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MLB+] 애런 저지, 역대 최고의 신인 타자될까

입력2017.06.15. 오후 3:23
수정2017.06.15. 오후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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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 저지(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엠스플뉴스]
 
  | 뉴욕 양키스 신인 타자 애런 저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저지가 홈런을 치면 온갖 매체의 메인 화면에는 그의 사진이 걸린다. 현지 언론인 가운데 일부는 그를 베이브 루스와 비교할 정도다. 때로는 과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의 성적을 보면 이해가 된다. 저지는 현재까지 홈런, OPS, wRC+, WAR을 비롯한 각종 지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애런 저지(25, 뉴욕 양키스)의 통산 출전 경기 수는 88경기. 1/2 시즌을 간신히 넘는다. 그는 올스타에 선정된 적조차 없으며 주요 수상 실적 역시 전무하다. 하지만 6월 15일(한국시간) 현재, 저지가 지닌 상품성과 비교될만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한 명뿐이다.
 
베이브 루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이자 야구를 전 세계적 스포츠로 발돋움시킨 그가 맞다. 최근 현지에서 소위 '잘 나가는' 스포츠 매체들의 메인 화면 가운데 저지의 이름과 그의 사진이 배치돼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다 저지가 홈런이라도 한번 치면 그의 타구속도와 비거리로 온통 뒤덮이기 일쑤다.
 
'루스가 지은 집(양키스타디움의 별명)'에는 어느새 저지의 재판소(The Judge's Chambers)라는 저지 팬들을 위한 응원석이 마련된 지 오래다. 때로는 좀 과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저지가 거두고 있는 성적은, 필자를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15일까지 저지의 성적은 61경기 22홈런(1위) 49타점 6도루 타율 .338 출루율 .443 장타율 .703.
 
저지는 2위 라이언 짐머맨(워싱턴 내셔널스)와의 3개 차로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 1위(22개)를 차지하고 있는데, -물론 어렵겠지만- 지금 페이스대로라면 시즌 끝날 때까지 36개의 홈런포를 추가할 수 있다. 그 경우, 저지는 역사상 최초로 신인 시즌에 50홈런 이상을 기록하게 된다(58개 페이스). 하지만 저지의 진정한 가치는 세부 지표로 살펴봤을 때 더욱 빛난다.
 
저지의 OPS(출루율+장타율)는 1.146(1위), wRC+(조정득점창출력)는 201(1위),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는 4.0승(1위)이다. 현존하는 타격 지표 가운데 가장 정교한 지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고 있다(동시에 250타석 이상 기준 역대 신인 1위). 심지어 이러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저지의 소속팀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팬과 안티팬을 가진 뉴욕 양키스.
 
이것이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과 스포츠 언론들의 관심이 저지에게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지난해까지 마이너리그 성적을 포함해 한 시즌 최고 23홈런에 그쳤던 그가, 불과 반 시즌도 지나지 않은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22홈런을 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선 지난 시즌으로 시간을 되돌려볼 필요가 있다.
 
애런 저지는 어떻게 강타자가 됐나?
 
[그림 1] 2016시즌(좌) 2017시즌(우) 애런 저지의 코스별 타율(포수 시점). 저지는 2016시즌 우측 하단 3개 구획에서 타율 .000을 기록했지만, 2017시즌 들어선 해당 코스에서도 높은 확률로 안타를 만들어내고 있다(자료=베이스볼서번트)
 
저지가 가진 능력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건 단연 6피트7인치(201cm) 282파운드(128kg)의 거구에서 나오는 파워. 저지의 2017시즌 평균 타구속도는 96.0마일(154.5km/h)에 달하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실제로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타구 6개 가운데 5개는 저지가 만들어낸 것이었다(최고 시속 121.1마일).
 
저지는 지난 12일에는 495피트(150.9m)짜리 홈런을 쳐내기도 했는데, 이는 스포츠전문매체 ESPN이 지난 2009년부터 모든 홈런의 비거리를 측정한 이래로 가장 비거리가 긴 홈런이었다. 하지만 저지가 이 같은 파워를 보여준 것은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평균 타구속도 96.8마일, 전체 1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지의 성적은 타율 .189 4홈런 10타점에 그쳤다.
 
왜 그랬을까? 그 원인은 타수의 50%에 달하는 삼진(42개) 때문이었다. 큰 키의 타자는 키가 작은 타자에 비해 커버해야 할 상하 스트라이크 존이 넓다(특히 낮은 코스에 약점을 보인다). 게다가 저지의 스윙은 지나치게 컸다. 이에 따라 헛스윙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저지의 성공 신화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는 데서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도움을 준 이가 바로 뉴욕 양키스의 타격 코치 앨런 코크렐이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저지는 코크렐과 함께 레그킥의 높이와 스탠스(stance, 서 있는 자세)를 낮추는 조정을 했다. 그러면서 기존 약점이었던 낮은 코스의 공과 빠른 공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 [그림 1]은 저지의 2016시즌 코스별 타율과 2017시즌 코스별 타율을 비교한 자료다(포수 시점).
 
2016시즌 우측(우타자 기준 바깥쪽) 하단 3개 구획에서 타율 .000을 기록했지만, 2017시즌 기준 같은 코스에서 각각 타율 .520, .250, .182로 좋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포심 패스트볼 상대 타율 역시 2016시즌 .148에서 2017시즌 .368로 좋아졌다. 여기에 지난해 44.2%에 달했던 타석당 삼진 비율이 29.0%까지 줄어들면서 파워 넘치는 타구를 더 자주 날려 보낼 수 있게 된 것.
 
[그림2] 2017시즌 애런 저지의 타구 분포도. 그라운드 바깥에 찍힌 붉은색 점이 홈런이다. 저지는 거포치곤 드물게도 구장 전역으로 강력한 타구를 날려보내고 있다(자료=베이스볼서번트)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은 일반적으로 당겨치기 성향이 두드러지는 다른 거포들과는 달리, 저지는 구장 전역으로 강력한 타구를 날려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야구통계사이트 팬그래프의 분류에 의하면 저지는 당겨친 홈런이 9개로 가장 많긴 했으나, 중앙 방향 홈런(6개)과 밀어친 홈런(7개)도 그에 못지않게 자주 나왔다.
 
타구 방향이 고르기에, 수비 시프트를 통해서 압박을 가하는 것도 맞혀 잡는 것도 힘들다. 그렇다고 쉽게 방망이를 내는 타자도 아니다(스윙 비율 41.8%, 146위). 이렇게 되면 볼넷 비율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15.4%, 9위). 그렇기에 현재까지 저지는 투수가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유형의 타자다. 하지만 이런 저지에게 불안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저지의 성적이 가진 불안요소, 그러나...
 
 
 
저지의 현재까지 성적은 높은 BABIP(인플레이 된 공이 안타가 되는 비율)과 HR/FB(뜬공 대비 홈런 비율)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먼저 저지의 BABIP는 .427에 달하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평균인 .300에 비해 무려 .127이나 높은 수치다. 물론 좋은 타구질과 빠른 주력을 지닌 타자는 평균보다 높은 BABIP를 시즌 내내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지의 경우엔 정도가 좀 심하다. 2000년대 이후 4할이 넘는 BABIP로 시즌을 끝마친 선수는 호세 에르난데스(2002시즌 .404)와 매니 라미레즈(2000시즌 .403) 뿐이다. 좋게 봐서 올 시즌 저지가 이들과 비슷한 BABIP로 시즌을 끝마친다고 해도, 저지의 BABIP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023이 감소하게 된다. 당연히 타율도 거의 비슷한 폭으로 하락할 확률이 높다.
 
다음으로 저지의 HR/FB은 무려 42.3%에 달하는데, 이는 HR/FB이 측정되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 시즌까지 단일 시즌 역대 1위였던 라이언 하워드는 39.5%, 역대 2위 짐 토미는 34.7%다. 두 명을 제외하면 32.0%를 넘은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즉, 뜬공 비율 자체를 늘리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저지라도 지금의 홈런 페이스를 유지하긴 힘들단 얘기다.
 
물론 이러한 수치를 이용해서 저지의 현재 성적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없다. 운이 포함됐건 되지 않았건 간에 저지의 활약은 본토 스포츠 팬들의 관심을 야구로 되돌리고 있으며, 그의 선천적인 힘은 지금까지의 통계 지표로 재단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신인 시즌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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