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단일 종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행사인 축구대회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해서 열리고 있다. 올림픽이 도시를 중심으로 개최되는 데 반해 월드컵은 국가가 중심이 되어 열린다는 데서 그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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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World Cup(영어)

단일 종목으로 열리는 스포츠 행사 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대회로, 4년을 주기로 올림픽이 열리는 해를 중심으로 2년 전후로 개최된다. 올림픽이 도시를 중심으로 개최되는 데 반해 월드컵은 국가가 중심이 되어 열린다는 데서 그 차이가 있다. 또 축구라는 단일 종목이 한 달 동안 진행되는데 이는 타 스포츠 종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대회는 지역예선과 본선으로 구성되는데, 본선은 지역예선에서 올라온 국가대표팀들만이 참가할 수 있다. 선수는 소속구단의 국적이 아닌 자신의 국적에 따라 참가해야 하며, 아마추어와 프로에 상관없이 참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회는 FIFA가 주관하며 개최국의 축구협회는 FIFA의 대리인(executive agent) 자격으로 대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책임을 진다. FIFA는 경기장 시설, 안전, 수송, 통신, 숙박 등 경기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엄격한 개최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또 대회 운영에 필요한 재원 조달과 운영경비의 지출 등 재정활동에 대해서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개최국 축구협회나 개최국의 대회조직위원회(LOC·Local Organizing Committee)는 이 규정에 따라 재정활동을 하여야 한다. 아울러 연맹 규정상 동일 대륙에서 연속적으로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1930년 남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서 제1회 월드컵이 개최되었으며, 당시 13개 국가가 참여하였다. 1938년 제3회 프랑스 대회 이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12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1950년 제4회 브라질대회가 다시 개최되었다. 제3회 대회에서 당시 FIFA 회장이었던 줄리메가 줄리메컵을 제공한 것에서 '줄리메컵 세계선수권대회'라고도 불렸는데, 이 줄리메컵은 대회에서 브라질이 3회 우승(1958, 1962, 1970)을 달성하게 되면서 영구 보존하게 되었다. 이에 1974년 독일월드컵에서부터 FIFA컵이 제정되었다. FIFA컵은 3년 동안 우승국에 보존한 뒤 FIFA에 반환하는데, 우승국에는 복제품을 증정한다. 또한 우승국은 유니폼 상의 왼쪽 상단에 '★' 표시를 할 수 있는 명예가 부여된다. 우승 이외에 주어지는 상으로는 대회 최우수선수(MVP)에게 수여되는 골든볼, 최다득점자에게 수여되는 골든부트, 최우수골키퍼에게 수여되는 골든 글러브 , 최우수 신인선수상 등이 있다. 

한편, 브라질은 1930년 제1회 대회부터 2022년 대회까지 22개 대회 본선에 진출한 유일한 국가로, 역대 최다 우승(5회) 기록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공동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개최한 바 있으며, 역사상 최고인 4강에 오르는 기염을 이뤄내기도 했다.


월드컵 개최에 이르기까지

FIFA의 창립

19세기 말부터 각 나라 간 축구 경기가 점차 보편화되고, 1900년부터는 축구가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에 각국의 축구협회를 이끌어갈 중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04년 프랑스의 주도로 네덜란드·덴마크·벨기에·스웨덴·스위스·스페인 등 총 7개국이 초대 회장 로베르 게랑을 앞세워 국제축구연맹(FIFA·Federation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을 창립했다. 피파는 창립 직후부터 세계축구선수권대회 개최를 위해 노력했으나 교통수단의 발달 미비, 경기 규칙 통일 미흡 등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러다 1906년 스코틀랜드·아일랜드·웨일즈·잉글랜드가 피파에 가입하면서 그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 잉글랜드의 다니엘 울펄이 피파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다니엘 울펄의 노력

취임 직후부터 축구 규칙의 통일 및 재정비를 위해 힘쓴 울펄은 축구를 1908년 런던올림픽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시키는 한편, 올림픽 축구대회가 피파의 주관 하에 진행되도록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울펄 회장은 피파의 영향력을 유럽 외의 대륙으로 넓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1910년 남아공, 1912년 아르헨티나와 칠레, 1913년 미국이 피파에 가입하면서 그 규모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1914∼18년까지 지속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세계선수권대회는 보류되었다.
이에 피파는 연합국과 패전국 간의 국제 경기를 주도했지만 연합국과 패전국은 서로 국제 경기를 치르는 것에 강한 반발심을 나타냈고, 특히 이러한 결정에 불만을 품은 영국의 4개 축구협회가 1920년 일제히 피파를 탈퇴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울펄 회장이 타계하면서 피파의 영향력은 축소됐으며, 월드컵 개최는 무산되는 듯 보였다. 

줄 리메의 월드컵 개최 결정

그러다 프랑스 출신의 줄 리메가 피파의 제3대 회장으로 취임했고, 그는 울펄의 뜻을 이어받아 월드컵 개최를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32년 LA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축구를 제외하겠다고 피파 측에 통보했다. 위기를 느낀 줄 리메와 전 세계 축구인들은 1928년 5월 열린 암스테르담 총회에서 제1회 월드컵을 2년 뒤인 1930년, 그리고 다음 대회를 4년마다 한 번씩 개최할 것을 합의했다. 그리고 1930년 제1회 월드컵을 남미의 우루과이에서 개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남미의 우루과이를 초대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한 결정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월드컵 개최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FIFA는 우루과이가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축구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한 데다 브라질제국에서 독립해 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을 개최지 선정의 이유로 내세웠으나, 당시 세계 축구계를 지배하던 유럽의 반발은 거셌다. 더욱이 유럽이 남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선박으로 대서양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문제가 있었고,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복구사업과 대공황으로 월드컵 참가는 어려운 문제였다. 이로 인해 1회 월드컵대회 개막 두 달 전까지도 유럽의 어느 국가도 참가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줄 리메 FIFA 회장이 적극적인 교섭에 나서면서 프랑스, 유고, 벨기에, 루마니아 등 유럽 4개국이 출전을 확정했다. 그러나 당초 예상했던 출전국 수 16개국을 채울 수 없게 되면서, 초대 월드컵은 예선 없이 13개국만이 참가하는 형태로 치러졌다. 그 결과 제1회 월드컵은 1930년 7월 13~30일까지 19일 동안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의 3개 경기장에서 진행됐으며, 대회 결과 개최국인 우루과이가 우승하고 아르헨티나가 준우승, 미국이 3위를 차지했다.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이후 유럽에서 열린 1934년과 38년 대회에 우루과이가 2연속으로 불참하고, 아르헨티나 역시 38년 대회에 불참하는 등 유럽과 남미 간의 갈등은 계속됐다. 이후 프랑스에서 열린 제3회(1938년) 대회 이후 12년 동안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전쟁이 종식되면서 1950년 제4회 대회가 브라질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1954년 제5회 스위스대회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월드컵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월드컵은 1930년 우루과이에서 첫 대회가 열린 이후 이탈리아(1934년), 프랑스(1938년)에서 개최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12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전쟁이 종식되면서 1950년 제4회 대회가 브라질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1954년 제5회 스위스대회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월드컵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후 월드컵은 스웨덴(1958), 칠레(1962), 잉글랜드(1966), 멕시코(1970), 서독(1974), 아르헨티나(1978), 스페인(1982), 멕시코(1986), 이탈리아(1990), 미국(1994), 프랑스(1998) 등에서 개최되었으며  2002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 개최하였다. 이후 독일(2006), 남아공(2010), 브라질(2014), 러시아(2018), 카타르(2022)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차기 2026년 월드컵은 북중미 월드컵으로,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공동 개최한다. 


월드컵 공인구
2018 러시아 월드컵 공인구, 텔스타 18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월드컵 공인구가 사용된 1970년 제9회 멕시코월드컵 전까지는 공인구가 없어 공을 둘러싼 국가 간 신경전이 거셌다. 예컨대 1930년 제1회 우루과이월드컵 결승전에 오른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서로 자국의 공을 사용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피파는 전반에는 아르헨티나의 공을, 후반에는 우루과이의 공을 사용하게 했다. 이처럼 대회 때마다 공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자 피파는 월드컵 공인구 제작 독점권을 독일의 스포츠용품 회사인 아디다스(Adidas)에 부여했다. 그리고 1970년 멕시코월드컵의 ‘델스타’를 시작으로 공인구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까지 갈색볼이 주류를 이뤘던 축구공은 이 공을 계기로 검은색과 흰색을 섞은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월드컵 공인구는 대회가 거듭될수록 기능과 소재, 디자인 면에서 급격한 발전을 이어왔다.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사용된 ‘탱고’는 완전방수 제품으로 탄력과 회전력이 크게 향상돼 선풍을 일으켰고,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선 최초로 인조가죽(폴리우레탄)이 사용된 신개념 축구공 ‘아즈테카’가 등장했다. 또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사용된 ‘피버노바’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디자인과 함께 가스를 충전시킨 작은 캡슐을 볼 바탕에 넣어 축구공의 반발력을 최대한 끌어올렸으며, 2006년 독일월드컵 공인구 ‘팀가이스트’는 기존 32개의 조각(6각형과 5각형)을 14개의 조각으로 줄이면서 더욱 완벽한 원형을 구현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는 6개의 패널로 완벽에 가까운 구 형태를 만들어, 공을 찬 사람도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던 '자블라니'(2010 남아공월드컵 공인구)의 단점을 완벽히 메웠다.
 
2018 러시아월드컵 공인구 ‘텔스타 18’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때 사용된 최초의 월드컵 공인구 ‘텔스타’에서 영감을 얻어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돼 있는데, 공인구 최초로 사용자가 공에 대한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NFC(근거리무선통신) 칩이 탑재됐다. 이에 NFC 리더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으로 텔스타 18 공인구를 가볍게 두드리면 연결되는 인터넷 페이지를 통해 공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사용될 공인구 '알 릴라'는 형태와 질감의 안정성과 정밀도를 위해 특수한 돌기가 들어간 20개의 폴리우레탄 조각으로 구성됐다


우승국에 수여되는 “FIFA컵”
FIFA컵

현재 월드컵 우승국에는 FIFA컵 트로피가 수여된다. FIFA컵은 1974년 서독월드컵에 앞서 이탈리아의 조각가(실비오 가자즈니가)가 제작한 것으로, 높이36cm, 무게 4.97kg으로, 18K금으로 만들어졌다. 트로피는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는 우승한 국가의 축구협회가 4년간 보관한 뒤 다음 월드컵 때 FIFA에 이를 반납하도록 했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는 시상식에서만 진짜 트로피가 사용되고 있다. 이에 시상식이 끝나면 진짜 트로피는 FIFA가 다시 가져가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박물관에 보관하고, 우승국에는 모조품 트로피를 증정하고 있다. 한편, FIFA컵 이전에 월드컵 우승국에 주어지던 우승컵이던 줄리메컵(the Jules Rimet cup)은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대회부터 1970년 제9회 멕시코 대회까지 사용됐다.


월드컵 순위결정 방법

월드컵 본선에는 각 대륙별 예선을 치러 통과한 총 32개국이 진출한다. 이 32개국은 8개 조로 나뉘어 각조 1, 2위팀이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이 '조별리그'에서는 각 조 4팀 중 승점이 많은 상위 2팀이 16강에 오르게 된다.
 
조별리그 순위의 기본은 승점으로, 경기 결과별 승점은 이겼을 경우 3점, 무승부는 1점, 패했을 경우는 0점이다. 그리고 승점이 같을 때는 골득실차, 다득점, 승자승 순으로 순위가 매겨진다. 여기서 골득실차는 넣은 골과 내준 골의 차이를 말한다. 승점이 같을 때 대부분 골득실차에서 순위가 가려지지만 골득실차까지 똑같은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이때는 더 많은 골을 넣은 팀이 우선한다.(다득점) 그런데 만약 다득점수까지도 똑같다면 양팀 간 조별리그 맞대결 승패에 따라 이긴 팀이 순위에서 앞서게 된다.(승자승) 이후 16강전부터는 녹다운의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연장전과 승부차기를 통해 끝까지 승부를 가리게 된다.


월드컵 유니폼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상 두 팀이 같은 색깔의 유니폼을 입을 수는 없다. 색깔이 같으면 관중은 물론 심판도 헷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팀은 홈 유니폼(주 유니폼)과 원정 유니폼(보조 유니폼)을 함께 준비한다. 또 골키퍼를 맡은 경기자는 양팀 경기자 및 상대편 골키퍼와 구별되는 색상의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만약 유니폼 색깔이 같은 두 팀이 맞붙을 경우 대진표에 따라 홈팀과 원정팀을 나눈 뒤, 홈팀에 유니폼 선택의 우선권을 준다. 대진표에서는 왼편에 있는 팀이 홈팀, 오른편 팀이 원정팀이 된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출전 역사 및 성적
· 1954년 월드컵 첫 출전∼1986년 멕시코월드컵

우리나라는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첫 출전하였다. 당시 헝가리, 서독, 터키와 한 조가 된 우리나라는 첫 경기인 헝가리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0-9로 참패하고, 터키와의 2차전에서도 0-7로 대패했다. 이에 일찌감치 조 예선 탈락이 확정되면서 서독전을 치르지도 못하고 퇴장해야 했다.

스위스월드컵으로 첫 월드컵 대회에 출전한 이후 오랜 기간 월드컵과 인연을 맺지 못한 우리나라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본선 진출에 성공해 32년 만에 세계 무대로 진출했다. 우리나라는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와 한 조에 속해 마라도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에 1-3으로 완패했으나, 박창선이 월드컵 첫 골을 기록하는 수확을 올렸다. 불가리아와의 2차전에서는 김종부의 골로 1-1로 비기면서 본선 사상 첫 승점을 기록했지만,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2-3으로 패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1998년 프랑스월드컵

우리나라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회택 감독)에서 스페인, 벨기에, 우루과이와 한 조가 되었으나 벨기에와의 첫 경기에서 0-2로 패한 것에 이어 스페인전에서도 1-3, 우루과이와 3차전에서도 0-1로 패하며 3전 전패 탈락의 성적표를 받았다.

‘도하의 기적’으로 극적인 본선 진출을 이룬 1994 미국월드컵(김호 감독)에서는 스페인, 볼리비아, 독일과 한 조가 됐다. 스페인과의 1차전에서 서정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2-2로 비긴 한국팀은 승리 가능성이 점쳐졌던 볼리비아와 0-0으로 비겼고, 독일과의 최종전에서 2-3으로 패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차범근 감독이 수장으로 나섰던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와 한 조가 됐다. 우리나라는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하석주가 사상 첫 월드컵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곧바로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 속에 1-3으로 패했다. 2차전에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하면서 차감독이 대회 중 전격 경질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선수단은 벨기에와의 3차전에서 분투 끝에 1-1로 비겨 전패는 모면했다.


· 2002년 한일월드컵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D조 개최국 시드 배정을 받아 미국과 포르투갈, 폴란드와 한 조가 됐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황선홍, 유상철의 연속골로 2-0을 기록, 월드컵 첫 승을 거뒀다. 미국과의 2차전에서는 1-1로 비기며 16강 진출 가능성을 높인 데 이어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과의 3차전에서 박지성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 마침내 사상 첫 16강 진출이라는 꿈을 이뤘다. 그리고 16강전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만난 우리나라는 0-1로 뒤지다가 설기현의 동점골, 안정환의 연장전 골든골로 극적으로 8강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이 여세를 몰아 8강전에서 만난 무적함대 스페인을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고, 4강까지 올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0-1, 터키와의 3·4위전에서 2-3으로 패했지만 4강 신화라는 기적을 이뤄냈다.

· 2006 독일월드컵~2010 남아공월드컵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끈 2006 독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2-1로 이기며 원정 월드컵 첫 승을 이뤄냈고, 프랑스와 2차전에서 박지성의 동점골로 1-1로 비기며 16강에 한걸음 다가섰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에서 0-2로 패하면서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2010 남아공월드컵 때는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와 한 조가 됐으며,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전에서 1-4로 완패했으나 나이지리아전에서 2-2로 비기며, 조 2위로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는 1-2로 패하긴 했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인 경기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2014 브라질월드컵

2014 브라질월드컵 때는 러시아와의 첫 경기에서 1-1로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비교적 무난한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알제리와의 2차전에서 4-2로 패배했다. 그리고 마지막 조별경기인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1-0으로 패배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이로써 한국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1무 2패에 그쳐 조별리그 최하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국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승도 건지지 못한 것은 1998년 프랑스 대회(1무 2패) 이후 16년 만이었다. 

· 2018 러시아월드컵

신태용 감독이 이끈 한국 대표팀은 스웨덴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1-0으로 패배했고, 이어진 2차전에서는 멕시코와 맞붙어 2-1로 패했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에서는 후반 인저리 타임에 두 골을 넣어 2-0으로 승리하며, 월드컵 본선 사상 아시아 팀 최초로 독일에게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1승 2패로 조 3위로 조별리그를 마치면서, 16강 진출은 이루지 못했다. 

· 2022 카타르월드컵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끈 한국 대표팀은 카타르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와 함께 H조에 배정됐다. 우리나라는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겼으나 가나와의 2차전에서 2-3으로 패했다. 그러나 마지막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조 2위를 기록, 원정 두 번째로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썼다. 이후 우리나라 대표팀은 16강전에서 G1위로 올라온 세계 최강 브라질을 만나 맞대결을 펼쳤으나 1-4로 패배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참고] 월드컵 관련 자료
  • 마지막 수정일2022.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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