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미인도〉

한국 미의 재발견 -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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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신윤복(申潤福, 1758?~1813 이후), 비단에 채색, 114×45.5㎝,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의 미인도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사료되는 혜원의 〈미인도〉는 익히 잘 알려진 그림이다. 소매가 좁고 짧은 가슴의 삼회장저고리에 속옷을 여러 겹 껴입어 배추처럼 부풀린 옥색치마는 하후상박(下厚上薄)의 복식미를 대변한다. 배를 내민 듯한 치마와 작은 키는 어찌 보면 높은 의자에 걸터앉은 것처럼 보이나 이와 같이 아담한 체구에 치마 중간 부분이 부풀거나 들려 마치 상체를 뒤로 뺀 듯한 모습은 신윤복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매우 친숙한 모습이다. 국보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및 《여속도첩(女俗圖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 등장한 여인들이 그러하다.

조선 그림의 특징이기도 한 담채의 차분한 아름다움이 짙게 배인 화면의 미학은 주인공이 취한 다소곳한 자세와 가체가 얹힌 잘 빗질된 머리 형태, 정돈된 옷매무새에 의해 더욱 배가된다. 화면의 퇴색을 감안할 때 옅은 노랑저고리에 쪽빛 치마, 그리고 피부색에 가까운 안면 설채는 단조로워 보인다. 그러나 검자줏빛을 띤 머리 오른편의 댕기와 남색 끝동을 단 삼회장저고리의 자줏빛, 특히 선홍이 돋보이는 속고름은 담채 위주의 복색에 절묘한 액센트 효과를 준다. 앞으로 늘어뜨린 흰 치마끈은 당시에 유행하던 차림이었다.

노리개는 다소 심심해 보이는 한복의 형태와 색조에 화사함을 준다. 조선시대 이래 부녀자들의 몸치장에 쓰인 대표적 장신구인 노리개는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 한복에 구심점을 주면서 화사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미인도〉의 미인이 지닌 노리개는 삼작(三作)이 아닌 단작이지만 알이 유난히 굵은 구슬 세 개로 엮은 삼천주(三天珠)이다. 삼천주 노리개는 왕실에서만 패용할 수 있는 것으로 큰 진주나 자만옥 구슬이 일반적이다. 이 그림에서는 자색을 띠고 있으며 흰색 문양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칠보(七寶)일 가능성이 크다. 주인공의 가슴까지 올라간 손은 마치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자연스런 자태이나 옷고름의 나비매듭을 푼 뒤 마지막 매듭을 풀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노리개를 옷고름에 매어 늘어뜨리기 위한 동작으로 봄이 옳을 듯하다.

이 〈미인도〉에는 제화시 아래 '혜원(蕙園)'의 관지에 이어 그의 본명을 알려주는 주문방인 '신가권인(申可權印)'과 또 다른 알려지지 않은 자(字)로 사료되는 백문방인 '시중(時中)'이 있다. 신말주의 11대가 다름 아닌 권자(權字) 돌림으로 이 〈미인도〉 외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기 업은 여인〉 화면 오른쪽 상단에 붙은 첨(簽) "혜원(호)은 신가권(이름)이며 자는 덕여다(蕙園申可權字德如)"에 의해 본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신윤복은 예명이거나 필명으로 생각된다.

가슴에 그득 서린 일만 가지 봄기운을 담아 盤礴胸中萬化春
붓끝으로 능히 인물의 참모습을 나타내었다 筆端能與物傳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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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산 시리즈 <한국 미의 재발견> 제6권.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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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복 문화기관단체인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1976년 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일한 이래 국립공주박물관장, 국립청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거쳐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장에 재임 중이다. 기획한 전시는 ‘조선 초기 서화’, ‘한국 근대회화 백년’, ‘혜원 신윤복’, ‘우리 호랑이’, ‘아름다운 금강산’, ‘조선시대 풍속화’, ‘다향 속에 어린 삶과 예술’, ‘조선시대 산수화’ 등이 있다. 저서로는『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간다』,『한국의 말 그림』,『회화』,『동물화, 다정한 벗 든든한 수호신』 등과 10여 권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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