수차례 고통을 호소했지만 ‘문제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2010년에는 저수지 물고기들이 집단 폐사해 둥둥 떠올랐다. 생활용수로 사용하던 지하수에도 기름이 뜨고 악취가 난다는 말이 돌았다. 주민들이 공장 입구를 막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공장은 변함없이 돌아갔다. 2016년 상반기까지 비료공장은 익산시로부터 단 한 건의 행정처분도 받지 않았다.

주민들 사이에선 하나둘 암에 걸렸다는 사람이 늘었다. 60세 이상 고령자가 40%를 차지하는 시골마을이지만 그 수가 심상치 않았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지역 시민단체와 손잡고 본격적으로 비료공장 문제를 알리기 시작했다. 마을 대책위가 만들어지고 기자회견과 토론회 등이 이어졌다. 여론을 감지한 익산시는 뒤늦게 불법시설 점검과 오염도 조사에 나섰다. 2016년 9월부터 악취방지법, 폐기물관리법 위반 등 비료공장의 불법행위가 줄줄이 적발됐다. 대기배출시설에선 특정대기유해물질인 니켈이 법적 허용 기준보다 4.7배 초과 검출됐다. 시는 결국 2017년 4월 폐쇄 명령을 내렸다. 공장은 그해 11월 문을 닫았다.

비료공장이 들어선 후 암에 걸린 주민은 2017년 12월 기준 22명이다. 14명이 사망했고 8명은 여전히 투병 중이다. 주민들이 2017년 4월 청원한 주민건강영향조사는 지난해 1월에서야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민간용역기관에 의뢰한 역학조사다.

국립환경과학원은 20일 주민설명회를 열고 “장점마을 주민들에게 나타난 피부암, 담낭암 등은 인근 비료공장에서 나온 발암물질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원에 따르면 비료공장 내부와 장점마을 주택에선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PAHs)와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 등이 검출됐다.

TSNAs가 검출된 건 해당 공장이 유기질비료를 생산할 때 불법으로 연초박(담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찌꺼기)을 혼합해 사용했기 때문으로 조사됐다. 건조 과정에서 연초박 내 각종 발암물질이 연기를 타고 주민 건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원 측은 “표준화 암발생비를 분석한 결과 장점마을은 기타 피부암, 담낭 및 담도암 등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료공장이 폐업해 가동 당시 배출량과 노출량을 파악하기 어렵고, 소규모 지역에 대한 암 발생 조사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주민설명회에선 정부가 ‘일부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인과관계가 있다’고 발표하지 않아 주민들과 논쟁이 빚어졌다.

환경부는 익산시에 주민 건강 모니터링 등을 요청하고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피해구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이날 논평을 내고 “금강농산 부지에는 불법폐기물 1444㎥가 매립되어 있다”며 “익산시는 비료공장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 행정대집행에 나서 폐기물을 처리하는 동시에 ‘오염토양복원사업’ 추진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퇴비에 연초박을 사용하는 것이 환경적으로 안전한지, 소각처리에서 다량의 니코틴 배출로 인한 환경 영향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추가 조사를 통해 관리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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