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시작하고 힘들게 만들었다면 말해야 한다. “여러분, 제가 신나게 시작하고 힘들게 만들어서 이런 책이 나왔습니다!”하고 말이다. 시작하는 재주를 부리고, 만드는 재주를 불러왔으니 이제 말하는 재주를 넘어야 할 차례인데 매번 못 넘는다. 가진 재주를 수로 나타낸다면 시작하는 재주가 90, 만드는 재주는 9, 말하는 재주는 1인데, 가끔은 0인 것도 같다. 0과 1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 절대 1을 넘지 못한다. 어쨌든 팔려고 만든 책이니까 자리가 생기면 마다하지 않고 무슨 말이든 하려고 한 적도 있지만, 1이 없어질 때마다 나머지 9와 90에서 가져오게 되었다.
《서울, 9개의 선》은 출간 기념행사 같은 자리를 두 번 제안 받았고 그걸 굳이 다 했다. 행사를 하기로 하면, 그걸 하겠다고 말한 날부터 행사 당일까지 긴장을 해서 배탈이 났다. 행사 당일엔 온 기운을 다 써서 다다음날까지 몸져 누워야 했는데, 그렇게 온 기운을 다 썼으면 말이라도 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누워서도 너무 억울했다.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면, 행사 때 내가 말한 것들과 피드백을 좀 더 면밀하게 곱씹고 괴로워하느라 정작 해야 할 일, 책 작업을 미루게 되었다. 말하는 재주를 넘기 위해 시작하고 만드는 재주를 소진하고 있자니 잘못되어도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일이었다.
고생은 여기서 생긴다. 재주가 많아서 고생이라는 말에 해맑게 웃지도 못하고 시원하게 울지도 못한 건 맞는 말과 틀린 말이 그 말 안에서 묘하게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재주가 많거나 있는 부분, 시작하거나 만드는 단계에서는 딱히 고생이라 할 것이 없지만 재주가 없는 부분, 말하는 단계에선 매 순간이 고생이다. 지금도 보면,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지 않은가.
*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 줄여서 UE. 서울아트북페어(SEOUL ART BOOK FAIR)라고도 부르며 2009년 1회를 시작으로 매년 진행되어온 행사. 아트북페어이자 독립출판의 시장으로 일반적인 홍보와 거리를 두는 독립출판과 그 제작자들이 일 년에 한 차례 각자의 목소리로 자신의 책에 대해 말하고 판매하는 자리다.
** 1호선부터 9호선까지, 서울 안팎을 오가는 9개의 노선 안에서 보고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 책. 도시별 지하철 탑승기 ‘도시, 선’ 시리즈의 1호로 올해 6월에 발행되었으며, 얼마 전 2호 《홍콩, 11개의 선》, 3호 《도쿄, 13개의 선》이 발행되었다.
글쓴이_ 임소라
글 쓰고 책 만드는 하우위아(HOW WE ARE) 발행인.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늘고 길지만 나선형으로 이어간다. 《시간이 많아서》, 《한숨의 기술》, '거울 너머' 시리즈 등을 쓰고 만들었으며 '도시, 선' 시리즈를 만드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