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고 숨 쉬는한…“구조는 끝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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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06. 오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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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아직 여기 개들이 있어요
② 보호소의 ‘꼬물이’들과 그 지킴이들
엄마개의 견사 탈출 소동…14마리 산모견과 새끼들 와글와글
실질적 엄마 역할은 활동가들 몫 “집보다 나은 보호소는 없죠”
유선미 포천쉼터 동물관리팀장이 쉼터를 빠져나간 어미 개 ‘꼬미’를 유인하기 위해 새끼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경기도 포천시 사설보호소 애린원이 철거된 지 150여일이 지났습니다. 구조된 1652마리의 개들이 옛 애린원 부지에 세운 ‘포천쉼터’에서 힘겨운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애니멀피플은 지난 1월 중순부터 한달간 비글구조네트워크를 도와 포천쉼터의 개체를 조사해 1천여 마리 개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유기견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러졌던 이 개들도 제각각의 외모와 성격을 지닌 하나의 생명임을 기록했습니다. 이들 중 4마리 개들의 사연을 전합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생후 2개월이 지난 강아지들의 입양, 임시보호를 적극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동물보호·친환경 패션업체 ‘그린블리스’, 환경·동물복지를 추구하는 패션문화잡지 ‘오보이’와 함께 네이버 해피빈에서 크라우드 펀딩도 진행합니다.▶▶네이버 해피빈 펀딩 ‘1040마리의 개들을 돕는 따뜻한 제품’

입양을 기다리는 새 생명들은 비구협 인스타그램(@aerin_adopt)과 네이버 카페(cafe.naver.com/forlives/)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꼬미’의 탈출은 순식간이었다. 봉사자가 산모병동 청소를 위해 케이지 문을 연 순간이었다. 틈새로 튀어나간 어미 개 꼬미는 뒷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산기슭에 서서 보호소를 내려다보면서도 금방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활동가들도 비상이 걸렸다.

오전 11시 반, 구역을 나눠 오전 청소가 한창 이뤄지던 때였다. 하던 일을 놓고 모두 뒷산으로 올랐다. 산은 전날 내린 눈으로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활동가들은 한 손에 간식, 다른 손엔 육각장 펜스를 쥐고 눈 쌓인 비탈길을 올랐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유기견 보호소 ‘포천쉼터’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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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에서 태어난 생명들


2월18일 경기도 포천시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쉼터(이하 포천쉼터)가 돌발 상황으로 소란스러워졌다. 1천 여 마리 개체가 지내다 보니 언제나 다사다난하지만, 견사에서 지내던 개가 도망치는 일은 흔치 않다. 이날 근무 중이던 4명의 상근 활동가들은 일상 업무를 멈추고 구조에 나섰다.

얼떨결에 튀어나온 어미 개 꼬미는 애초에 멀리 갈 마음이 없었는지 주변을 맴돌면서도 잡히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아보고, 간식으로 달래 보고, 평소 돌봐주던 활동가가 불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꼬미의 새끼가 활동가 품에 안겨 산으로 올라왔다. “예전에도 이렇게 해서 어미 개를 구조한 적이 있거든요.” 유선미 포천쉼터 동물관리팀장의 품 안에서 하얗고 포동포동한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껌벅거렸다.

쉼터를 빠져나가 뒷산으로 올라가는 어미 개 꼬미.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꼬미의 새끼는 지난해 11월에 태어나 생후 3개월을 넘긴 강아지다. 꼬미를 비롯해 포천쉼터에는 현재 14마리의 산모견들이 살고 있다. 옛 애린원 철거 때 이미 임신 상태인 개들이 구조 뒤 출산을 했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지난해 9월 애린원 철거 당시 이곳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중성화 미비’를 꼽았다. 유 대표는 “애린원은 중성화 미비로 한 마리의 유기견이 수십 마리의 유기견을 양산하는 가장 가혹한 사례를 보여준 보호소”라고 평가했다. 현재 1600여 마리로 추산되는 애린원의 유기 동물 수는 과거 2천~3천 마리 수준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산에서 구조한 ‘정우네’를 포획했을 때처럼 꼬미 새끼를 펜스 안에 두고 어미를 유인하고 있는 활동가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구조 초반 출산한 7마리의 새끼들은 거의 입양을 간 상태다. 이후 출산한 7마리의 어미 개와 강아지들이 현재 포천쉼터 산모병동의 입주견들이다. 어미 개와 새끼들, 병든 개체가 살고 있는 병동은 포천쉼터 내에서도 가장 따뜻하고 깨끗하게 관리되는 구역이다. 야간 당직자는 난로가 꺼지지 않도록 5시간마다 연료를 때고, 활동가들은 아침 청소도 이곳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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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순풍이의 힘겹던 출산


대체로 평온한 산모병동에서 ‘순풍이’는 눈에 띄는 어미였다. 몸집이 작고 아직 어려 보였다. 새끼를 9마리나 품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작은 바둑이였다. 순풍이는 철모르고 까부는 새끼들과는 다르게 케이지 구석에 멀찍이 앉아 있었다.

유선미 팀장은 순풍이가 임신 상태로 쉼터 주변을 떠돌던 개라고 했다. “구조 당시 몸은 작은데, 트랩에 배가 끼일 정도로 배가 빵빵해서 활동가들이 아가 잘 낳으라고 순풍이라고 이름을 붙여줬어요.” 유 팀장은 “혹시 구조 때 뱃속 새끼가 잘못 됐을까봐” 순풍이가 무사히 출산하는 그날까지 마음을 졸였다.

몸집이 작은 바둑이 ‘순풍이’는 임신한 상태로 구조됐다. 작은 체구로 9마리의 새끼를 출산했지만 한 마리는 강아지 별로 떠나고, 현재는 8마리리의 형제들이 순풍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해 12월 9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분만은 하루 종일 걸렸다. 출산이 임박하자 활동가들은 순풍이의 케이지를 이불로 가려주었다. 어린 순풍이는 배운 적도 없는 출산을 스스로 해냈다. 눈병으로 진물이 나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동안 열악했던 환경 탓일까, 가장 작은 한 마리는 태어나자마자 강아지별로 떠났고, 나머지 8형제가 순풍이 곁에 남았다.

생후 2달을 갓 지난 순풍이의 새끼들은 사람이 다가가면 손가락을 앙앙 물며 장난을 쳤다. 순풍이는 달랐다. 여전히 사람이 두려운 것 같았다. “그래도 매일 안약 넣어주고, 패드 갈아주고 돌봐주니까 이제 제 손을 덜 피해요.” 유선미 팀장은 하루하루 마음을 열어가는 순풍이를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눈 상태가 좋지 못한 순풍이는 새끼들을 돌보느라 병원 진료가 늦어지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순풍이네 뿐만 아니다. 지난해 12월 중순, 산에서 구조된 새 식구도 있다. 가파른 등산로 어귀에서 발견된 ‘정우네’다. 등산하는 주민의 제보로 발견된 정우네는 구조 당시 직접 옷을 벗어 강아지들을 안고 내려온 최정우 활동가의 이름을 따 어미 개의 이름이 정우가 되었다.

“발견 당시 어미가 산속에서 아기들을 어찌나 잘 보살폈는지 네 마리 모두 배가 빵빵하고 토실토실했어요.” 최 활동가는 새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사납던 어미 개들이 하루하루 지나면서 호의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케이지를 청소하는 사이 나와 뛰놀고 있는 정우와 정우새끼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달아난 어미 개 꼬미의 구조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활동가들은 정우네 가족을 포획했을 때의 방법으로 꼬미를 유인하기로 했다. 산기슭 평평한 곳에 육각장 케이지를 설치하고, 새끼 강아지를 근처에 둬서 어미를 유인하는 작전이었다. 꼬미는 새끼에게 기웃거리면서도 케이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 활동가들의 애를 태웠다. 꼬미의 ‘외동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1시간 넘게 오들오들 떨며 집 나간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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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올게”라는 거짓말


오후 2시 결국 활동가들은 꼬미 포획을 뒤로 미루고, 점심때를 훌쩍 넘겨 산에서 내려왔다. 사실 정해진 점심때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일단 애들 밥, 물은 한 번씩 다 주고 저희도 먹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오전 9시에 출근해 밤새 아이들이 잘 지냈는지 확인하고, 아픈 개체들 체크하고, 배식과 청소를 얼추 끝내면 사람 밥 시간은 이즈음이 되어서야 시작된다고 했다.

비구협 포천쉼터 활동가들이 2월18일 오후 쉼터로 돌아온 꼬미와 포획에 도움을 준 꼬미새끼를 안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현재 포천쉼터에 상근하고 있는 활동가는 모두 5명이다. 보호소가 산 중턱에 위치한 탓에 근처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출퇴근을 하고 있다.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지난해 9월 옛 애린원이 철거된 지 얼마 안 돼 포천쉼터로 합류했다. 다른 동물단체에서 일하다 온 활동가도 있었지만, 봉사활동을 왔다가 그대로 눌러 앉은 경우도 있었다.

최정우 활동가가 맨 처음 포천쉼터에 발을 들인 지난해 10월2일은 유선미 팀장도 기억하는 궂은 날이었다. “그날 비가 엄청 쏟아졌어요. 차양막이 물을 머금으니까 무거워진 거예요. 설마 설마 했는데 물 무게를 못 견디고 차양막이 무너진 거죠. 온몸에 물세례를 맞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첫 봉사를 힘들게 경험하고 나면, 외려 현장이 꺼려질 법도 했을 텐데 최 활동가는 이후 봉사자에서 정식 활동가가 됐다.

2월5일 영하 15도 날씨에 얼어붙은 물그릇을 정리 중인 최은영 봉사자. 최영은 교육연수생
날씨가 궂으면 개밥 걱정에 보호소부터 찾는 봉사자도 있다. 지난 2월5일 포천쉼터를 찾은 봉사자 최은영씨는 추운 날엔 마음이 더 바빠진다고 했다.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50mm 내외의 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 15도로 뚝 떨어진 날이었다. 전날 쌓인 눈 탓에 차가 산 중턱까지 잘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일단 출발했다고 했다. 물도 못 마시고 있을 개들 얼굴이 떠올랐다. “이렇게 물도 얼고 똥도 어는 날에는 물그릇에 얼음부터 깨줘야 애들이 물이라도 마실 수 있거든요.”

다행히 이날은 평일 오전이지만 최은영씨를 포함해 두 명의 봉사자가 보호소를 찾았다. 최근 들어 평일 봉사자는 귀한 일손이다. 2월 포천쉼터의 평일 봉사자 수는 하루 1~4명 수준이다. 그나마 한 명도 없는 날이 8일 이상이다. 상근 활동가 5명과 쉼터 고용인 너댓 명만으로 1천 마리 개의 견사 청소와 배식을 챙기기란 벅찬 게 현실이다.

봉사자 최은영씨는 청소를 하다 보면 사진 한 장 찍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청소하러 들어가면 애들이 저를 알아봐 주고, 가랑이 사이로 막 파고들어요. 안기고, 뽀뽀하고, 올라타고. 시간이 많으면 애들하고 놀고 싶은데, 옆방으로 또 가야 하니까 ‘또 올게’ 이렇게 거짓말하고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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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구조는 끝나지 않았다


사람도, 시간도, 물자도 부족한 이곳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 2월5일 늦은 점심 식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포천쉼터 식구들에게 물었다. 후원금, 생수, 사료, 이불, 봉사자, 의료 지원 등 여러 의견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의견이 모아질수록 봉사자와 활동가들은 공통적으로 관심과 입양을 이야기했다.

“불같은 관심이 아니라 미적지근하더라도 꾸준히 아이들한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애린원이 해체를 했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갖춰진 견사에 들어갔으니까 구조가 끝났다고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아무리 좋은 보호소라도 집 같을 순 없잖아요. 입양도 해주시고 이곳에 아직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걸 오래오래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비구협 포천쉼터 쉼터에서 2월18일 오후 한 봉사자가 정우가족과 놀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산으로 달아났던 꼬미는 결국 제 발로 보호소로 돌아왔다. 새끼가 보고팠던 걸까. 뒤늦은 점심을 챙기던 활동가들도 모두 숟가락을 놓고 다시 달려 나왔다. 방 청소 차례가 된 정우네는 견사 앞 운동장에 나와 하루 치 운동량을 채우고 있었다. 새끼들은 사람이 좋은지 펜스 주변에 와서 장난을 쳐댔다.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는 생후 2개월이 지난 강아지들의 입양, 임시보호를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다. 입양을 기다리는 새 생명들은 비구협 인스타그램(@aerin_adopt)과 네이버 카페(cafe.naver.com/forlives/)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26일 비구협에 따르면, 현재 개인 및 단체에서 입양 또는 임보가 완료된 개체는 모두 370여 마리다. 애린원에서 구조된 1600여 마리는 엄청난 숫자였지만 어느새 4분의 1이 줄어들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을 받은 결과였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권혜성 최영은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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