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탈출했는데…법무부는 아프간인보다 장관이 주인공

입력
수정2021.08.27. 오후 5:35
기사원문
김동현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기자들에 '취재 허가 취소' 운운하며 장관 인형 전달식 촬영 요구
방역 이유로 취재구역 한정됐는데…장관 찍어야 하니 "이동하라"


박범계 장관 설명 듣는 아프간 사람들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2021년 8월 26일 오후 인천공항에 입국하던 중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법무부가 26일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하는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가족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취재 허가 취소'를 언급하며 박범계 장관 촬영을 요구해 빈축을 샀다.

사지에서 탈출해 먼 길을 날아온 아프간인들을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자리를 옮겨 장관의 '인형 전달식'을 취재해 달라고 한 것으로, 아프간 협력자보다 장관 홍보에 더 신경을 썼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보안구역에서는 방송카메라와 사진기자들이 막 입국한 아프간인 협력자와 가족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보안구역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기에 사전에 허가받은 취재진이 취재 내용을 다른 기자들과 공유하는 '풀'(pool) 기자로 들어갔다.

외교부는 수송기 좁은 공간에서 11시간을 넘게 비행한 아프간인들이 극도로 피로하고 예민한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고려해 정해진 구역에서 취재하고 무리한 근접 취재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한창 입국하는 아프간인들을 취재 중인 기자들에게 법무부 직원들이 다가왔다.

27일 당시 공항 취재를 했던 기자들에 따르면 법무부 직원은 장관이 입국심사대 앞에서 아프간인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하고 인형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하니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취재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기자단을 대표해 아프간인 입국 장면을 촬영하러 왔다며 이동하지 않았다.

법무부 직원들이 계속 장관 취재를 요구하면서 기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공항 취재를 우리가 허가했는데 이렇게 협조를 안 해주면 허가를 안 해줄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급기야는 돌연 '여기는 방호복을 입은 사람만 있을 수 있는데 기자들은 입지 않았으니 여기 있을 수 없다. 장관 행사장으로 이동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전까지 문제 삼지 않았던 사항으로, 외교부는 풀 기자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방호복 착용을 요청한 적이 없다. 법무부 직원들도 방호복을 입지 않았다.

목소리가 커지자 상황을 목격한 외교부 직원들도 개입했고, 결국 기자들은 입국심사대로 이동하는 아프간인 취재를 위해 자리를 옮기면서 박 장관의 인형 전달식도 함께 취재했다.

박 장관은 지친 아프간인들을 세워두고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이다. 코로나 때문에 여러분과 악수하고 싶지만 그렇게 못 해서 미안하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날 상황에 대한 연합뉴스의 입장 문의에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아프간 특별입국자 입국 심사 과정 지켜보는 박범계 장관
(서울=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프간 특별입국자 입국심사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2021.8.27
[법무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bluekey@yna.co.kr

기자 프로필

연합뉴스 워싱턴특파원입니다. 미국의 주요 소식을 신속하고 친절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문의나 제보, 따끔한 지적 이메일 환영합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정치, 세계,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