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 아닌 성숙함으로”… 박사과정 복서의 ‘도쿄 드림’

입력2020.02.03. 오전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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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주인공을 꿈꾸다] 올림픽 메달 도전하는 아시아 헤비급 강자 김형규복싱 헤비급 국가대표 김형규가 지난 22일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선수촌 복싱장에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권현구 기자
물러설 곳 없는 정사각형 링 위. 91㎏의 두 사내가 거세게 부딪친다. 수차례 펀치를 허용하며 수세에 몰린 홍코너 선수. 마지막 라운드도 2분여 남겨뒀다. 시간이 지나면 패하는 상황. 상대를 응시하던 그는 날아오는 펀치를 재빠르게 피해내고 그림 같은 강력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두 차례 상대 왼 턱에 적중시킨다. 청코너 선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진다.

이 ‘역대급’ 역전 KO승의 주인공은 한국 복싱 헤비급(-91㎏)의 대들보 김형규(28·울산광역시청)다. 그는 지난해 4월 아시아복싱연맹(ASBC) 아시아선수권대회 준결승전에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바실리 레빗(32·카자흐스탄)을 KO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라 챔피언이 됐다.

레빗을 다운시킨 기술은 복싱에서 흔히 말하는 ‘쓱빵(상대 펀치를 피하면서 주먹을 내는 것)’이다. 188㎝의 거구지만 빠른 핸드 스피드를 지닌 김형규의 주특기로, 유튜브에 올라온 KO 영상은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웃복싱과 인파이트 모두에 능한 기대주 김형규를 최근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로 아시아를 제패한 기쁨도 잠시. 김형규는 지난해 5월 체코 대회 1라운드를 치르던 중 오른쪽 어깨가 완전 탈골돼 슬랩 4형에 방카르트 완전파열 진단을 받았다. 류현진이 입었던 부상이 슬랩 2형인 걸 감안할 때 매우 심각했다. 완치까지 1년 걸린다는 청천벽력의 소식.

김형규는 포기하지 않았다. 힘겨운 재활 과정을 끈기로 버텼다. 결과는 부상 4개월 만의 전국체전 금메달, 6개월 만의 복싱 국가대표선발전 우승. 김형규는 “주먹을 80%밖에 못 뻗어 많이 불편했고 심리적으로 불안했다”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다치는 바람에 오히려 큰 동작이 없어지고 몸의 밸런스가 좋아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거울을 응시하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김형규의 모습. 진천=권현구 기자
김형규는 그동안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라이트헤비급(-81㎏) 랭킹 5위에 올랐지만 패기만 믿다가 2012 런던올림픽 예선에서 탈락했다. 리우 때는 연습경기 중 손 골절로 나사를 박고 예선전에 나갔지만, 홈 이점을 안은 중국 선수의 코를 부러뜨리고도 석연찮은 판정패를 당했다.

세 번째 도전. 그는 이제 ‘패기’가 아닌 ‘성숙함’으로 나선다. 특수체육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스포츠코칭으로 한국체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학구파 복서’인 그는, 스스로가 연구한 스포츠 이론을 통해 도쿄올림픽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 대비하고 있다.

김형규는 “학창시절에는 싫었는데 지금은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며 “운동하면서도 내 상황을 인지하게 돼 심리적인 대처를 스스로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중국 우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예선전 일정이 2월에서 3월 초로 연기된 건 김형규에게 호재다. 그는 “어깨를 더 관리할 시간이 생겨 저한테는 좋다”며 “과거엔 남을 의식해 심리적인 부담이 많았지만 이젠 마음 편하게 경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런 그에게 가족의 응원은 큰 힘이다. 김형규의 매형은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의 권희동(30)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인 누나 김수현씨와 2016년 결혼했다. 김형규는 “매형과 옷 사이즈가 똑같아 나눠 입기도 하고 친하게 지내는데, 올림픽이 다가오자 안 다치게 욕심 부리지 말라고 조언해준다”며 “메달을 따면 3살·2살인 조카들이 먼저 생각날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진천=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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