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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5화 청첩장- 나 아닌 다른 남자와?

15화 청첩장- 나 아닌 다른 남자와?2020.07.28.

#29-2 결혼해, 나 제대하면. 외출해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사왔고, 틈 날 때마다 열심히 읽었어. 계속해서 잔상이 남는. . 무거운 꿈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내 무의식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었는데, 내 짐작대로 네가 꿈 속에서 보여준 새장 속의 괴물들은. . 너와 내가 함께해서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아이들도 병에 걸릴 지 모른다는 나의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이었어. 나는 널 늘 천사 같다고 생각했거든. 예쁘고 착하고 순수하고. . 영혼까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꿈 속에 등장한 너의 부모님의 이미지가 신과 같았나 봐. 만약 천사에게 부모님이 있다면 그런 모습이겠지. 우리 가족의 등장은 너를 소개하면 마주하게 될 반대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르겠어. 특히나 보수적인 우리 아버지께서 무어라 하실지. . 그런 나의 총체적 두려움을 꿈 속에서는 누나가 대신해서 표출해줬던 것 같아. 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면, 누나가 외친 “이 결혼은 절대 안돼. 헤어져.”는 ‘잠재의식의 희망 표현’ 이라고 볼 수 있어. 난 더이상 내 사랑에 그 어떤 두려움과 망설임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 내 무의식 속에서는 이런 갈등이 존재 했었나 봐. 그렇다고 물러서고 싶지 않았어. 내 무의식이 어떻게 느끼든 나는 정면으로 맞설 생각이었거든. 제대하면 너랑 결혼하겠다고. . 부모님의 허락을 꼭 받아내겠다고 결심 했고. 여하튼 난 내 꿈의 해석을 위해서 한 동안 늘 프로이트의 책을 끼고 살았거든.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이 내무반 사람들에게는 신기해 보였나 봐. 고참 한 명이 궁금한지 자기 꿈에 대해서 해석해달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시작된 부대원들에 대한 꿈해몽은 입소문을 타게 되었고, 내 군생활이 조금은 편해지는 계기가 돼. 꿈 속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밀한 속 이야기도 하게 되고. 상대와 더 친밀 해지게 되거든. 우연한 계기로 군 생활에 조금은 숨통이 트일 무렵. .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돼. 우리 부대는 후방 지원 부대라 실제 시위 진압에는 투입되지 않았었는데, 연희동 전두환 사저에 시위대가 급습하면서 그 곳과 가장 가까운 우리 부대가 출동하게 돼. 늘 그렇듯 대기만 하다가 돌아 올 거라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평화로웠어. 시위대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부대원들이 그걸 쳐다 보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노래를 부르던 인원이 싹 사라졌고, 어디선가 5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갑자기 나타났어. 3미터는 족히 될 법한 쇠파이프를 바닥에 끌고서. 끝이 뾰족하게 갈린 쇠파이프를 아스팔트 바닥에 긁으니 스파크가 일어나더라. 저승사자를 맞닥뜨리면 이런 느낌일까. 등 줄기를 타고 차가운 식은 땀이 흘러내려. 옆에 동기가 나지막이 말했어. “저 파이프는 우리 방패도 다 찢어 놓는 거야.” 예상대로 시위대는 쇠파이프를 휘두르면서 우리 곁으로 다가왔고, 속수무책으로 방패는 찢겨 나가기 시작했지. 노련한 시위대 앞에서 우리 부대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더라. 왼쪽에서 막던 부대가 도망가기 시작했고, 바로 내 앞에서 방패를 들고 있던 고참도 사라져버렸어. 순간 내 머리 속에 스친 생각은 ‘도망가자.’ 내 옆의 동기가 뛰기 시작하자 나도 뒷걸음 치면서 뛸 준비를 했어. 그리곤 몇 발자국 안 간거 같은데 발 밑에서 물컹하고 밟히는 느낌이 들었고, 중심을 잃고서 뒤로 고꾸라졌어. 넘어지고서 시위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어. 방호복을 입었지만 갈비뼈 부근이 욱신하고 아프더라. 더 맞다가 큰 일 날 것 같아서, 정신차리고 틈을 봐서 냅다 달려 도망쳤어. 오로지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뛰어서 뒷 골목으로 갔는데, 이미 거기엔 우리 부대원들이 모여 있더라. 다들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한바탕 휘몰아친 공포 속에서 생각나는 건 네 얼굴 밖에 없었고, 난 널 떠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어. 그 날 이후 네가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고, 너에게 전화를 했었잖아. “나 많이 다쳤어. 혹시 면회 올 수 있어?” 사실 갈비뼈에 금이 가긴 했지만. . 많이 다친 건 아니었어. “어쩌다가? 어딜 다쳤는데. .” “어 시위대 진압 나갔다가 쇠파이프로 좀 . . 너 보면 덜 아플 것 같아.” “알겠어. 갈 게.” 네가 오는 날에 맞춰서 외박증을 받아 놨었고. . 입대 전 굴욕적이었던 5초의 첫 경험을 만회하기 위한 준비를 했어. #29-3 결혼해, 나 제대하면. 네가 면회 오기로 한 날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서 계속 실실거리며 웃었어.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지 ‘기필코 오늘은 내 여자로 만들겠어.’ 사실 지난 번 5초는 . . 남자로서 자존심이 무척 상했고. . 그래서인지 그 뒤로는 너와 다시 밤을 보내지는 못했잖아. 나는 군대와서 성교육을 새롭게 받았어. 여기엔 사회에서 여자들과 온갖 경험을 다하고 온 전문가들이 가득하더라고. 그동안 궁금하던 모든 것들을 듣고 배웠어. 이제 전문가들에게 배운 것들을 실습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거야. 신나는 마음으로 ‘외박증’을 받아서 나갔더니 경찰서 앞으로 네가 와있더라. “J야 온다고 힘들었지?” “아니야. 근데 아픈 데는 어디야? 좀 괜찮아?” “어. .사실 갈비뼈에 금이 가긴 했는데 많이 다쳤다는 건 거짓말 이었어.” “어쩐지 의경이 많이 다친다는 게 이상하더라.” 너에게는 그 날의 두려웠던 순간을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어. 괜히 걱정시킬 것 같고. . 너와는 즐거운 이야기만 하고 싶었거든. 그래야 너 웃는 모습 볼 수 있으니까. “우리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할까?” “술 마셔도 되는 거야? 외박증 받으면 괜찮은 거니?” “어. 괜찮아.” 네 손을 잡고 대학로에 갔어. 분위기 좋은 술집으로 들어갔었는데, 왁자지껄한 그 곳의 분위기에 취해서 우리도 많이 웃고 즐거웠지. 단 하루의 자유였고, 그 순간에 너랑 있다는 게 그저 좋았어. “우리 저기 들어갈까?” 내가 손으로 가르킨 곳은 모텔. . 네 얼굴을 힐끗 봤는데,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더라 ‘ 휴. . 다행이다.’ “.근데 나 오늘은 너랑 손만 잡고 잘 거야.” 네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귀여웠어. 난 웃으면서 말했지. “글쎄.” “우리 그냥 플라토닉 러브 어때?” “이번엔 좀 다를 걸.” “응큼해. 아주 그냥.” 선임들이 알려준 깨끗하고 최신식의 모텔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결재를 마쳤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었지. 어색하고 망쳤던 첫 경험이 그래도 도움이 되었던지 그때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 “나 먼저 씻을 게.”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서 너도 씻었고. . 나는 네가 나오기 전까지 떨리는 마음으로 침대에서 앉아 있었어. 샤워를 마치고 나온 네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그 것 마저 예뻐 보이더라. 네가 침대 곁으로 와서 이불 속으로 들어왔어. 아직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미 내 가슴 속은 미친 듯 떨려. “J야 불 끄는 게 낫겠지?” “어.. 근데 너 지난 번 보니까 어두운 데서는 코랑 입도 구분 못하더라.” “아하하. 부끄럽게 그 말은 왜 갑자기. .” 너의 생뚱 맞은 말에 내 가슴 속 쿵쾅거림이 조금 사그라들었어. 오히려 마음이 진정 되어서 다행이었다고 할까? 이제 부대 내 전문가들에게 배운 것들을 하나씩 실천해보려고. 나는 자연스럽게 네 입을 향했고, 처음은 약하게 하지만 조금씩 강해지게. . 그리곤 너의 목을 부드럽게 사랑해 줬어. ‘전문가는 서두르지 않는다.’ 전국에서 키스를 제일 잘한다던 선임의 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네게 다가갔지. 꽤 오랜 시간 공들여서 너의 몸을 고급 도자기 어루만지듯 터치했던 것 같아. 서두르지 않으면서 차근차근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갔고 어느 순간 내가 너를 리드 하고 있었어. 가느다랗게 들리는 너의 신음 소리. 너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사랑해’ 라는 말을 하고 싶어 졌어. 하지만 너무 성급해. ‘아직. . 조금만 더.’ 내 마음을 다독이며 다음 단계로 계속해서 나아갔어. 개울 물에 조용한 파문이 일듯 조금씩 너의 닫힌 문을 열어갔고 드디어 너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애타게 바라보는 너의 눈빛을 느꼈어. “아” 너의 탄식 섞인 소리와 함께 나 역시 너와 같은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어. 우리는 절정의 순간에 참을 수 없는 사랑을 느끼면서. . 그렇게 끝을 함께 했잖아. 내 가슴에 파르르 떨면서 안겨있는 너의 숨소리가 가쁘더라. 아무 말 없이 서로 안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는 것이 가슴 벅찼어. 한참을 우리는 말없이 안고 있었는데 네가 그 정적을 깼어. “너 제대까지 이제 얼마 남았어?” “40일.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지?” “어. .그러네. 그런데. .만약에. . 말야. . 나 다른 사람하고 결혼하면 . . 그러면 어떡할 거야?” “갑자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음..아니야. 그냥. .” 순간 머뭇거리는 네 목소리가 이상했지만, 우린 방금 전까지 사랑을 나눴는데. . “이상한 생각하지말구. . 나 제대하면. .그때 결혼해..” 나는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은 내 진짜 속마음을 너에게 전했어. 나의 진심을 너 역시 알 거라고 생각했었고.. “조금만 더 나 기다려 줄래?” “…” “너 실망시키지 않을 게.” 너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이 날 느꼈던 너의 사랑으로도 난 네 대답을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했어. 다음 날 아침 널 서울역 까지 데려다 주고 부대로 복귀하는데. . 내 몸 구석구석에서 너의 채취가 느껴 졌어. 남자는 향기로 기억하니까. 덕분에 그 날은 계속해서 너와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는. 그런데 이 날 이후로 너와 통화가 안되더라. 일주일 동안이나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 난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무슨 일 있는 걸까.’ 계속 틈 날 때 마다 네게 전화를 했었고 드디어 10일 만에 통화를 할 수 있었어. “J야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됐던 거야?” “아.. 나. .” 네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른.. 뭔가 이상했어. “걱정 많이 했어.” “나 얼마 전에 선봤었는데. . 다음 달에 결혼하기로 했어.” “뭐? 장난치지마.” “나도 . .어떻게 너한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런 장난 싫어. 그만해.” “미안해. 진짜 미안해. 그런데 나한테도 사정이 있어서. 갑작스럽고 황당한 너의 말이 거짓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차분하고 조용한 네 말투가 진짜라고 말해주고 있었어. 당장 미칠 것 같은 데 뒤에 서있던 30일 고참이 자꾸 전화를 끊으라면서 툭툭치는 거야. “J야. 나 전화 끊어야 될 것 같아. 이따 다시 할게.” 난 공중 전화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자 마자 뒤에 있던 고참의 뺨을 갈겨 줬어. 눈 앞에 보이는 게 없어서 두려운 것도 없었거든. 그 고참은 광주 출신인데, 내가 부산 출신이라며 유달리 나를 괴롭혔어. 게다가 자기는 광주 조폭 출신이라나? 한 번 패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그게 이 날일 줄이야. 고참은 내게 오른 쪽 주먹을 날렸는데 눈에 움직임이 다보여. ‘조폭이었다더니.’ 그리고는 내게 한참을 두들겨 맞았고, 마지막에는 무기력한 상태로 바닥에 누워 있었어. 난 그냥 그 인간을 내버려 두고 내부반으로 돌아왔는데. . 정신 차리고 보니 하극상으로 불명예 제대 하는 건 아닌 지 걱정이 되더라.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만 때렸고, 진짜 조폭이었다면, 후임한테 맞은 게 자존심 상해서 아무 말 못할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 보다 네가 결혼한다는 그 말이 계속 머리 속에 맴 돌아서 미칠 것 같았어. ‘사실이라면 난 어떡해야 하는 걸까..’ 머리 속은 복잡하고 잠은 오지 않던 그 날 밤. 갑자기 내게 맞은 선임이 우리 내부반 문을 벌컥 열고서 불을 켜더니 소리치는 거야. “야. 건방지게 고참 때린 너 나와.” 참. 어이가 없더라. “맞았으면 그냥 자지. 맞은 게 뭐 자랑이라고 애들 깨워. 불만 있으면 나랑 한 번 더 붙던가.” 잠시 이 고참이 생각하더니 나보다 10일 위에 고참을 불러서 때리려고 하는 거야. 그 꼴은 못 보겠더라. “야. 그냥 나 때려.” 그 인간 앞에 서서 눈을 감았어. 그리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눈 앞이 깜깜해지더라. ‘아. .내 코. .’ 콧대가 욱신 거리면서 피가 흘렀어. 다음 날 거울을 보니 권투선수의 시합 후 모습 같았어. 코는 잔뜩 부어 있었고, 콧대가 조금 내려 앉은.. 내 얼굴을 본 소대장이 물었어. “너 얼굴이 왜 그런가. 싸웠나” “아닙니다. 휴가 나갔다가 넘어졌습니다.” 분명히 소대장은 맞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제대가 며칠 남지 않은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복잡한 일이 생기길 바라지 않았을 거야. 퉁퉁부었던 코는 다행히 일주일이 지나니 가라앉기 시작했어. 더는 널 만나는 걸 늦출 수 없어서 소대장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하기로 했어. “저 소대장님 제가 여자 친구가 있는데요.” “어. 지난 번에 면회 왔던 그 여성?” “네 그 여자친구가 다음 달에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지난 번 다친 것도 이 문제와 관계 있는 건가?” 소대장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 이해하시는 것 같았어. “저 제대가 얼마 안남았지만 울산에 다녀올 수 있을까요?” “꼭 가야하나?” “저 못 가면 탈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그럼 다녀와” 내 심각한 얼굴에서 진심을 보셨던 소대장님께서 휴가를 허락해 주셨어. 그 길로 경찰서를 나와 울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어. ‘네게 나 다쳤다고 면회 오라고 했듯 너도 내가 보고 싶어서. . 그래서 나 휴가 나오라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난 분명히 나랑 결혼하자고 했는데. . 어떻게 갑자기 다른 남자랑. .’ 터미널 근처에서 너랑 만나기로 한 커피숍으로 뛰어 갔어. “J야.” “어. .왔어?” 넌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내가 자리에 앉자 마자 핸드백 속에서 봉투 하나를 건네더라. “이게 뭐야?” “열어 봐.” 봉투를 열자 진짜 청첩장이 나왔고, 너의 이름이 적혀 있더라. 그때 넌 내게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은데. . 무슨 말인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어. 너무 황당해서 일까? 귓 가에 ‘윙윙’하는 이명만 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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