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절 2년간 일왕 룸메이트
일왕 부부 결혼에 중요한 역할도
아베 ‘진주만 헌화’ 아이디어 제안
80세에 한국어 배워 84세에 방한
“죽기 직전 일왕과 한·일 관계 걱정”
◆"일왕이 마음 연 진정한 학우”=202년 만의 일왕 생전 퇴위 분위기가 달아오르던 일본 내에서 85세 노장 언론인의 죽음이 조용한 파장을 만든 건 3월 8일 도쿄에서 거행된 장례식에서였다. 70년 가까이 사실상 비밀로 봉인돼 온 그와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관계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일왕을 보좌했던 전 시종장이 장례식에서 “왕과 왕비에게 세상으로 열린 창(窓) 역할을 수행했다” “전하께서 가장 마음을 연 진정한 학우였다”고 밝히면서다. 4월 30일 아키히토 일왕의 퇴임까지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때였다.
일왕과의 친분을 자랑했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생전의 마쓰오는 주변에 내색조차 안 했다. 극소수의 사람이 일왕과의 관계를 겨우 짐작할 정도였다. 일본 언론과 지인들이 특히 주목하는 건 ‘위령의 여행’(일왕), ‘전후 화해’(마쓰오)라는 이름으로 걸어 온 두 사람의 길이 닮아 있다는 점이다.
교도통신의 자회사 사장을 끝으로 퇴직했던 마쓰오는 68세인 2002년 현역 저널리스트 복귀를 선언했다. 그러곤 이국땅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전후 화해’라는 주제에 몰두했다. “패전국 일본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전쟁 상대였던 미국과 중국, 식민지로 지배했던 한반도 국가들과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하지 못했다. 그게 전후 외교의 약점”이란 문제의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원폭 피해지 히로시마 방문(2016년 5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진주만 방문(2016년 12월)으로 실현된 ‘헌화 외교’ 아이디어를 2005년부터 제안한 이가 바로 마쓰오였다. 그의 구상이 11년 만에 실현되면서 일본기자클럽상도 수상했다.
아이다 히로쓰구(會田弘繼) 아오야마학원대 교수는 월간지 ‘문예춘추’ 기고문에서 “폐하가 히로시마와 오키나와 등을 찾으며 ‘위령 여행’을 본격화했던 종전 50년(1995년)은 마쓰오가 연합국과 독일 간 ‘드레스덴의 화해’에 착안해 (전후 화해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였다”고 썼다. 또 “종전 전후 60년(2005년) 폐하는 첫 해외 ‘위령 여행’으로 사이판을 방문했다”며 “(2005년부터 미·일 헌화 외교를 제안한) 마쓰오의 ‘화해 여행’과 병행하듯 ‘위령 여행’이 팔라우와 필리핀 등으로 확대됐다”고 했다.
◆"한국의 상처 회복시켜야” 주장=마쓰오가 한국과의 화해를 마지막 과제로 삼기 전부터 일왕은 한국과의 화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표현해 왔다. 한·일 월드컵을 앞둔 2001년 “헤이안 시대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2005년 사이판 방문 때는 한국인 위령탑을 전격적으로 방문해 묵념했다. 그의 한국 방문 가능성이 수차례 거론돼 왔고, 지금도 양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왕의 짐을 벗은 뒤엔 더 편한 마음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관측과 기대가 나온다.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레이와 시대 양국 관계 개선 가능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세트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양국의 협력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먼저 확실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그 틀 안에서 양국 간 난제를 어떻게 풀지를 전략적으로 논의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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