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구

李惠求

한겨레음악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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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음악학자·비올라 연주가. 서울대 음대 교수. 서울 당주동(唐珠洞) 출생. 호는 만당(晩堂).

출생 - 사망 1909년 ~ 2010년

어려서 바이올린을 좋아했던 셋째 형 이민구(李敏求)를 통해 서양악기를 알게 됐고, 1920년 보통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사준 오르간을 익혔다. 1924년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3학년 때 바이올린을 배워 호만 3권까지 배웠다.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영문과로 진학하여 예과(豫科) 2학년 때 생긴 성대(경성제대)오케스트라에서 다케이 교수(첼로)·다케이 교수의 부인(피아노)·김성진(바이올린)·도시마·김영택·윤태림(바이올린)·최승로·강형철·양철환(클라리넷)·박건원(트롬본)·모리카와(트럼펫) 등과 함께 오케스트라곡을 연습했다.

졸업 후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의 제2방송국에 취직해 음악·연예·어린이 시간을 맡아 과장 윤백남, 강연 프로를 맡은 이하윤(異河潤), 그리고 조선사람 아나운서 3명 이렇게 일곱 명과 함께 근무하였다. 방송국 재직시절 판소리창극조라고 처음으로 사용한 이기세(李基世)를 통해 자기 부인 박월정(朴月庭)을 소개받았고, 박월정이 부른 "단종애곡"(端宗哀曲)이라는 새로운 창극조를 취입했다. 방송을 통해 이동백·한성준·조학진 등의 명인명창과 가깝게 지내면서 국악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넓혀갔다.

방송 출연의 교섭을 위해 민요 등은 조선권번(朝鮮券番)이나 한성권번(漢城券番)에, 판소리는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에, 그리고 정악 출연자는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 전화로 연락해 마련하였다.

1930년 채동선실내악단(蔡東鮮室內樂團)이 창단됐을 무렵 그는 비올라 연주자로 채동선(제1 바이올린)·최호영(제2 바이올린)·일본인 첼리스트와 함께 최초의 현악4중주단을 결성하여 음악활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11월 28일 경성제국대학 강당에서 열린 학우회 주최 음악회 때 강형철·양철환·김순형·박범원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46년 경성음악전문학교(京城音樂專門學校)가 국립서울대학교의 설립에 따라서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음악부로 개편됐을 때 교수진의 한 사람이었다. 1947년 문교부 편수국의 장사훈(張師勛) 및 서울중앙방송국의 이계원·송영호·이덕근과 함께 구왕궁아악부원(舊王宮雅樂部員)들에게 방송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1959년 1월 24일 서울대 음대 국악과장으로 임명됐고, 한국국악학회(韓國國樂學會) 회장·서울대 음대교수를 역임하였다.

1960년 1월 '옛과 어제를 그리며 내일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으로 예그린악단이 창단됐을 때 음악고문위원이었다. 1964년 12월 5일 국립국악원에서 발족된 국악기개량위원회의 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1966년 한국국악학회 설립했다. 그해 3월 국립국악원 정례발표회 때 "일본고려악연구회(日本高麗樂研究會) 심포지엄 참가보고"를 발표하였다.

1977년 "한금신보(韓琴新譜)의 우조삭대엽(羽調數大葉)"을 『장사훈박사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에 발표했고, 10월 한국국악학회 정례발표회 때 "고마가쿠(高麗樂, Komagaku)에 대하여"를 발표하였다. 1978년 1월 국립국악원 정례발표회 때 "정읍(井邑)과 동동(動動)의 비교"를, 12월 한국국악학회 정례발표회 때 "계면 영산회상의 태주음에 대하여"를, 12월 15일 전통음악연구를 위한 협의회 때 주제발표를 하였다. 1982년 8월 31일자 경향신문에 음악평론을 실었다.

1990년 9월 26일 및 10월 26일 예음홀에서 초청 국악강좌를 열었고, 10월 13일 세종의 달 기념 국악학술 강연회 때 "세종대왕의 음악면의 업적"을 발표했으며, 10월 26일 예음문화재단 주최 초청강연회 때 "여창 우조 이수대엽의 미"를 강연하였다. 1991년 5월 23일 한국국악학회 제2회 전국대회: 한국전통음악의 장단에서 "장단의 개념"을 발표했다. 1992년 5월 28~29일 92국악학전국대회에서 "한국음악 형식의 문제점"을 발표했다.

1993년 3월 1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예술연구실의 객원교수로 신규 임용됐다. 그해 5월 15일 한국시조학회의 제15회 학술발표회 때 "음악으로 본 시조"를 발표하였다. 1995년 11월 30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한국음악논고』(韓國音樂論攷)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1996년 8월 30일 부산대개교50주년 기념 국악제 때 "한국전통음악의 음악분석"을 발표하였다.

1960년 제1회 삼일문화상(三一文化賞) 학술상을 수상했고, 1991년 10월 15일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상을 수상했다. 1995년 11월 27일 제2회 방일영국악상(方一榮國樂賞)을 수상했다.

저서로 『한국음악연구』(1957)·『한국고전악기해설』(1959)·『한국악기도록』(1962)·『한국음악서설』(1967)·『한국음악논총』(1976), Essays on Korean Traditional Music(1981), 『정간보의 정간·대강 및 장단』(1987)·『정간보연구』(1988)·『한국음악논고』(1995)·『증보한국음악연구』(1996)·『삼죽금보의 역보 및 주석』(1998)·『신역악학궤범』(2000) 등이 있다. 공저로 이혜구·장사훈·성경린의 『국악사』(1965)가 있다.

『한국음악연구』 표지

참고문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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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729~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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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송방송의 『한겨레음악대사전 세트』 전2권. 저자가 1979년에 저술한 《한국음악용어...더보기

  • 저자
    송방송 예술인

    음악학박사 - Ph. D.
    서울대 음대 국악과(학사) 동 대학원(석사) 및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박사과정 수학
    미국 웨스레얀(Wesleyan)대학교 대학원 음악학박사(PhD) 취득
    캐나다 맥길(McGill)대학교 음대 조교수 및 문화공보부 국립국악원 원장 역임
    영남대학교 음대 교수와 음대학장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역임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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