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마시면 코로나 예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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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9.16. 오전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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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효과 내세운 ‘수소흡입기’ 등장… 검증되지 않았고 폭발 위험성 경고[주간경향]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던 2018년, 음료시장에 ‘수소수’가 유행했다. 물에 수소를 첨가한 음료수로 제조업체들은 수소수가 미세먼지로 인한 폐 염증을 치료한다고 광고했다. 수소수 마케팅은 적중했다. 미세먼지에 대한 우려와 맞물려 유통과 판매가 늘어났다. 편의점 음료 판매대에는 수소수가 깔렸다. 제조업체의 판촉은 공격적이었고, 수소수 제조·판매·유통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pixabay


하지만 수소수는 의학적 효능 없는 ‘맹물’로 판명됐다. 지난 2019년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시중에서 판매 중인 수소수에는 어떠한 의학적 효능, 치료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수소수 업자들에 대해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과 고발조치를 하고 관련 판매 사이트를 차단했다.

미세먼지가 떠난 뒤 코로나19가 찾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코로나19 예방 효과를 내세운 ‘수소흡입기’가 시장에 등장했다. 휴대용 흡입기부터 대형 수소발생기까지 업체별·제품별로 형태가 다르지만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발생시켜 마시는 방식은 같다. 이들 업체는 수소가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고 당뇨와 동맥경화, 코로나19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수소를 마시면 건강해질까.

산업부 인증은 배터리 적합 여부 확인

학계에서는 수소의 의학적 효능을 따지기에 앞서 수소흡입기의 위험성을 먼저 경고한다. 수소는 폭발 우려가 큰 위험 물질이다. 공기 중 수소 농도는 4%만 돼도 폭발하기 때문에 작은 불씨만으로도 사고가 난다. 수소를 발생시키는 기기를 휴대하거나 가정에 설치해 사용하는 행위는 ‘수소폭탄’을 휴대하고 집에 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강릉 수소 폭발사고도 물을 전기분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며 “그 위험한 수소를 직접 입에 대고 흡입한다는 것은 화학 연구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실제 수소가 만들어지는지 또 얼마나 발생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기기를 정부에서 안전하다고 인증해줬다면 그 자체도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휴대용 수소흡입제품의 경우 업체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수소는 매우 가벼운 분자이므로 공기 중에 즉시 용해돼 일반적으로 사용 시 폭발 위험이 낮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해당 제품을 인화성 물질 근처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해당 제품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의 안전 인증 절차를 밟았다. 수소흡입기는 의료기기가 아니라 전기용품으로 분류돼 산업부가 관리한다. 인증기관은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으로 제품 안전정보센터에도 인증 정보가 등록돼 있다. 수소흡입기 유통·판매업체들은 안전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인증번호 등을 표기해두었다.

그렇다면 해당 제품은 폭발 위험 없이 안전할까. 국가기술표준원 측은 ‘폭발 위험성’ 여부는 검증 대상이 아니며 장담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제품 전체에 대한 안전성을 검사한 것이 아니라 제품의 일부분인 ‘배터리’에 대해서만 적합 여부를 확인한 것”이라며 “완제품을 사용할 때 폭발사고 위험성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배터리에서 수소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소와 관련된 안전성 검사는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해당 특허도 안전성과 효능과는 무관

제품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강조하는 특허청 ‘특허’ 획득 사실도 안전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 해당 제품은 지난 2019년 9월 ‘휴대 가능한 동시에 소정량의 수소가스를 용이하게 공급 가능한 전기분해식 수소가스 흡입 도구’ 발명으로 특허를 받았다. 그렇다고 해당 특허가 안전성과 의학적 효능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특허청 특허심사제도과 담당자는 “특허청은 기술 아이디어를 심사하는 기관이지 완제품의 안전성과 효능을 점검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전기분해를 통해 수소가스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는 불가능한 기술이 아니어서 특허가 나간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수소 흡입의 의학적 효능은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소흡입기 업체들은 치료 효과를 내세워 판촉에 나서고 있다. 수소흡입기 업체 측은 “활성산소 분해하고 항산화 작용 효과가 있어 항염증이 증진되고 면역력이 개선된다”며 “마시는 수소수와 달리 수소를 흡입하면 폐로 이동한 수소가 뼈와 혈액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건강 증진 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의사들은 수소 흡입을 하나의 치료법으로 권장한다. 충남의 한 요양병원에 재직 중인 의사 A씨는 최근 발간된 수소 흡입 관련 서적에서 “수소 치료가 효과가 있으니 국내 의료보험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근거가 무엇일까.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6개월 이상 수소 흡입 치료를 직접 받아봤는데 효과가 있었다”며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환자들에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병원에서는 치료 명목으로 환자들에게 수소 흡입을 진행하기도 한다. 주로 고령층이 찾는 요양병원에서 수소 흡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경기도 B요양병원 관계자는 “수소 흡입 치료를 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의료보험 대상이 아니고 기계가 고장 나서 지금은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충남 소재 C병원의 경우 지금도 수소 흡입 치료를 진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C병원 관계자는 “수소 흡입을 질병 치료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환자가 수액을 맞는 동안 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하고 있다”며 “산소호흡기로 산소 공급을 하듯이 수소를 주입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수소 흡입을 비롯한 수소 치료의 의학적 효과에 대한 근거는 생쥐 등 동물실험 결과를 토대로 쓴 연구 보고서와 논문에 있다.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예방과 치료에 대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교수(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의학적 효과는 논문이나 실험 연구가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 비교 임상에서 입증돼야 한다”며 “수소 치료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식약처는 수소흡입기와 발생기 등 관련 제품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수소 흡입 제품은 의료기기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면밀히 검토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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