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디플레이터, IMF 후 최장 마이너스…짙어지는 디플레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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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9.03. 오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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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경기에 가까운 명목성장률, 3분기째 실질성장률 하회
정부 "디플레 우려 없다" 했지만…전문가 "디플레 압력 커져"

GDP디플레이터가 3분기째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장기간이다.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년동기 대비)이 실질 성장률을 하회하는 상황이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GDP디플레이터는 명목성장률과 실질 성장률의 격차를 의미한다. 명목 성장률은 전반적인 물가 상황을 반영한 지표여서 체감경기에 더 가까운 지표로 평가된다.

명목 성장률이 뒤처지는 가장 큰 원인은 저물가다. 반도체 수출 가격의 하락으로 교역 조건이 악화한 데다 수요측 물가압력도 미진하다. 문제는 GDP디플레이터가 마이너스를 나타내는 상황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8월 물가상승률이 사상 최초로 0%를 기록하면서 물가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의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뒤처진 명목성장률…수출물가 하락·수요부진 복합 작용

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2019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올해 2분기 GDP디플레이터는 전년대비 0.7%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3분기 연속 마이너스인 동시에 2006년 1분기(-0.7%) 이후 최저치다. 명목성장률과 실질성장률의 격차인 GDP디플레이터는 소비재는 물론 생산재, 자본재 물가까지 모두 포함해 우리 경제의 포괄적인 물가를 의미한다. GDP디플레이터가 3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보인 건 IMF 외환위기가 왔던 1998년 4분기~1999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

GDP디플레이터가 낮아진 건 명목 성장률이 실질성장률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2분기 전년동기대비 명목성장률은 1.3%, 실질성장률은 2.0%를 나타냈다. 전기대비 명목성장률은 1분기 -0.8%에서 1.5%로 껑충 뛰었지만 전년동기 대비로는 1분기(1.2%) 대비 증가세가 미미했다. 명목성장률이 물가를 반영하는 만큼 실질성장률보다 높은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 저물가 흐름으로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한은은 GDP디플레이터가 마이너스를 나타낸 원인을 교역 악화에서 찾았다. 실제로 내수 디플레이터는 1.7% 상승했지만 수출 디플레이터는 2.0% 하락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수출·수입물가 움직임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반도체 수출 가격이 급락하면서 GDP디플레이터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또 수입 디플레이터는 원자재, 환율의 영향으로 4.8%나 오르면서 교역조건이 악화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현재의 저물가를 공급측 요소만으로는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에너지와 농산물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가 0%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순수출(-0.2%), 민간(-0.2%)은 성장률을 깎아 먹는 요소로 전락한 상황에서 교역 조건 악화로 인한 저물가는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소비나 투자 등이 모두 안 좋은 상황에서 수요의 부진도 당연히 저물가에 압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이미 전반적으로 물가가 낮아진 상황에서 반도체 가격이 낮아져 GDP 디플레이터가 낮게 나왔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부산항에 쌓여있는 컨테이너/조선DB

◇정부는 ‘디플레’ 일축했지만…시장선 ‘저물가 장기화’ 우려 증폭

GDP디플레이터의 역성장이 이어지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성장세가 부진한 상황에서 저물가는 경제전반에 악순환을 낳을 수 있어서다. 경기 둔화를 우려한 기업과 개인이 투자·소비를 줄이는 상황이 지속되면 현재 2%인 기대인플레이션이 1%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명목성장률을 3%로 잡아 전망한 내년도 세수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성장세가 둔화되면 가계와 기업의 수요가 줄어 세입이 감소하게 되는데, 이 경우 재정을 풀어 성장을 지탱하는 일도 녹록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8월 물가상승률이 사상 최초로 0%를 기록하면서 GDP디플레이터의 하락폭은 3분기에 더 커질 수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인 수출이 9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명목성장률이 실질성장률을 하회한다는 건 저물가, 저성장 압력 자체가 높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당장 디플레가 왔다고 볼 순 없지만, 디플레 압력은 분명히 커지고 있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명목성장률이 낮아진다는 건 기업이나 개인들 입장에서 실질이자율(명목이자율-인플레이션율)을 높이게 돼 투자나 소비의 의사결정을 미룰 수 있다"며 "경기가 좋을 때 저물가는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현재 경기상황에서 저물가는 디플레 진입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정부는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0%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폭염 등으로 높았던 기저효과로 해석했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디플레이션은) 물가수준이 상품과 서비스 전방위에 걸쳐 장기간 하락하는 현상"으로 정의하면서 "실물경제 성장이 지속되고 있고 자산에 큰 버블도 없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디플레이션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은임 기자 goodn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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