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값 담합, 서울사람들 다 하는데 우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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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9.13. 오전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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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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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분들 너무 순해요. 순하기보단 멍청한 사람이 참 많네요. 호가 올리는 거 보면 답답함.” <네이버 부동산카페 ‘아름다운 내집갖기’>

“자기 재산권은 자기가 지키는 것입니다. 서울사람들 다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 있나요.” <경기도 모 아파트주민 단톡방>

서울 집값 폭등의 온상으로 지목된 ‘인터넷 아파트값 담합’이 인근 경기도 지역으로 번진 모양새다. 정부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시행으로 매물이 줄어들자 부르는 값이 시세가 되고 집값이 더 오른다는 기대에 추격매수하는 사람이 늘어나서다. <머니S>가 입수한 다수의 제보에 따르면 현재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곳곳에서 아파트값 담합은 공공연히 이뤄지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집값 담합이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집값을 인위적으로 올리려는 소유주와 내리려는 공인중개사의 갈등구도로 보기도 한다. 집값이 터무니없이 오르고 매물이 자취를 감춰 공인중개사들의 수익성이 낮아진 상황에서 거래성사율을 높이기 위한 집값 인하담합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진=뉴스1

◆몇명이 선동하면 따라가는 분위기

아파트주민들 사이에서 집값 담합 시도가 이뤄지는 장소는 대부분 인터넷이다. 입주자 인터넷커뮤니티나 부동산카페, 단톡방 등이다.

제보자 심은진씨(가명)는 “담합의 형태는 여러가지로 나타나는데 주도하는 인물이 있고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순서”라며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전세세입자들에게 글을 공개하지 말자는 의견도 올라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보자 노소영씨(가명)는 “정부가 아무리 집값을 잡는 정책을 내놔도 선동자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며 “서울과 수도권에서 집값을 담합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여러 제보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파트단지 내 수십개 가구가 호가를 올리면 가격이 형성돼 시세가 되고 결국은 오른 값에 집을 사들인 구매자만 피해를 입는 구조다. 지금까지 집값 담합의 정황이 있는 것으로 고발된 아파트단지는 서울 마포 G아파트, 신정동 H아파트, 신정동 S아파트, 신도림 D아파트 등이다.

◆불특정다수 피해, 처벌근거 미약

이런 집값 담합을 해결할 근본적인 방법은 법적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집값 담합에 대한 처벌이 현행법상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담합행위 주체를 개인이 아닌 사업체로 규정하기 때문에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나 부녀회 등을 처벌하기가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집값 담합에 따른 피해를 특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아파트가격 호가를 일정수준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공인중개사법’을 개정해 집주인이 공인중개사에게 집값 인상을 강요하면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공인중개사가 집값을 올려주지 않으면 거래를 보이콧하거나 단체로 협박전화 등을 일삼는 집주인들의 행패가 지속되자 심각성을 느낀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벌금 등 형량을 강하게 해 불법행위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머니투데이

◆"집주인 협박하는 공인중개사도 있어"

그러나 일부 주민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공인중개사들이 오히려 집값을 내리라고 강요하거나 업무방해죄로 고소한다는 빌미로 협박하는 영업행태도 심각하다는 것. 또 집값 담합을 시도하는 주민은 수천세대 중 일부인데 한꺼번에 싸잡아 매도된다는 불만도 나온다.

신정동 H아파트 주민 정모씨는 “고령의 조합원들은 인터넷정보와 뉴스를 접할 방법이 없어 정확한 아파트시세를 모르는데 공인중개사들이 억지로 거래를 성사시키려고 가격을 낮춰 피해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일부 부동산업자는 집주인이 내놓지도 않는 물건을 허위매물로 올리거나 입주자들에게 전화공세 등을 해 갈등이 심한 상태”라고 토로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이렇다. 특정가격 이하의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상한선이 정해졌고 공인중개사 입장에서는 거래량이 줄어든 상황에 매도가를 낮춰야만 그나마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수월하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6647건으로 1일 평균으로 환산 시 지난해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가 시행된 올 4월 6212건을 기록해 한달 새 반토막났고 5월 5466건, 6월 4779건으로 급감했다.

실제로 집값을 놓고 집주인과 공인중개사들이 갈등을 일으키다 송사로 번진 사건도 있다. 올 2월 서울 용산 이촌1동 50여개 공인중개사사무소는 “호가를 최대한 올리라”고 압력을 행사한 주민을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했다.

한편 자정을 독려하는 소수의견도 있다. 단톡방 글이나 카페 댓글 중 일부는 “우리가 만든 사회는 자녀세대가 물려받는다.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이다”, “아파트값을 올리려는 집주인과 내리려는 공인중개사 둘 다 담합이다” 등의 의견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광신도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두달 새 1억원이 올랐는데 갈 길이 멀다며 서로를 부추기는 모습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평범한 국민이 왜 이렇게 됐나.” 한 입주자모임 단톡방에 올라온 어느 주민의 말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7호(2018년 9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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