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없었다면 대선 D-6…다시 보는 보수언론 ‘문재인 저주’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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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8.19. 오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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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로
쏟아졌던 황당 칼럼 다시 톺아보기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




그래도 다행인 건 대선의 진짜 투표가 내일이라는 사실이다. 영국 BBC는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망명해야 한다는 탈북자들을 소개하며 한국의 대선이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바라건대 문재인이 바뀔 수 없다면 외교안보 브레인이라도 바꿨으면 한다. 아니면 유권자들의 생각을 바꾸든지.



14일은 본래의 ‘19대 대선’을 엿새 앞둔 날이다. 지금이면 1주일짜리 선거 운동이 절정을 이루며 영하 10도의 거리도 언론도 격론으로 날서고 달궈졌을 법하다. 박근혜 정부의 부패가 지난해 <한겨레> 보도 등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더 가정하자면, 지난 7개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결결이 올림머리로 분주했겠고, 외교안보 라인은 그간의 ‘통일이 대박’ 구호를, 여념없이 미사일 쏘아대는 북한 탓에 ‘전쟁이 대박’이라고 바꿨을 터다.

그리고 박빙의 대선을 앞둔 14일 우리는 위의 칼럼을 목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치러진 19대 대선 하루 전인 지난 5월8일치 <동아일보>에 실린 ‘김순덕 칼럼’이다.

하지만 글쓴이의 ‘주술’과 달리 유권자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우려와 달리 망명하겠다는 탈북자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당면한 대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외교안보 라인 역시 분주히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오가고 있다.

출범 전 문재인 정부를 향해 퍼붓고 바라되, 현재까진 실현되지 않은 저주와 예언을 주제별로 되짚어본다. (현재로선, 2007년 아이폰 첫 출시 때 “누가 그런 걸 사겠느냐”며 끔찍한 실패를 예언했던 일부 IT 전문가들을 회상하는 일과 비슷하겠다.)

1. ‘종북좌파’할지어다



단연 압도적인 건 ‘새 정부 인공기 게양론’이다. 지난 3월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는 <조선일보>에 내건 칼럼 ‘내년 봄 서울 하늘엔 어떤 깃발이?’에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 서울에 북한 국기인 인공기가 나부낄 가능성을 전망했다.



오랜만에 만난 한 지인이 “내년 이맘때 서울 하늘에 인공기가 날릴까봐 걱정”이라고 하기에 “1년은 여유가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다른 지인은 필자에게 광화문 광장에 촛불 세력이 이순신 장군 동상 바로 아래 세워놓은, 온몸이 밧줄에 칭칭 감기고 목에 초대형 주삿바늘이 꽂혀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허수아비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면서 “장군님은 언제 칼을 빼서 이런 무리를 치실 생각인지?”라는 탄식을 적어 보냈다.



서 교수는 “입으로는 사회 정의를 부르짖지만 은밀한 목표는 대한민국의 타도인 세력이 존재한다”며 일컬은 급진좌파 세력을 이유 삼아 “온 국민이 지난 70년 불철주야 노력해서 이룬 민주와 번영을 포기하고 잔인무도한 김정은의 노예가 되는 것이 정의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서 교수의 저주와 달리, 현재까지 서울 어디서든 인공기를 보긴 쉽지 않다. 이른바 ‘촛불 세력’들은 저마다의 자리로 돌아간 지 오래고, 세월호 유가족도 광화문광장 농성 천막을 대폭 줄여왔다. 외려 서울 도심 곳곳은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이들 집회 덕분에 태극기가 넘실대는 형국이다.

서 교수 글이 선동적이다 보니 인공기 쪽, 태극기 쪽에 “모가지를 건다”는 이들의 댓글도 따라붙은 상태다. “내년에 (문재인이 되면) 인공기가 자유롭게 서울 하늘에 등장할 것이다”와 “교수라는 지성인이 그런 조금 모자란 친구들 우려에 엉뚱한 글을 써서야 되겠는가. 내년 봄 서울하늘엔 100%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오른다”는 게 각각의 논거다.

서 교수 칼럼 뒤 인공기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종합편성채널 MBN은 대선을 보름여 앞둔 지난 4월23일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논란을 소개하며 문재인 당시 후보와 인공기를 합성한 자료 화면을 내보냈다. 5월 대선 캠페인 과정에선 자유한국당이 온라인을 통해 1번·3번 후보 쪽에 인공기를 새겨 홍준표 후보를 홍보하기도 했다.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MBN 방송화면을 캡쳐해 올린 뒤 방송을 비판한 글.


MBN은 이후 방송위원회의 징계를 (경미하게) 받았고, 자유한국당은 비난이 일자 해당 홍보물을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서지문 교수의 글이 여전히 <조선일보> 누리집 등에서 건재한 것과는 대비된다.

자유한국당 경남도당에서 온라인을 통해 유포했던 홍준표 후보의 홍보물


2. ‘친문파벌’할지어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경계하며 저주했던 주문이 주로 보수 매체를 통해 확산된 사실은 새롭지 않다. <동아일보> ‘박제균 휴먼정치’에선 지난해 12월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크다며 그가 “친노로부터 독립했는지, 친문 세력의 진짜 오너인지 모르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정치경험이 깊지 않는데다…아직도 3철(이호철·전해철·양정철)에 휘둘리고 3철 중에서도 노무현 정권의 ‘기자실 대못’ 정책을 주도했던 양정철의 말발이 가장 세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러다 ‘문재인의 최순실은 누구인가’라는 말이 나올까봐 겁난다”고 짚었다. 문재인 후보의 정치 역량이 떨어지고, 한평생 ‘노무현의 2인자’에 불과해 측근·대리정치를 할 가능성을 내다보는 데 주력한 것이다.

하지만 ‘3철’은 여전히 정치 외곽에 머물러 있고, 계파를 넘어선 초기 인사가 지지율을 높이는 핵심 동인이 되었다는 분석이 더 정확해 보인다. 앞서 “유권자들의 생각을 바꾸”어 달라고 했던 같은 매체의 김순덕 논설위원조차 새 정부 출범 첫달 뒤 자신의 생각을 바꿔 “나도 문재인 대통령을 잘못 본 것 같다”며 “여우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일 호남 총리에, 486이지만 친문(친문재인) 아닌 젊은 비서실장을 발표해 친문 패권주의를 의심하는 민심을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심지어 사자의 모습도 보인다. 이름만으로도 검찰 개혁을 예고하는 조국 민정수석, 재벌 개혁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호명해 검찰과 재계를 충격에 빠뜨린 것이다. ‘적폐 청산’을 요구한 지지층의 10년 묵은 체증을 뚫어준 건 물론이다”고 말할 정도다.

3. ‘안보무능’할지어다



<중앙일보> 이정재 기자의 주술이었다. 대선 바로 전달인 4월 칼럼 ‘[이정재의 시시각각] 한 달 후 대한민국’을 통해서다.



2017년 5월 15일. (…) 주가(KOSPI)는 1000 밑으로 주저앉았고 원화 값은 달러당 2000원을 훌쩍 넘겼다. 사람들은 생수를 사 재고, 라면을 박스째 챙기느라 마트로 몰려들었다. ‘대북 폭격설, 오늘 미국이 북한을 때린다.’ 전쟁의 공포가 이날 한반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막상 5월 코스피 지수는 2241.24까지 기록하며, 기존 최고치를 6년 만에 경신했다. 2011년 5월 2228.96을 찍은 이후 줄곧 2000~2200에서 맴돌았던 추세를 뚫은 결과다. 12월 엔화, 달러 대비 한화 가치는 올해 들어 가장 높아져, 다투어 외화를 매입하는 이들이 폭증했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도발 위기는 더 고조된 상태인데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급히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찾았다. 김관진은 박근혜 정부 사람이지만 아직 문재인은 국가안보실장을 교체할 시간이 없었다. (…)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기 전에 반드시 우리에게 통보하겠지요?” 김관진은 딱 잘랐다. “한 달 전부터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트럼프는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때린다. ‘문재인이 되면 통보 없이 때리고, 안철수가 되면 통보하고 때리고, 홍준표가 되면 상의하고 때린다’라고.”

막상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었다. 김관진 당시 안보실장이야말로 새 정부에 사드 배치 내역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외견상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만 쏘아도 통화하고 상의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취임 일주일이 다 되도록 트럼프의 축하 전화도 받지 못한 터다. 애초 며칠 전 취임사에 ‘남북 대화, 북한 방문, 개성공단 재개’란 문구를 집어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 문재인은 즉시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북폭이 이뤄지면 즉시 북한의 장사정포가 남한을 향해 불을 뿜을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김관진은 단호했다. ‘즉각 대응 사격, 지휘부까지 처절하게 응징해야 합니다.’ 문재인은 “그럴 순 없다. 대응 사격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김관진은 즉시 사표를 던졌다. (…) 나라는 절체절명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문재인의 청와대는 어쩔 줄 모르고 그저 분노를 터뜨릴 뿐이었다. 누군지도 모를 상대를 향해.

자못 비장한데, 이정재 논설위원은 “(글 전체가) 상상”이라 전제하며 “절체절명의 한반도에 문재인과 안철수, 안보 신뢰 자산이 가장 부족한 두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될 판”이라고 우려했다. “안보 이슈를 국가적 담론으로 끌어올려 (…) 내가 뽑을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 국민은 묻고 알아야 한다. 이번 투표야말로 정말 국가 존망이 내 손에 달린 것일 수 있다”는 말로, 사실상 ‘문재인 후보=안보 무능’이란 주문이기도 했다.

이달 초 <국민일보>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잘하고 있는 분야로 국민들은 적폐 청산(26.4%)을 첫손에 꼽고, 이어 복지정책(19.3%), 국민통합(16.4%), 외교안보정책(10.9%), 경제정책(4.5%) 순으로 지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후 줄곧 7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금 현 정부에 대한 ‘저주’ 내지 ‘예언’이 쏟아질 모양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5일 관훈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지난 7개월은 난폭운전, 보복운전, 역주행에 다름 아니었다”고 비판하며 “지난 7개월을 돌아보면 솔직히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당내에선 내년 이후 레임덕이 오고, ‘좌파세상’이 극에 달할 것이란 주장이 공공연히 나온다.

막상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다면, 홍 대표에게 이런 발언 기회가 오긴 어려웠을 법하다. 정권 재창출의 사명은 ‘친박실세’인 최경환 의원 등에게 맡겨졌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또한 근거가 없다면 저주 내지 때 지난 예언이고, 근거가 있다면 전망이자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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