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타자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야구의  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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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은 야구의 꽃이다. 홈런 한 방엔 야구장을 축제로 만드는 힘이 있다. 쭉쭉 뻗어 나간 하얀 공이 담장 저편으로 넘어가는 순간, 경기장은 온통 열광의 도가니가 된다. 관중들의 함성이 야구장을 뒤흔든다.

모든 선수가 뛰쳐나와 손뼉을 치고 포옹하며 축하한다. 세상에 홈런을 치고 기뻐하지 않는 선수는 없다. 무뚝뚝하고 험상궂은 선수도, 슬럼프에 빠진 선수도, 집안에 우환이 있는 선수도, 홈런을 치고 돌아오는 순간에는 모두 다 환하게 미소 짓는다.

그래서 홈런은 ‘축포’라고 불린다. 이승엽이 56호 홈런을 쳐낸 뒤 야구장에서는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 [내츄럴]은 아예 홈런에 맞고 박살 난 조명등에서 문자 그대로의 ‘불꽃’이 분수처럼 쏟아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홈런은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기억되며, 보는 이의 가슴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최고의 명승부에는 언제나 홈런이 함께 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의 우승을 결정지은 것도, 2009년 KIA의 우승도 마지막은 홈런이었다.

프로야구 30년 역사의 시작에는 이종도의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이 있었다. 그 홈런으로 프로야구는 사람들에게 ‘프로야구는 재미있다’, ‘프로는 뭔가 다르다’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는 데 성공했다. 만일 원년 개막전이 홈런 아닌 평범한 단타나 실책으로 끝났더라면, 프로야구의 운명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지 모른다.

홈런은 언제나 극적인 순간과 함께 했다. 프로야구는 이종도와 김유동의 만루홈런과 함께 드라마틱하게 막을 열었다. 사진은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끝내기 홈런을 치고 환호하는 마해영과 삼성 선수단.
<출처: 삼성라이온즈>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 [내츄럴]은 홈런이 왜 ‘축포’라고 불리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레드포드가 쳐낸 홈런타구는 외야 조명등을 박살내고, 구장 전체에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그 홈런은 9회말 투아웃에서 팀의 승리를 결정짓는 역전 홈런이자, 오랜 고난을 이겨낸 노장 선수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다.

홈런타자의 탄생

사람들은 왜 홈런에 열광하는가?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홈런이 ‘아무나 쉽게 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타격이란 행위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에게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0.4초. 이걸 배트에 맞히려면 타자는 단 0.2초 만에 구종과 궤적을 파악해야 한다.

게다가 야구공은 둥글고, 배트도 둥글다. 둘이 맞닿는 지점은 넓은 면이나 선이 아닌 점으로 이뤄진다. 어찌 보면 배트에 공을 맞히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그래서 사람들은 10번에 3번만 안타를 쳐도 대단한 타자로 생각한다. ‘타격의 신’으로 불린 테드 윌리암스(Ted Williams)는 아예 “세상에 타격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런데 홈런은 공을 배트에 맞히는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냥 갖다 맞히기만 해선 홈런이 되지 않는다. 공을 박살 낼 듯 강하게 때려서 멀리 담장 너머까지 날려 보내야 홈런이 된다. 투수의 공이 배트의 스위트 스팟(sweet spot)에 맞아야 하는 것은 물론, 타자가 완벽한 타이밍으로 자신의 파워 전부를 효과적으로 실었을 때 홈런이 나온다. 당연히 자주 보기 힘들다.

지난 시즌 프로야구 타자들은 평균 36.24타석에 한 번꼴로 홈런을 쳐냈다. 한 타자로 치면 8~9경기에 한 번씩 손맛을 봤단 얘기다. 아무나칠 수도 없다. 해태 김일환은 통산 446경기에 출전하는 동안 단 1개의 홈런도기록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통산 300타석 이상 나선 선수 중에 ‘0홈런’으로 은퇴한 선수만 8명이다. 이대호가 야식 먹듯 쳐내는 홈런이 누군가에게는 일생의 꿈이다.

홈런의 매력 또 하나는 홈런이 지닌 특유의 단순성이다. 야구는 복잡하고 어려운 경기다. 기본 규칙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이다. 야구를 오래 보거나 해온 사람도 가끔은 규칙을 헷갈린다.

경기 진행 과정에도 수많은 변수와 돌발 상황이 맞물려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낸다. 1점이 나는 과정에만도 투수와 타자의 머리싸움, 투수가 던지는 구질, 타자의 스윙, 수비수의 위치, 주자의 움직임, 벤치의 사인, 심판의 성향 등 생각할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작정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면 잠시도 머리를 쉴 틈이 없다. 3시간 내내 그런 긴장 상태에서 경기를 본다는 건, 굉장히 피로도가 높은 일이다.

홈런은 그렇지 않다. 타자가 공을 쳐서 담장을 넘어가면 그대로 1점이다. 앞에 주자가 있으면 있는 대로 고스란히 점수가 추가된다. 쉽다. 단순하고 스케일이 크다. 전혀 복잡할 게 없다.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쥐어짜며 단 하나의 플레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잔뜩 긴장할 채 볼 필요도 없다. 자동차 뒷좌석에 기대앉은 것처럼, 놀이공원의 퍼레이드를 보는 것처럼, 먹고 마시고 옆 사람과 이야기하며 편안하게 경기를 즐기면 된다.

홈런과 함께하는 야구는 박물관이나 미술관보다는 놀이동산에, 예술영화보다는 블록버스터 오락영화에 더 가깝다. 야구를 처음 보기 시작한 사람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 짜릿한 쾌감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게 홈런의 매력이다.

홈런은 야구를 대중화한 일등공신이다. 초창기 야구의 홈런은 지금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로버트 어데어(Robert K. Adair)는 [야구의 물리학]에서 “초창기 메이저리그의 홈런은 대부분 장내 홈런”으로 “3루타의 연장에 불과”했다고 알려준다. 야구가 원래는 펜스가 없는 초원에서 하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입장객을 받으면서 펜스가 설치되긴 했지만, 타석에서 펜스까지의 거리는 여전히 까마득했다. 게다가 당시에 쓰인 물렁물렁한 야구공은 아무리 세게 쳐낸들 멀리 날려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당시의 “선수들은 야수들의 머리를 넘기게 공을 때리려고 시도하지 않았으며... 라인드라이브가 왕이었다”는 게 어데어의 설명이다.

초창기 야구에는 펜스가 없었다. 홈런은 3루타의 연장으로 대부분 장내홈런이었다. 나중에 펜스가 생긴 뒤에도 타자들은 펜스를 넘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브 루스가 등장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출처: 안준철>

실제 1876년 내셔널리그 홈런 1위 조지 홀(George Hall)이 쳐낸 홈런은 5개에 불과했다. 경기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난 1900년에도 같은 리그 홈런왕 허먼 롱(Herman Long)은 125경기에서 12홈런을 쳐내는데 그쳤다.

1910년 이후 펜스 거리가 좁혀지고 야구공의 반발력이 좋아지는 등의 변화에도 여전히 홈런 수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타자들이 타구를 멀리 보내는 쪽으로 변화할 필요성을 좀처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계속해서 기존의 타격 방식을 유지했고, 코치와 감독들도 선수들이 라인드라이브를 치는 것을 장려했다.

대부분의 득점은 안타와 도루 같은 자잘한 플레이, 때로는 타이 콥(Ty Cobb)이 대표하는 ‘치졸한 플레이’를 통해 이뤄졌다. 미국에서 야구는 인기 스포츠였지만 전 국민적으로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베이브 루스(Babe Ruth)의 등장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밤비노는 원래 유능한 좌완투수로 데뷔했지만, 타격에도 재능이 뛰어났다. 1918년에는 투수를 주업으로 하면서도 11개의 홈런으로 리그 공동 1위에 올랐다.

그는 당시 타자 중에는 드물게 배트를 길게 잡고 크게 돌리면서 홈런을 노리는 스윙을 했다. 이듬해 외야수로 전향한 루스는 메이저리그 신기록인 29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클리블랜드나 디트로이트의 팀 전체 홈런보다도 많은 홈런을 혼자서기록했다.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1920년에 그가 친 홈런은 54개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그보다 많은 홈런을 쳐낸 팀은 필라델피아(60개) 한 팀에 불과했다. 하지만 루스가 59홈런으로 신기록을 다시 한 번 갈아치운 1921년에는, 8개의 팀이 루스와 같거나 더 많은 홈런을 기록했다. 홈런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루스를 통해 야구에서 홈런이 갖는 가치는 새롭게 정의됐다. 많은 선수가 홈런을 위해 타격 메커니즘을 조정하고 나섰다. 로저스 혼스비(Rogers Hornsby)는 1920년까지 두 자리 수 홈런을 쳐낸 적이 한 번도 없는 타자였지만, 1922년에는 42개로 전체 홈런 1위에 올랐다.

1920년 서른 살의 나이로 처음 10홈런을 쳤던 켄 윌리암스(Ken Williams)는 1922년 39홈런으로 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다. 1923년 루스와 홈런 공동 1위(41개)를 차지한 사이 윌리암스(Cy Williams) 역시 1920년대 이후 본격적인 거포 변신에 성공한 선수다.

리그 전반적인 타격 성향의 변화와 함께 홈런 수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1911년 경기당 0.3개에 불과했던 홈런은 1920년에는 0.75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1950년대에는 2개에 육박할 만큼 많은 대포가 쏟아졌다.

홈런의 대폭발로 야구 경기의 양상도 달라졌다. 우선 이전 어느 때보다 많은 득점이 쏟아져 나왔다. 홈런 한 방에 경기의 흐름이 뒤바뀌는 것은 물론, 이제는 3~4점 차로 앞선 팀도 끝날 때까지 안심할 수 없게 됐다.야구가 더욱 재미있어졌다. 1, 2번 타자가 출루한 뒤 중심 타자가 홈런 등 큰 타구로 주자를 쓸어 담는 공격 형태가 일반화됐다.

타자들은 홈런을 위해 불명예스러운 삼진을 기꺼이 감수하기 시작했다. 투수들 역시 슬라이더 등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홈런쇼를 보려는 구름관중이 연일 야구장에 몰려들었다. 야구는 최고의 인기스포츠이자 최대의 오락산업으로 성장했다. 꼬마들은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베이브 루스의 이름에는 열광했다.

사실 루스는 처음으로 대통령보다 많은 연봉을 받은 야구선수였다. 홈런타자가 더 많은 부와 인기를 얻는다는 사실이명백해졌다. “홈런 타자는 캐딜락을 몰고 평범한 타자는 포드를 몬다”는 투수 프리츠 오스터뮐러(Fritz Ostermueller)의 푸념은 그 어떤 말보다 홈런의 시대를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누가 어떻게 홈런을 치나

홈런타자를 만드는 데는 후천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타고난 신체적 조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정수빈이 40홈런 타자가 되도록 만드는 것보다는, 그의 장점인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을 살리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대호에게는 이대호의 야구가, 정수빈에게는 정수빈의 야구가 있다.
<출처: 스포츠월드 송승현 기자>

그렇다면 홈런은 특별한 타자들의 전유물일까. 과거에는 홈런 타자는 타고나야 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전성기 베이브 루스는 “3할 타자는 땀으로 만들 수 있지만, 홈런 타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정해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얘기가 단지 타고난 신체 조건의 한계를 논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아무도 에디 게델(Eddie Gaedel: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단신 선수. 109cm의 작은 키로 단 1타석만 들어서고 사라졌다. 괴짜 구단주 빌 빅이 장삿속에 선수로 등록해서 출전시켰다)이 훈련을 통해 40홈런을 쳐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않는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을 갖춘 프로 선수들이 대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야구 이론과 훈련법이 발달한 최근에는 홈런타자도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홈런은 단순히 덩치가 크고 힘이 좋다고 해서 많이 쳐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좋은 체격이라도 장타를 쳐내는데 적합한 근육은 따로 있다. 그런 몸을 만들려면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홈런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한 고교코치는 “아무리 힘 좋은 선수도 공이 배트에 맞을 때 순간적으로 힘을 싣는 기술이 없다면 장타로 연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배트의 ‘스위트 스팟’에 정확하게 맞히는 콘택트 능력도 필수다. “거포의 자질을 갖췄다는 선수가 실패하는 경우를 보면 대개 콘택트 능력이 매우 떨어지거나, 힘을 실어내는 기술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그 외에도 “배트를 잡는 길이, 배트의 무게, 배팅 타이밍, 타격 밸런스, 수 읽기, 타자의 자신감, 풀스윙 여부, 스윙 궤적” 등이 홈런 생산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요소들이다. 특히 스윙 궤적은 홈런을 쳐내는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로버트 어데어에 따르면, “공을 제대로 맞출 경우 일반적으로 10도의 상향 각도가 더해질 때마다 공은 약 16도 정도 더 궤도에 오르게 된다”. 같은 공을 쳐도 수평 스윙으로는 64미터 지점에 낙하할 공이 올려치는 스윙을 하는 타자에게는 114미터 대형 홈런이 된다는 얘기다.

전설의 포수 칼튼 피스크(Carlton Fisk)는 홈런 생산에서 후천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보스턴에서 뛰던 시절 피스크는 전형적인 라인드라이브 스윙을 하는 타자였다. 하지만 홈런도 곧잘 쳐냈다.

데뷔 후 첫 11년간기록한 홈런은 160개.왼쪽 펜스가 짧은 펜웨이 파크에서는 피스크의 스윙으로도 담장을 넘기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화이트삭스로 이적한 1981년 문제가 생겼다. 그해 피스크가 친 홈런은 7개로,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뒤 최악의 기록이었다.

시카고 홈구장 코미스키 파크의 외야가 넓어서 피스크의 스윙으로 넘기기에는 무리였던 것. 이에 피스크는 겨울 내내 자신의 스윙을 뜯어고치는데 열중했다. 그리고 1982년 14개 홈런으로 회복세를 보인 뒤, 83년부터는 3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제2의 전성기를 보냈다. 1985년에 쳐낸 37홈런은 생애 최고 기록이었다.

홈런 생산은 타자의 스윙 궤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진의 데이비드 라이트(David Wright)는 셰이 스타디움 시절에는 30홈런을 곧잘 치는 장타자였지만, 홈구장이 시티필드로 바뀐 뒤에는 고전하고 있다. 이에 2010년부터는 스윙 궤적을 조절하며 홈런수를 늘리는데 성공했지만, 대신 타율과 삼진을 엄청나게 깎아먹었다.
<출처: 케이채 Kaychae.com>
홈런파워는 늦게 붙는다. 이는 훈련을 통해 홈런에 적합한 근육을 만드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타구에 힘을 싣는 기술이나 공을 스위트 스팟에 맞히는 능력을 기르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체격조건이 탁월한 선수가 당장 홈런을 쳐내지 못한다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사진은 차세대 거포 중 하나로 기대를 모으는 두산 이두환.
<출처: 스포츠월드 송승현 기자>

피스크만이 아니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포드를 모는 타자에서 캐딜락 오너로’ 변신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홈런왕 호세 바티스타(Jose Bautista)는 프로 9년차까지 형편없는 타자에 저니맨이었다.

하지만 2009년 말미 타격에 눈을 뜬 그는 지난해 54홈런으로 정상에 오른 뒤, 올 시즌에는 60홈런 페이스로 질주하고 있다. 피터 개몬스(Peter Gammons)에 따르면 바티스타 외에도 말론 버드(Marlon Byrd), 브랜든 필립스(Brandon Phillips), 제이슨 베이(Jason Bay), 넬슨 크루즈(Nelson Cruz), 제이슨 워스 (Jayson Werth) 등이 뒤늦게 거포로서 자신의 잠재력을깨달은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스무살에 홈런왕이 된 토니 코니글리아로(Tony Conigliaro)나 켄 그리피 주니어(Ken Griffey Jr.), 프린스 필더(Prince Fielder) 등은 그야말로 아주 예외적인 사례라는 얘기다. 그 자신이 최고의 타자였던 다저스 감독 돈 매팅리(Don Mattingly)가 “파워가 제일 나중에 생긴다”고 말한 그대로다.

비슷한 예는 한국에도 있다. 롯데 홍성흔은 데뷔 12년째인 지난해 처음으로 20홈런 고지를 돌파했다. 올려치는 스윙으로 바꾼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삼성 4번 최형우도 2002년 입단 때부터 거포감으로 주목받았지만, 군에 다녀온 뒤인 2008년에야 19홈런을 쳐 내며 홈런 타자로 만개했다.

SBS 안경현 해설위원은 서른 한 살 시즌인 2001년에 처음으로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했다. KIA 김상현은 데뷔 9년 차에 처음 주전이 됨과 동시에 홈런왕에 올랐다. 한화 최진행도 데뷔 7년 차인 지난 시즌에 처음으로 ‘터졌다’. SK 박정권은 데뷔 6년째에 처음 2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승엽과 김현수는 풀타임 3년째에 홈런 타자 변신에 성공했다.

“특출한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우선 프로 1군에 올라오면 배트에 제대로 맞히는 데 주력하게 마련입니다.” 한 대학 감독의 말이다. “이후 훈련을 통해 점차 몸에 힘이 붙고, 타석에서의 수 싸움 능력도 향상되죠.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도 갖게 되고, 상황에 따른 타격을 하는 법을 알게 됩니다.

그다음에는, 담장을 넘길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렇게 볼 때 현재의 경기력만으로 선수가 지닌 가능성을 지나치게 성급하게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발달된 트레이닝 기법과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또는 프로에서의 경험이 쌓이면서 뒤늦게 홈런파워가 붙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홈런을 노리는 타격에는 그만큼의 위험이 따른다. 앞서 언급한 로버트 어데어는 “스윙의 타이밍을 놓친 경우 올려치는 스윙은 공의 위쪽을 쳐서 약한 땅볼이 될 것이다... 만약 타이밍이 늦는다면 공의 아래쪽을 쳐서 높은 뜬공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론적으로 라인드라이브 히터가 스윙이 늦든 빠르든 공을 잘 맞힐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따라서 “라인드라이브 히터가 높은 타율을 얻는 동안 올려치는 타자는 홈런을 얻는다”는 게 어데어의 결론이다. ([야구의 물리학], 136~7p)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홈런타자는 홈런을 얻는 만큼 타율을 잃고, 많은 삼진과 병살타를 감수해야 한다. 타격 슬럼프도 다른 선수에 비해 길어질 위험성이 높다. 화려한 홈런쇼 뒤에 숨겨진 함정이다.

지나치게 과열된 홈런 경쟁은 스테로이드 시대로 이어졌다. 상당수의 선수가 폼을 바꾸거나 몸을 키우는 차원을 넘어, 금지약물에 손을 대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이에 메이저리그에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약한 홈런타자 대부분이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약물 의혹에 시달리게 됐다. 성실성과 정당한 노력을 통해 탁월한 업적을 남긴 선수들까지 약쟁이로 의심받게 되었다는 게 스테로이드 시대의 최대 비극이다.

스테로이드 시대가 저물고 리그 전체의 홈런 수가 줄어들며, 미국에서 홈런타자의 위세는 과거보다 크게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이제 홈런타자만이 캐딜락을 몬다는 얘기는 더 이상 정설로 통하지 않는다.

투수력의 중요성이 강조된 결과 선발투수는 물론 마무리나 중간계투도 거액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속속 나오고 있다. 또한 홈런수 감소는 각 팀이 수비력이나 도루, 주루플레이를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굳이 홈런타자가 아니라도 충분히 자신이 지닌 장점을 살려 팀 승리에 기여하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홈런이 갖는 매력은 여전하다. 다만 야구가 더 깊어지고 다양해졌을 뿐이다.

  • 발행일2011.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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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지헌 야구 칼럼니스트

    배지헌은 야구 전문 블로그 <야구라>의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야구생활], [스카우팅 리포트 베이스볼 2011] 등의 필진으로 참여했으며, 현재 네이트 스포츠 Pub에 기고하고 있다.

  • 감수
    신명철 前 스포츠 2.0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