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인플레이션’ 막자… 원유 가격 결정제도 8년만에 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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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26. 오전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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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감소 반영 못하는 원유 가격 결정
낙농진흥회 통해 제도 개선 불가하다는 판단
우유가격 인상밥상물가 상승 압력

1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우유./연합뉴스

정부가 수요 감소를 반영하지 못하는 원유(原乳·우유의 원재료) 가격 결정제도를 수술대에 올렸다. 현행 원유 가격 결정 체계가 원유 생산비만을 반영해 시장 상황과 괴리된 구조라는 문제 의식이다. 정부는 원유 가격 결정제도가 시장의 수요 감소를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낙농업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낙농진흥회는 정부가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원유 가격 인상을 6개월 유보하자는 요청을 거부하고 이달부터 원유 가격을 리터(ℓ)당 926원에서 947원으로 21원 올렸다. 전년 대비 50% 이상 오른 계란 가격에 더해 우유 가격 인상까지 더해져 밥상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이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낙농산업 중장기 발전방안 마련을 위한 '낙농 산업 발전위원회 운영계획'에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제도, 공급 과잉 유발” 칼 빼든 정부

농림축산식품부는 25일 전문가 연구용역 등을 거쳐 가격 결정 체계 개편안을 연말까지 마련하기로 하고 세종컨벤션센터에서 박영범 농식품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낙농산업 발전위원회’ 1차 회의를 열었다. 회의 전 열었던 브리핑에서 김인중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원유 가격 결정제도에 대해 “현재 생산비만을 고려하는 것 외에 원유의 수요와 관련된 부분도 고려돼야 한다”며 “현재의 제도가 어떻게 보면 공급과잉을 심화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원유 가격은 정부, 소비자, 낙농업계 등이 참여하는 낙농진흥회에서 ‘원유가격 연동제’에 따라 결정된다. 2013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낙농가의 생산비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가격을 정하도록 하는데, 수요 변화 등과는 상관없이 원유 가격을 계속 끌어올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2011년 구제역 파동으로 낙농가들이 타격을 입자 정부가 수급 안정을 위해 도입한 제도로, 정부가 최소 비용을 보전해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농식품부가 이번 제도 개선에 직접 나선 이유는 낙농진흥회를 통한 제도 개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생산자(낙농가)가 반대할 경우 이사회 개의(開議)가 불가능해 제도 개선 논의 자체를 이어갈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도 주요 원인 중의 하나로 분석된다”며 “낙농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하여 생산자, 수요자, 학계, 소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참여를 유도하고 의견을 수렴해 제도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구 감소, 유제품 소비 행태 변화, 수입개방 확대 등으로 우유가 남아도는데 가격은 오르는 현재의 원유 가격 결정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회의는 진행됐다. 지난해 국민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6.3㎏으로 1999년 24.6㎏ 이후 가장 적었다. 반면 해외 주요국에 비해서도 원유 가격 상승률은 가파르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 동안 국내 원유 가격은 72.2% 올랐는데, 같은 기간 유럽과 미국은 각각 19.6%, 11.8%에 그쳤다. 뉴질랜드의 경우 2010년부터 10년간 원유 가격이 오히려 4.1% 내려갔다.

국내 원유가격이 주요국 대비 큰 폭으로 오르면서 유제품 소비가 증가했음에도 국내 생산량은 위축됐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다보니 수입품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다. 지난 2001년 대비 지난해 유제품 소비량은 46.7%(304만6000톤→447만톤) 증가하면서 수입은 272.7% 증가한 243만4000톤이 늘었지만, 국산 원유 생산량은 10.7% 감소해 208만9000톤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원유 자급률도 29.2%P(포인트) 감소한 48.1%로 떨어졌다.

/농림부

우유發 2차 물가상승 우려... 치즈 등 유제품 줄줄이 인상 예고

최근 농수산물 등 밥상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원유 가격까지 오르게 되면 우유 발(發) 물가 상승 요인이 추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원유 가격이 다음달부터 인상되면 흰 우유는 물론 바나나 우유, 딸기우유 와 같은 가공유, 치즈와 요플레 등 유제품, 우유를 재료로 쓰는 빵이나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등 2차 가공식품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질 것이기 때문이다.

계란 가격 상승률이 전년 대비 50%를 웃도는 상황에서 우유 가격까지 오르면 ‘밀크 인플레이션’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미 낙농진흥회는 이달부터 원유 가격을 ℓ당 926원에서 947원으로 21원 올렸다.

농식품부가 원유 가격 결정제도 외에도 개선을 예고한 제도는 ‘쿼터제’다. 정부가 낙농가에 수요량 이상의 생산을 보장해주는 쿼터제는 공급이 줄지 않는 문제를 낳는다. 쿼터제가 원유 가격 결정제도와 합쳐 운영되면서 수요가 줄면 가격이 떨어지는 대신 오히려 값이 오르는 시장 왜곡이 발생해왔다. 김 실장은 “사실은 어쩌면 시장 기능이 원활하게 돌아갔다면 72%보다 낮은 수준에서 원유가격이 아마 형성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원유에 대해서는 유지방·유단백질 성분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는데, 유지방률 기준을 환산해 원유 가격을 낮추는 방안도 정부의 고려 대상이다. 김 실장은 “대부분 농가들이 3.9~4.0% 정도 유지방이 함유된 우유를 생산하는데 아무래도 생산비가 상승되는 측면이 있다”며 “유지방률을 3.5% 기준으로 조정해 환산하는 부분도 논의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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