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규의 7전8기]학자금, 청춘들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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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5.15. 오후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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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한국은행이 지난 3월 16일 기준금리를 0.75%로 전격적으로 인하했다. 이른바 빅컷(big cut, 큰 폭의 금리인하)을 단행한 것이다. 그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사태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로 인해 물가, 성장률, 금리 등 경제지표가 모두 '제로(0)'로 수렴하는 '제로 이코노미(zero economy)' 시대가 도래하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의 직격탄은 대학생도 피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청춘들의 취업이 녹녹치 못하다. 더욱 목을 죄는 것은 학자금 대출이다. 통계에 의하면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청춘이 약 1만 명에 육박하고, 1만 7000 명이 취업 이후에도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학자금 대출은 대학생에게 학자금을 대출하고 그 원리금은 소득이 발생한 후, 즉 취업을 한 이후에 소득 수준에 따라 상환하도록 하는 대출이다. 이는 현재의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여, 개개인에게는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사회적으로는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이다. 이러한 도입취지에도 불구하고 학자금 대출은 대학 졸업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금의 총액 자체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학자금 대출의 질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 졸업 후 학자금 대출 원리금을 연체하고 있는 수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신규채용의 감소는 이러한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신용회복위원회도 연체된 학자금 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이자율을 낮추거나 변제기의 연장 등)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 등의 대책들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어 쌍방 사이에 합의가 되지 않거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실효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주목해 볼 수 있는 것이 법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개인파산절차와 개인회생절차다. 법원에서 진행하는 절차는 법적인 절차로 채무조정에 반대하는 채권자를 포함한 모든 채권자에게 효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한 구제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개인파산절차에서 학자금 대출은 면책이 되지 않는다. 학자금 대출이 면책되지 않도록 한 것은 학자금대출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다수의 국민이 지속적으로 학자금대출제도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학자금 대출 재원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 학자금 대출 재원은 다수의 국민이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계속적으로 사용돼야 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금을 회수해 재원을 유지하는 것은 학자금대출제도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므로 면책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회생절차에서는 학자금 대출에 대해 면책을 받을 수 있지만, 면책을 받으려면 원칙적으로 3년간 가용소득(소득에서 생계비를 제외한 금액) 전부를 변제에 사용해야 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춘들에게 3년은 짧은 기간이 아니고, 가용소득 전부를 변제에 투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결혼과 출산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도 학자금대출채권은 개인파산절차나 개인회생절차에서 모두 면책되지 않는다. 다만 채무자와 가족이 과도한 곤경(undue hardship)에 처하게 되는 경우 예외가 인정된다. 이른바 "Brunner Test"라 부른 것으로, ① 채무자에 대하여 학자금대출의 상환이 강제된다면, 현재의 수입과 지출에 기초하여 최소한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없고, ② 이러한 상황이 학자금대출상환이 필요한 기간 중 상당한 부분 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추가적인 상황이 존재하며, ③ 채무자가 학자금대출을 상환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한 경우에는 면책이 허용된다.

우리도 개인회생절차에서 변제가 어려운 경우 면책을 허용하는 특별면책제도가 있으므로 법원은 학자금대출채권도 면책을 적극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개인파산절차에서는 미국의 실무운용을 참고해 일정한 경우 학자금대출채권에 대한 면책을 허용하는 법 개정을 통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청춘들은 미래의 중요한 인적자산이다. 김난도 교수의 말처럼 아프니까 청춘일까, 아니면 청춘이니까 아픈 것일까. 어느 것이건 청춘들의 아픔은 치유해 줘야 한다.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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