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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복원 과정에서 밝혀진 밀레 '만종'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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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20:0628,897 읽음

밀레의 자화상

프랑스를 대표했고 프랑스인 모두가 사랑했던 화가 밀레. 그의 삶은 1814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작은 농경지였던 그뤼시라는 마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농부였고 그는 어릴 적부터 농업 일을 도우며 자랐습니다. 

그는 마을의 작은 교회에서 목사들에게 라틴어와 문학에 대해 배웠고, 교육을 받으며 접한 종교적 이야기들로부터 감명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림에 재능을 발견한 후 농부였던 아버지도 그의 그림 실력을 인정해, 그의 나이 19세부터 정식으로 그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습니다. 

밀레는 21세에 파리로 이주해 장학금을 받으며 미술 교육을 이어갔고, 그의 나이 26세에 처음으로 파리 살롱에서 전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했지만 초상화를 의뢰받아 생계를 유지하며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1849년엔 파리의 교외로 이주한 후 본격적으로 농민 화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밀레의 '만종'

밀레가 파리의 외교로 이주한지 8년이 되던 해에 그의 역작 '만종'이 완성됩니다. 당시 프랑스는 미국과의 그림 경매가 활발했던 시기였고, 만종은 미국 부호의 청탁으로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매자가 그림을 가져가지 못하게 되면서, 그림은 밀레에 손에서 보관되어있다가 6년 후에 공식적으로 전시에 출품되며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십여 년 뒤 밀레의 죽음 이후에도 '만종'은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치열하게 경매 경쟁을 이어가다가 프랑스 측에서 80만 프랑에 낙찰되어 갔다고 합니다.

밀레의 '만종'은 사실 밀레의 고뇌의 흔적이 담긴 비밀이 숨어있었습니다. 1932년, 한 정신이상자에 의해 '만종'이 훼손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림은 칼로 찢어졌고, 미술관에서는 그림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림을 복원하는 과정 중, X선 촬영을 통해 감자 바구니로 그려진 부분의 아래엔 어린아이가 들어갈 법한 작은 관 모양의 밑그림이 그려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밀레의 '만종'을 농민의 경건함과 수확의 감사함을 담은 작품으로 평했던 것과 달리, 사실은 가난하고 고단했던 농민들의 현실을 전하기 위한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냐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밀레는 사실 피폐했던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담으려 노력했었고, 그로 인해 사회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밀레는 이 때문에 고뇌했고, '만종'에서 기도하는 여인의 손 모양도 여러 차례 수정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본래 장례식 장면을 그리려 했던 밀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려해 그림의 방향성을 변경한 것으로 보입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그림의 훼손이란 사건과 복원 과정에서 밝혀진 '만종'의 비밀은 그동안 아름답게만 느꼈던 밀레의 그림들을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민의 삶을 지켜보며 자랐고, 그 삶의 고단함과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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