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감옥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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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5.23. 오후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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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세움의 수감자 자녀 인식 개선 포스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 / 세움 제공

아빠는 엄마를 자주 때렸다. 엄마는 현주(가명)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아빠는 종종 엄마에게 만나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고, “빌려 간 돈도 갚겠다”고 했다. 걱정이 앞선 엄마는 집이 아닌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 엄마는 여섯 살 현주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설마 애도 있는데 무슨 짓을 하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엄마의 손과 몸에는 피가 흥건했고, 아빠가 쓰러져 있었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현주가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수갑을 채웠다. 현주는 엄마와 함께 경찰서로 갔다. 엄마는 15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주는 ‘수용자 자녀’다. 구치소나 교도소의 수감된 이들의 미성년 자녀를 이렇게 부른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7년 ‘수용자 자녀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주와 같은 수용자 자녀는 연간 5만4000여 명에 달한다. 미성년 인구의 0.5%다. 전국 53개 교도소에 입소하는 수감자가 연간 약 14만 명가량임을 감안하면, 수감자 4명 중의 1명꼴로 미성년 자녀가 있는 셈이다.

자녀의 6.3%, 부모 체포 목격

수용자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아이들이 마주하는 첫 번째 어려움은 ‘불안과 공포’다. 사건 발생과 엄마의 체포 과정에서 현주가 겪은 트라우마는 상상하기 힘들다. 현주와 주기적으로 만나는 이지연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활동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없다. 다만 현주가 관련해서 몇 차례 심리상담을 받은 사실만 알고 있다.

인권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체포장면을 목격한 자녀는 6.3%에 이른다. 신연희 성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11% 수준이다. 인권위는 지난해 5월 ‘형사사법 단계에서 수용자 자녀 인권보호를 위한 정책권고’에서 “아동들은 경찰관이 찾아와 집안을 수색하고 부모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심한 공포감을 느꼈고, 그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고 진술했다”며 부모의 체포에 따른 자녀의 심리적 외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썼다.

체포 과정을 목격하지 않은 아이들이 겪는 불안과 공포도 만만치 않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수용 사실을 아는 자녀는 30.1% 수준이다. 문제는 수용자의 자녀 상당수가 초등학생과 미취학아동이라는 점이다. 조사에서는 만 7~12세가 33.7%로 가장 많았고, 만 7세 미만이 25.8%로 나타났다. 합치면 60%가량이다. 부모의 수감을 상상하기 힘든 나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한다고 이경림 세움 대표는 말했다. ㄱ군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빠와 함께 살던 ㄱ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가 수감되면서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됐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수감 사실을 숨겼고, ㄱ군은 ‘엄마도 나를 버렸는데 아빠까지 나를 버렸다’는 불안에 빠졌다. 그래서 아빠의 수감 사실을 알게 된 후 ㄱ군이 느낀 첫 감정은 ‘안도’였다.
아이들은 동시에 가난과 맞닥뜨린다. 조사에 따르면 수용된 부모의 89%가 생계비와 양육비 부담자였다. 혼자 담당했다는 응답은 52.5%였고 배우자와 함께 담당했다는 응답이 37%였다. 한 명의 수감이 전체 가족의 가난으로 이어지기 쉬운 이유다.

수감 전부터 가난한 이들도 많았다. 조사에서 경제적 형편을 묻는 질문에 보통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47.9%, 가난한 편이(29.1%), 매우 가난함(19.7%)이 뒤를 이었다. 가난한 편에 속한다는 응답이 48.8%로 가장 높은 것이다.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라는 응답은 11.7%로 나타났다. 이는 평균(2.3%)의 5배 수준이다. 부유한 편이라는 응답은 3.4%였다.

최윤주 세움 활동가는 “그래서인지 부모가 수감될 때 아이들이 많이 하는 생각 중의 하나가 ‘이제 우리는 뭐 먹고 살아야 하나’다”라며 “실제 세움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정말 절박한 사람들이다. 좋은 일도 아니고 누가 가족의 범죄까지 알리면서 지원을 받고 싶어하겠나.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다가 지원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ㄴ군과 엄마는 아빠가 수감된 이후 극빈층으로 떨어졌다. 수감된 사람은 계부였는데 언론에 정보가 공개되면서 이웃은 물론이고 친척들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쌀이나 김치 같은 기본적인 음식조차 떨어지자 ㄴ군과 엄마는 길에 있는 민들레를 뜯어서 씻어 먹었다.

부산교도소 전경.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연합뉴스

■“저는요, 애들이 패드립 치면 참을 수가 없어요.”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지만, 가난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아이들도 있다. 현주도 그랬다. 시설로 보내진 현주는 이후 다시 위탁가정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위탁가정에서의 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사춘기가 시작된 것. 현주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해당 가정은 위탁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6년 만에 외할아버지와 현주는 함께 살게 됐다. 할아버지와 현주 모두 시설로 가는 건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80대 할아버지가 열세 살 여자아이를 돌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법적인 상황에 휘말렸다. 결국 동네에 소문이 다 났고 현주는 다시 시설로 가게 됐다.

현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빠가 수감된 이후, ㄷ군은 배가 고플 때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쳤다. ㄷ군이 초등학교 때 일이다. 할머니가 있었지만 양육은커녕 오히려 ㄷ군이 할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처지였다. ㄷ군은 남의 차량 내부 물건을 훔치는 일명 ‘차털이’도 했다. 이런 것들이 쌓여 보호관찰 2년을 선고받았고 학교도 그만뒀다.

가난이 아니더라도 부모의 수감 사실은 아이를 바꿔놓는다. “저는요, 애들이 패드립(가족이나 친지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 치면 참을 수가 없어요. 애들이 제가 아빠 없는 거 아는지 모르는지 그건 모르겠는데 ‘니는 아빠도 없냐?’고 그러면 열이 확 받치는 거예요. 그래서 막 때렸어요. 그래서 학교폭력으로 걸릴 뻔했는데, 아빠 이야기해서 욱해서 그랬다고 하니까 샘들이 인정해주셨어요. 저는 애들이 부모 얘기하고 그러면 용납이 안 돼요.”(인권위 실태조사 중)

하지만 수용자 자녀들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다. 부모의 수감 사실을 밝히는 순간 차별과 배제가 시작되고 범죄자 자녀라는 낙인이 찍힌다. 낙인이 두려워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지 못하니 도움을 못 받고, 도움을 못 받으니 어려운 상황에서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부모의 수감 사실이 소문만 안 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사건도 오래 머문 동네에서는 알음알음 퍼진다. 특히 경제사범의 경우, 채권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집을 찾아오기 때문에 금방 알려진다. 이경림 대표는 “아이 엄마가 다른 학부모에게 돈을 빌리고 안 갚은 사건이 있다. 그런데 그 학부모들이 그 아이를 전학을 보내라고 학교 앞에서 시위를 했다”며 “그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동네가 작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아빠 이야기를 다 알죠. 그런데 제가 지나갈 때마다 ‘너는 너희 아빠처럼 살지 마라’ 그러면서 꼭 아는 척을 해요. 그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었거든요. 싫죠. 저도 뭐 아빠가 잘한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 그리고 아빠가 들어간 거를 친구 부모님들이 아시니까 저랑 놀지 마라 이래서… 아빠가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아빠인데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하면 좋게 들을 수는 없었어요.”(인권위 실태조사 중)

수감자와 그 자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

■부모와의 면회, 아동의 권리다


그래서 아이들이 수감돼 있는 부모를 만나는 건 중요하다. 단지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서가 아니다. 수용자 자녀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다. 한국이 1991년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9조에는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 외에는 부모로부터 분리된 아동이 장기적으로 부모와 개인적 관계 및 직접적인 면접 교섭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표된 ‘수용자 자녀 권리장전’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나는 부모와 대화하고 만나고 연락할 권리가 있다 ▲나는 부모의 수용을 겪으면서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나는 부모와 평생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등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수용자 자녀들은 이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현주는 지난해 처음으로 엄마를 만나러 청주 여자교도소를 찾았다. 사건이 벌어지고 7년 만이었다. 엄마는 현주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현주는 2시간 면회 내내 엄마의 무릎에서 떠날 줄 몰랐다. 면회를 마치고 나온 현주의 머리가 곱게 땋아져 있었다. 면회가 끝나고 얼마 뒤 세움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여섯 살 된 딸아이를 놔두고 이곳으로 오게 돼 손이라도 잡고 싶고 안아주고 싶었는데 데려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까마득한 세월을 보내야만 아이를 만날 수 있으려나 하고 걱정·절망·수용을 거쳐 슬픔을 안고서 포기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어디 아픈 곳 있나 살펴볼 수 있어 정말이지 꿈만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현주는 가능한 자주 엄마를 보고 싶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할아버지는 현주를 데려가기 쉽지 않다. 아직 어린 현주가 혼자 면회를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는 현주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실태조사와 세움의 실제 사례를 보면 많은 수용자 자녀들이 “자주 면회를 가고 싶은데 면회가 너무 어렵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마한얼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이전에 비해 면회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좋아졌다. 하지만 면회를 하기까지의 과정은 전혀 아동친화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이 혼자 면회를 신청하고 갈 수 있어야 진정으로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다. 어려운 용어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말 면회, 횟수 제한, 접견실 사용 빈도 등 여러 가지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올해 1월 경찰청과 대법원, 법무부는 인권위의 정책권고를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범죄수사규칙에 “피의자 체포·구속 시 현장에 있는 자녀의 정신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절히 조치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대법원은 법원조사관을 충원·확대 배치해 양형 조사를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내년까지 전국 교정시설에 가족 접견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마한얼 변호사는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고에 불과하지만 10년만 일찍 이런 내용이 나왔다면 현주의 지난 7년은 달랐을 것이다. 엄마의 체포 현장을 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고, 수차례 양육자가 바뀌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적절한 지원이 있었다면 돈 때문에 범죄에 휘말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모든 일을 겪어야 했던 현주는 이제 중학교 1학년이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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