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끼리 다해 먹는다’고 비난
체육회 직원은 ‘감독 교체’ 엄포
1급 심판 뽑는다기에 지원하니
같이 지원한 사람이 면접관
도약 기회에서 떨어지면 안 돼
컬링연맹 등 ‘중심’이 바로 서야
김 감독의 부친인 김경두 경북컬링훈련원장은 “민정이가 올림픽을 치르면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해 심리 치료를 좀 받아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레슬링 선수 출신인 김 원장은 1990년대 컬링을 국내에 도입했고, 온갖 오해와 괄시 속에 가족·친지를 모아 컬링을 일으켜 세운 인물이다.
‘팀 킴’은 전날 LG전자 청소기 광고를 찍었고, 이날은 MBC ‘무한도전’ 촬영이 잡혀 있었다.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고,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경제적으로도 형편이 풀리게 됐지만 김 감독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김씨 패밀리끼리 다해 먹는다.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질시와 냉소, 대한컬링경기연맹이 대한체육회 관리단체가 된 이후 받은 푸대접, 선수들 휴대전화를 받아 보관하고 혼자 미디어를 상대하면서 겪은 고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김 감독은 인터뷰를 하면서 다섯 번 눈물을 보였다. ‘컬링이 반짝 관심을 받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보였다.
Q : 사람들이 왜 컬링에 열광했다고 보나.
A : “팀원끼리 힘을 합쳐 뭔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신선하게 보였던 것 같다. 어떡하든지 해 보려는 눈빛과 애절한 몸짓을 봤고, 강한 팀들을 자꾸 이겨나가면서 우리 팀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 같았다. 심판의 영향이나 운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깔끔함도 좋았던 것 아닐까.”
Q : 대회 기간에 휴대전화를 반납한 건 선수들 스스로 결정한 건가.
A : “캐나다 컬링 영웅 케빈 마틴과 라이언 프라이가 ‘외부 환경과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 줬다. 선수들에게 휴대전화 반납을 제안했는데 생각보다 반발이 크지 않았다. 대신 mp3로 음악을 듣고 알람은 시계로 맞추고, 보드게임도 가져왔다. 첫날 경기 뒤 언론 반응을 접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돌려주면 안 되겠다’ 싶었다.”
Q : 혼자 미디어를 상대하느라 고생했는데.
A : “미디어존(믹스트존)이 그렇게 무서운 곳인 줄 몰랐다(웃음). 무조건 90도로 인사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확장시킬 수 있었다. 3승을 하고 난 뒤 ‘몇 승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고 ‘진짜 우리가 어떻게 준비했는지 잘 모르는구나’ 싶었다. ‘3, 4승 하자고 올림픽 온 것 아니다. 한국 컬링의 새 역사를 쓰고 싶은 사명감이 있다’고 말했다.”
Q : “김씨 패밀리끼리 다해 먹는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을 텐데.
A : “늘 듣던 얘기다. 도대체 뭘 먹는지 묻고 싶다. 먹는 건 욕밖에 없는데. 내가 뭔가 이득을 위해 한다면 부끄러웠을 거다. 아버지는 자기 돈 써 가면서, 자식 입장에서는 왜 저러나 할 정도로 희생하며 컬링을 이만큼 올려놨는데…. 아버지가 앞장섰고 우리가 따라간 그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휴대전화까지 걷으면서 돌파구를 찾았고….”(이 대목에서 말이 끊겼다. 김 감독이 첫 눈물을 보였다.)
Q : 선수들은 뭐라고 했나.
A : “컬링연맹이 대한체육회 관리단체가 되고 난 뒤에 체육회 사람이 찾아와 ‘컬링은 가족끼리 다 한다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심지어 ‘지도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교체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선수들은 올림픽을 앞두고 이런 질문을 받으니 황당하고 화가 났다고 했다.”
Q : 올림픽 대표 선발전 때 퇴장을 당했고, 그 때문에 징계도 받게 되는데.
A : “1차 대표 선발전을 치르는데 무자격자가 심판장을 맡았다. 특정 팀에 유리한 판정이 나왔고, 급기야 그 팀이 우리와 경기를 하다가 스톤을 터치했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지만 심판장은 ‘그런 거 하지 않습니다’며 넘어가려고 했다. 언성이 높아지자 심판장이 퇴장을 명령했고, 난 경기장 밖으로 쫓겨났다.”
Q : 그 심판장이 자격 없는 사람이었다는 말인가.
A : “얼마 전 컬링연맹에 1급 심판을 뽑는다는 공고가 떴다. 나를 포함해 지원자가 12명이었는데 그중에 날 퇴장시킨 심판장도 있었다. 그분이 지원자 겸 면접관이었다. ‘이게 가능하냐’고 연맹 직원에게 물었더니 ‘면접관 하다가 자기 차례 되면 지원자 자리에 앉아서 면접 보면 된다’고 하더라. 난 떨어졌고 그분은 합격했다. 앞으로 일이 더 걱정이다. 난 징계를 받으면 소송을 할 생각이다.”
김 감독은 남편인 장반석 믹스더블팀(남녀 혼성) 감독과 사이에 여섯 살, 세 살 아들을 뒀다. 두 사람은 아이들을 할머니한테 맡기고 1년 내내 대표팀에 매달렸다. 맡은 팀이 달라 한 달 동안 인천공항에서 딱 1시간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큰아이가 자다가 깨서 “내 친구는 엄마, 아빠랑 소풍도 가는데 컬링 안 하면 좋겠다”며 운 적도 있었단다.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김 감독 눈가에 또 물기가 맺혔다. 우울증이 온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우울증은 아닌데 뭔가 치료는 필요한 것 같다. 자꾸만 불안하다”고 했다.
Q : 뭐가 불안한가.
A : “아직 끝난 게 아닌데 끝난 것처럼 가는 게 불안하다.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하는데 뭔가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생각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고 있어서. 캐나다 세계선수권(3월 17일 개막)은 한 템포 쉬고 가는 걸로 계산했는데 성적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Q : 선수들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A : “애들은 생각보다 무던하다. 어느 정도 즐기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난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 이 결과를 만들기 위해 1엔드 첫 스톤 놓는 것부터 수만 번 계산하고 반복 훈련했다. 경기장 안에서의 표정, 하이파이브 때 손 위치까지 코치했다. 손을 너무 아래로 하면 자신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런 노력으로 얻은 성과는 모두 오픈해서 선수들과 함께 나눈다.”
Q : 컬링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갈 것 같나.
A : “소위 비인기 종목은 김연아 같은 스타가 나오고,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국내에도 수준 높은 투어 대회가 생기면 팬들의 관심이 유지될 것 같다. 우리는 올림픽을 통해 ‘컬링’ 하면 ‘아, 컬링!’ 소리가 나오길 바랐고, 어느 정도 목표를 이뤘다고 자부한다.”
김 감독은 고교 1학년 때 전국 모의고사 10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고, 반장도 도맡았다고 한다. “아버지 때문에 컬링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컬링이 정말 재미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전체 중에 하나, 내가 이걸 하고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딸의 인생을 바꿔버린 아버지가 원망스럽진 않을까. 김 감독은 “원망스럽진 않은데, 아버지는 항상 어렵다. 내가 그만큼의 그릇이 안 되는구나 싶어서다. 퇴장당했을 때도 난 옳은 얘기를 했지만, 이걸로 아버지가 안 들어도 될 말 듣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며 또 눈시울을 붉혔다.
김 감독은 “컬링은 ‘생각하면서 몸도 쓰는 운동’, 가족이 함께하는 생활스포츠다. 누가 이만큼 키웠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약의 기회에 더 떨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컬링연맹을 비롯한 ‘중심’이 바로 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관련기사
● 체력훈련 때 펑펑 운 은정, 영미는 등산 때 헉헉, 경애는 수영하며 볼멘소리
▶중앙SUNDAY [페이스북] [구독신청] [PDF열람]ⓒ중앙SUNDAY(http://sunday.joins.com)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