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 희망을!] "대학 5학년입니다"… 못떠나고 퇴적되는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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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7.19. 오후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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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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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어렵고 기업선 졸업예정자 선호… 학교 못떠나는 청년들 / 고용절벽에 ‘졸업유예’ 보편화 된 대학가 / 졸업후 3년 이상 지난 구직자보다 서류전형 통과할 확률 50배나 높아 / 유예자수 2017년 1학기에만 1만3000명 / 사회적 비용도 약 25억원에 달해 / 제도운영 103곳중 67곳 수강 의무화 / 학생들 취업준비·등록금 부담 이중고 / 대학측 “각종 평가 지표서도 불이익” / 관련법 국회 계류… 정부 대책 시급
서울소재 한 4년제 대학교에 다니는 김모(27)씨는 다음 학기부터 대학생도, 대학졸업자도 아닌 ‘애매한’ 신분이 된다. 정규과정인 4년을 초과해 5년간 대학 수업을 들었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김씨는 고심 끝에 졸업을 유예하기로 했다.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최모(25·여)씨는 김씨의 사례가 부럽기만 하다. 김씨와 마찬가지로 취업준비생인 최씨는 졸업한 대학에 졸업유예제도가 없어 8학기를 마친 뒤 ‘칼졸업’을 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역대급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청년들이 대학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졸업요건을 충족하고도 일정 기간 졸업을 미루는 졸업유예가 보편화됐지만 여전히 정부 정책은 물론 법적 근거마저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학별로 졸업유예제도가 제각각이고, 졸업유예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매년 수십억원씩 발생하는 등의 문제점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졸업유예 줄고 있지만 ‘취업에 유리’ 인식 여전

19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 중 올해 1학기에 졸업유예제도를 운영한 곳은 103개대, 졸업유예자 수는 약 1만3000명이었다. 이는 지난해 1학기의 107개대, 1만8000명에 비해 감소한 것이나 아직까지 상당수 대학생들이 졸업유예를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3학점 정도를 남겨놓고 졸업을 미루는 경우를 포함하면 실질적인 졸업유예자 수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대학생들이 이처럼 졸업을 늦추려는 이유는 뭘까.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올해 대학 졸업예정자 6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졸업유예의 이유로 ‘인턴십 등 직무 경험을 쌓기 위해’(63.3%)란 답변이 가장 많았고, ‘외국어 점수 등 부족한 스펙을 채우기 위해’(47.6%), ‘무능력자로 보일 것 같아서’(45.2%), ‘채용 시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이 많아서’(37.3%) 등이 뒤를 이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도 대학 졸업시점이 채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동의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매출액 500대 기업 100곳과 일반기업 100곳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서류전형 단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8대 스펙을 조사한 결과 ‘최종학교 졸업시점’이 평균 19.6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 조사에서는 졸업예정자가 졸업 후 3년 이상이 지난 구직자보다 서류전형을 통과할 확률이 약 50배나 더 높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사회적 비용 연간 수십억원에 수강 의무화 경우도


졸업유예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올해 1학기에만 약 25억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학기에는 약 36억원, 2014년 2학기에는 56억원이었다. 졸업유예자들이 대학에 내는 등록금 총액만 이 정도 규모다. 올해 졸업유예제도를 운영하는 103개대 중 절반이 넘는 67개대는 졸업유예생의 강의 수강을 필수로 못박기도 했다.

졸업유예자들은 등록금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하소연한다.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일수록 졸업유예라는 선택지를 잃는 경우가 많다. 지난 학기에 졸업을 한 차례 유예했던 정모(24·여)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학기당 50만원 정도를 내야 해 부담이 컸다”며 “다음 학기에 취업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단 졸업부터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졸업유예자들을 떠안으면서 발생하는 비용 때문에라도 등록금을 걷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지영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책연구팀장은 “학생들이 졸업유예를 해도 재학생으로 분류돼 대학이 교육부의 각종 평가지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고, 도서관 등의 시설을 계속 이용하기 때문에 (등록금 징수를) 대학만의 문제로 돌리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관련 법 개정 무소식… “정부 차원 대책 마련해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민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0월 대학이 졸업유예자에게 수강을 의무화하거나 수업료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약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앞서 19대 국회에서도 안 의원은 같은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교육부도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해 졸업유예자 수를 대학 재학생 수에서 제외하는 등 정책적 대응을 시작했으나 관련 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대학생들이 졸업하고 오랜 기간 동안 뭘 했느냐는 질문이 두려워 졸업유예를 선택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며 “정부 차원에서 ‘졸업유예를 해야 취업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깨기 위한 정책들을 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나라가 고등교육을 너무 빨리 시장에 맡겨버린 탓에 대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아져 채용시장에서 인력수급이 불균형해졌다는 것”이라며 “대학 정원을 합리적으로 줄이고 고등교육의 질을 높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日, 대학 심사 거쳐 승인 받은 학생만 ‘졸업유예’… 해외 사례는

대학생들의 졸업유예가 우리나라 대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대만 대학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학생 졸업유예 사례를 찾아볼 수 있으며, 일본의 대학들은 또 다른 형태의 졸업유예제도를 운영 중이다. 19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대학생 졸업유예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청년취업난으로 졸업유예를 신청하는 대학생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실태조사나 대응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만에서는 교육부가 통계청과 함께 졸업유예자 수를 공식집계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는 ‘대학 및 전문대학 학생들의 졸업유예 상황과 대응전략’을 수립해 실시 중이다. 대만의 대학 졸업유예자 수는 2015년 기준 4만5322명으로 전체 졸업생 수 대비 18.1%에 달한다.

대만 교육부는 대학들이 졸업유예 사유를 우선적으로 파악하고, 남은 학기에 최대 학점을 수강할지라도 졸업학점이 부족한 학생들을 선별해 3학년 때 미리 통보와 경고를 하는 등 학사관리를 강화하도록 했다. 대만 대학들도 교수학습시스템을 강화하고 학점 미달 시 미리 학생들에게 경고하는 방향으로 학사관리시스템을 개선하는 등의 자구노력을 진행 중이다. 대학들은 교육부 지침에 따라 졸업유예생들에게 비용을 부과하며, 졸업유예금을 징수할 때는 명확한 목적과 배경, 기준 등을 함께 공개한다.

일본에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이 취업 내정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일부 대학이 임시방편으로 ‘졸업연기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대학 4학년 1학기에 이미 취업 여부가 결정되는 일본 특유의 채용 관행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일본의 대학들은 심사를 거쳐 승인을 받은 학생만 졸업을 연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순히 ‘대학생으로 남고 싶다’거나, ‘취업 시 신입사원 자격을 얻고 싶다’ 등의 유예 사유는 인정하지 않는다. 승인을 받은 학생들은 전체 수업료의 2분의 1 정도를 등록금으로 내야 한다.

유럽과 미국 등 서구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학유예가 없지만 대학생들의 재학기간이 길어지고 있어 정부가 보조금 혜택을 줄이거나 수업연한을 제한하는 등의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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