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교전국 터키에 "韓입국제한 풀어달라"…성급한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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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07. 오후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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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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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文대통령,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상 통화
외교가, "터키, 시리아와 열흘 전부터 교전 상태"
"입국완화 요청, 타이밍·내용 모두 부적절" 지적
미국도 터키에 여행자제·여행금지 구역 설정
102개국 입국금지·제한에 외교부 성급한 판단


7일 오전 현재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서 표시된 터키 관련 여행정보 상황. 진한 청색 지역은 2단계 여행 주의, 적색 지역은 시리아와 교전으로 인해 여행금지 직전 3단계인 `철수권고` 지역이다. 외교가에서는 최근 터키와 시리아 간 교전 상황이 벌어진 시점에서 양국 정상 간 통화가 이뤄진 점을 두고 외교부와 청와대 참모들이 통화 시점을 부적절하게 잡아 보고를 올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 =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
"기업인들 간의 필수적인 교류에 지장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항공편 재개도 적극 검토해 달라."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통화를 하며 양국 간 중단된 직항편의 운행 재개를 요청한 것을 두고 외교가에서 "시점 상 부적절한 제안이었다"는 아쉬운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열흘 전 터키가 접경국 시리아 정부군과 전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교전국 정상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민 입국제한을 풀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은 시점과 내용 모두 성급했다는 것이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6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이날 오후 5시부터 20여분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통화를 하며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터키 측의 대한국 입국제한 조치를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터키 보건부는 지난달 29일 자정부터 코로나19 예방책으로 터키-한국, 터키-이탈리아 및 터키-이라크 간 모든 출발 및 도착 항공편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이스탄불발 인천행 항공편이 취소되는 등 혼란이 잇따랐다. 터키 정부는 사전에 체류 허가증을 받아야 한국인 입국을 가능토록 한 상태로 입국 심사 과정에서는 코로나 증상이 의심될 경우 시설격리 혹은 입국을 거부할 수 있다. 사실상 한국을 상대로 입국금지를 취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전격적인 통화는 터키가 중동 지역 내 한국의 핵심 교역국이자 현대자동차·LG전자·포스코·CJ·현대로템·효성·KT&G·만도기계 등 160여개 한국기업이 활동하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터키 정부가 지난달 말 갑작스럽게 양국 간 직항편을 봉쇄하고 체류 허가증을 요구하면서 한국 기업인들의 터키행에 제동이 걸렸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직항편이 최근 모두 사라지면서 한국에서 터키로 가려면 에미리트항공이나 카타르항공을 이용해 두바이·도하 등 제3국 도시를 경유해 가야 한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이 전세계에서 겪고 있는 고충을 헤아린 정상 간 통화라 해도 최근 터키의 불안한 정세를 고려할 때 통화 시점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시리아 정부군의 공격으로 자국군인 33명이 사망하자 다음날 '봄의 방패'라는 작전명으로 시리아 정부군과 교전을 시작했다.

교전 지역은 양국 국경이 중첩되는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 주로 문 대통령과 통화 이틀 전인 지난 4일 교전이 최고조에 달했다. 터키 국방부는 다음날 "지난 24시간의 교전으로 시리아 정부군의 탱크 4대, 다연장로켓 5대, 대전차무기 3기, 군용차량 8대, 기관총 차량 2대, 장갑차 2대 등을 파괴했으며, 정부군 184명을 무력화했다"고 발표했다.

외교부 사정에 밝은 전직 고위 관료는 "문 대통령의 통화 취지는 기업 애로사항을 고려한 조치라는 점에서 십분 이해가 간다"면서도 "통화 당일 상황은 결과적으로 전쟁을 지휘 중인 외국 정상에게 한국인들을 그 나라에 더 많이 입국시켜 달라고 하는 모순을 낳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관계자는 "이날 외교부 장관이 대통령 통화와 별개로 외교부 청사에 주한 외국 대사들을 대거 불러 대한국 입국 제한을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이날 상황을 종합하면 외교부가 대규모 입국제한을 풀기 위한 욕심에 터키 정상과 우리 대통령 간 통화 시점을 부적절하게 잡은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강 장관이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 주한 외교관들을 대거 불러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완화하거나 해제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타이밍이 적절치 않았다는평가다. 강 장관은 이틀 전인 지난 4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 "스스로 방역 능력이 없는 나라들은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외교적 결례'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강 장관 스스로 '방역 능력이 없는 나라'로 거칠게 지목한 국가의 외교관들을 이틀 뒤 외교부 청사로 불러서 아쉬운 요청을 한 모양새가 어색했다는 평가다.

한편 7일 오전 현재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서 터키는 시리아 간 무력충돌로 인해 여행금지 직전 3단계인 '철수권고' 지역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해당 지역은 터키 동남부 일대인 가지안테프·디야르바커·마르딘·반·바트만·비트리스·빙골·산리우르파·시르낙·시르트·엘라지·킬리스·툰셀리·하카리 및 시리아 국경 10km 이내 지역이다.

같은 시각 미국 국무부는 한국 외교부가 '철수권고' 지정한 지역을 3단계 경고인 '여행 재고'로, 터키-시리아 국경, 터키-이라크 국경 일대에는 최고 4단계(여행금지)를 적용했다.

문 대통령이 에르도안 대통령과 통화를 하기 하루 전인 지난 5일에는 주터키 한국대사관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됨에 따라 일부 유럽 등지에서 중국인 및 동양인에 대한 경계와 혐오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며 "터키 내 우리 국민들께서는 이를 상시 유념하시고 신변안전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유의사항을 공지하기도 했다.

■6일 한·터키 정상 통화 전 터키 정세 흐름

△2월 26일 : 터키군, 시리아 정부군 공격으로 33명 사망

△2월 27일 : 터키군, 작전명 '봄의 방패'로 시리아에 반격

△3월 4일 : 터키군, 시리아 정부군과 교전 가열

△3월 5일 : 터키 국방부, "시리아군 200명 무력화" 발표

△3월 5일 : 주터키 한국대사관, "신변안전 주의 기울여달라"

△3월 6일 : 文, 터키 대통령에 "한국인 입국제한 완화해달라"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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