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토종 첫 위스키 해외 수출 완판...수제 맥주처럼 주세법 개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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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5.18. 오후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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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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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한 쓰리소사이어티스 대표…“위스키 산업 키울 절호 기회”[인터뷰]

도정한 대표 약력 : 1974년생. UCLA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 국제관계학 석사. 2001년 아리랑TV 프로듀서 겸 방송기자. 2003년 에델만코리아 차장. 2005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제품 담당 책임자. 2011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컨슈머사업본부 이사. 2014년 더핸드앤몰트 브루잉 대표(현). 2020년 쓰리소사이어티스 대표(현). /사진=이승재 기자.


입구에 들어서자 웅장한 느낌의 황동색 증류기 2기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스코틀랜드의 증류기 제조 회사 ‘포사이스(Forsyths)’가 만든 제품으로 마치 예술 작품을 연상케 한다. 이 증류기 1기의 가격은 수억원에 달한다.

한쪽에서는 위스키의 주원료인 맥아를 분쇄하고 발효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경기도 남양주 화도읍의 야산 중턱에 자리한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의 내부 모습이다.

한국 위스키 애호가들의 이목이 최근 이곳에 쏠리고 있다. 조만간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위스키가 탄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증류소를 만든 이의 남다른 이력이 더욱 기대감을 키운다. ‘수제 맥주 1세대’로 불리는 도정한 대표가 주인공이다. 2014년 더핸드앤몰트를 창업하며 한국의 수제 맥주 열풍을 일으켰던 그가 이번엔 위스키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5월 10일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에서 만난 도 대표는 “왜 한국을 대표하는 위스키가 없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자극 받아 직접 증류소를 차리게 됐다”며 “이곳에서 만든 싱글 몰트위스키를 해외로 수출해 한국 위스키의 맛을 세계에 알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제 맥주에 이은 둘째 도전입니다.
“싱글 몰트위스키 사업은 2017년부터 생각했어요. 만나는 사람들이 종종 왜 한국에서 만든 위스키가 없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찾아봤는데 진짜 위스키 증류소가 없었어요. 주변 국가인 일본과 대만만 보더라도 ‘야마자키’나 ‘카발란’ 같은 대표 위스키가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싱글 몰트위스키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하게 됐어요. 하나둘 준비한 끝에 마침내 지난해 6월 이곳에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 문을 열게 됐습니다.”

-한국산 위스키도 있지 않나요.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위스키는 전부 해외 증류소에서 숙성해 만든 원액을 수입해 만들어요. 해외 유명 위스키 업체들처럼 직접 증류소를 운영해 만들지 않죠. 위스키 맛의 핵심인 원액을 수입해 가져다 쓰기 때문에 한국산 위스키라고 할 수 없어요.”

-왜 한국에는 위스키 증류소가 없나요.
“위스키를 팔아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우선 위스키 증류소 운영에 돈이 많이 들어가요. 생산 설비도 비싸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에요. 적어도 1년 이상 숙성해야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요. 즉 최소 1년 동안은 제대로 된 수익을 올리지 못한 채 운영비를 지출하며 기다려야 해요.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다가 제품을 내놓아 판매하게 되면 이때부터 가장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로 어마어마한 세금입니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의 증류기. /사진=이승재 기자.


-위스키 과세 방식은 어떤가요.
“위스키에 과세하는 세금은 가격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이죠. 쉽게 설명해 깊은 맛을 내기 위해 값비싼 원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세금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누가 비싼 재료를 쓰며 위스키 원액을 만들려고 하겠어요. 그냥 수입해 쓰는 게 낫죠. 현 주세법을 적용할 때 위스키 한 병을 팔면 절반 이상이 세금으로 나간다고 보면 됩니다. 나머지 절반이 수익으로 잡히는 데 시설 운영비나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절대 돈을 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아무도 이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뛰어들었어도 이미 다 망했을 겁니다. 현재 전국에 규모를 갖춘 위스키 증류소는 쓰리소사이어티스 단 한 곳입니다.”

-그런데 왜 이 사업에 뛰어들었나요.
“한국 내에서 위스키를 팔면 사업 유지가 힘들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해외로 수출해 수익을 낼 생각을 갖고 시작했어요. 해외에 위스키를 팔면 주세법을 적용 받지 않아 증류소 운영에 필요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한국산 위스키가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요.
“아마 20년 전이었으면 누가 등 떠밀어도 위스키 사업을 절대 안 했을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누가 한국산 위스키를 사고 싶다고 하겠어요.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어요. 삼성전자·현대차와 같은 기업들의 활약으로 한국산 제품이 어디서나 최고로 인정받는 시대가 됐죠. 또 방탄소년단(BTS)과 같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한국 가수들이 나오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 최초 위스키’라는 타이틀까지 붙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요. 올여름이 되면 지난 1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한 원액으로 만든 첫째 위스키가 나올 예정인데 이미 해외 수출 계약이 모두 끝났습니다.”

-한국에서는 구매할 수 없나요.
“현재로선 해외에서 역수입하는 방법으로 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판매하더라도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위스키를 기다려 준 이들을 위해 프로모션 형태로 극소량만을 유통하는 것을 검토 중입니다.”

-위스키 과세 방식에 대한 아쉬움이 클 것 같습니다.
“국세청 관계자들을 이해시키는 작업도 꾸준히 해 나갈 생각입니다. 예전에도 핸드앤몰트를 창업하면서 이런 일이 있었죠. 한국수제맥주협회에 가입한 뒤 회원들과 함께 국세청 관계자들을 꾸준히 만나 설득했어요. 현 주세법이 한국 수제 맥주 생태계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결국 바뀌었잖아요.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세금 부과 방식이 전환됐고 이를 통해 수제 맥주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대내외적인 환경을 볼 때 한국 위스키 산업 또한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규제들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도 위스키 주세법이 개정되면 좋은 증류소들이 많이 나오고 위스키 산업도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도정한 대표가 영입한 위스키 증류 전문가 앤드루 샌드. /사진=이승재 기자.


-쓰리소사이어티스의 향후 행보가 궁금합니다.
“정말 한국적인 위스키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업계에서 40년 경력을 쌓은 위스키 증류 전문가 앤드루 샌드도 영입했어요. 글렌리빗 등 세계적인 위스키 증류소에서 경험을 쌓은 최고 수준의 전문가입니다. 누가 어떻게 재료를 배합하느냐에 따라 위스키 맛이 달라지는데 그래서 반드시 앤드루 샌드와 같은 전문가가 필요하죠. 그와 계속 소통하며 한국을 상징할 만한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위스키도 함께 연구하고 있어요. 현재 생산 예정인 위스키는 수입산 맥아와 오크통을 활용해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야 위스키로 인정받을 수 있죠. 하지만 언젠가는 맥아·물·오크통까지 전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재료들을 활용해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위스키 과세방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계속할 겁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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