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진료 녹취… 의료기관 딜레마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어려운 내용 저장해놓고 도움 받으려는데…”

A씨는 모친의 진료를 위해 서울 강남 소재 유명 안과의원을 방문했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길어진 진료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녹취를 했는데, 직원이 앞을 가로막고 내용 삭제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A씨는 “당사자는 정당한 목적이 있으면 녹취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라. 삭제한 사실 확인까지 해야 한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A씨처럼 단순 기록 혹은 의료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 진료 녹취를 원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지만, 일부 의료기관에서 녹취 행위를 꺼리거나 진료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몰래’ 녹음을 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진료실 내 녹취는 의료법이 아닌 통신비밀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통신비밀보호법은 당사자 간 대화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기 때문에 ‘당사자’일 경우 동의 없는 녹음이 가능하다. 기존 판례 등에 따라 진료실에서의 의사-환자 간 대화는 당사자 간 대화로 판단되며, 보호자는 제3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동의 없이 녹취할 수 없다. 다만, 당사자라고 할지라도 녹취 내용을 공개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이 관계자는 “법의 취지는 제3자의 녹취 행위를 처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녹취 행위는 법상 문제가 없다”면서도 “이를 보관만 하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다른 관련법에 위반될 수 있고, 명예훼손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녹취 행위가 적법하다면 의료기관의 진료 거부는 의료법 위반 사항에 해당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법 15조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정당한 사유에는 환자가 불법행위를 할 경우, 폭언이나 폭행을 할 경우 등이 해당된다”며 “녹취 행위가 합법인지 불법인지에 따라 진료거부 가능 여부도 달라진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녹취 행위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적법 여부와 상관없이 신뢰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집에서 진료 내용을 다시 듣고 싶다며 녹음을 해도 되느냐고 묻는 환자들이 드물게 있지만 (말을) 안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추후 법적 문제를 생각해 녹음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진료를 꺼리는 병원들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장을 바꿔서 의사가 환자 몰래 진료 내용을 모두 녹음한다고 하면 환자도 불쾌할 것”이라면서 “진료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만큼 녹취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뢰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행위”라고 토로했다. 김 이사는 “진료로 인해 해가 된다면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도 “환자의 녹취가 불법은 아니지만 의사도 인권이 있다. 진료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녹취를 한다면 의료인의 진료가 위축될 것”이라며 “녹취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불신에서 시작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아울러 “녹취를 하겠다고 밝혀도 불쾌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 문제는 수술실 CCTV 설치와 같은 맥락으로, 녹취가 필요하다면 진료실에 녹음 기능을 강제로 갖추면 된다. 그러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수인 쿠키뉴스 기자 suin92710@kukinews.com

▶ 네이버에서 국민일보를 구독하세요(클릭)
▶ 국민일보 홈페이지 바로가기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