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새벽 퇴근, 그날 아침 또 출근…‘주 73시간’ 일한 영화 노동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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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2.07. 오후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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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안시성’ 시각효과 맡은 위지윅스튜디오 노동자 사망

출퇴근 기록 보니, 하루 평균 14시간30분 주 73시간33분 근무

전·현직 직원들은 “업계의 장시간 노동 관행이 문제” 지적



위지윅스튜디오가 참여한 작품들. 위지윅스튜디오 누리집 갈무리
일주일 동안 70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리던 30대 그래픽 제작 노동자가 지난달 26일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7일 서울 동작경찰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그래픽 제작회사 ‘위지윅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유아무개(33)씨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씨는 이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회사에서 새벽 3시49분에 퇴근한 뒤 새벽 4시30분쯤 귀가했고, 유씨의 어머니가 오전 9시30분께 쓰러져 있는 유씨를 발견했다. 출동한 구급대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경찰은 유씨의 사체를 부검했으나 정확한 사인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위지윅스튜디오는 그래픽 제작회사로 지난해 영화 <마녀>, <안시성> 등의 시각효과를 맡았다. 이 회사의 전·현직 직원들은 유씨가 속한 ‘라이팅팀’이 최근 3개월 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맡아 반복적으로 야근을 해왔다며 유씨의 사망이 과로사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겨레> 취재 결과, 유씨는 사망 전날에도 약 15시간 동안(점심과 저녁 시간 1시간씩 제외) 근무하고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가 입수한 유씨의 출퇴근 기록을 보면, 유씨는 사망 전 일주일 동안 점심과 저녁 시간 1시간씩 제외하고 하루 평균 약 14시간30분 동안 일했다. 주 5일 근무를 하는 동안 73시간 33분이나 일한 셈이다. 가장 길게 일한 날은 지난달 21일로 오전 9시11분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4시49분에 퇴근했다. 가장 짧게 일한 날은 이튿날인 지난달 22일로 퇴근한 지 5시간여만인 오전 9시58분에 다시 출근해 다음 날 새벽 2시54분에 퇴근했다. 1월4일부터 사망 전날인 25일까지 유씨는 18일 동안 일했는데, 이 가운데 자정을 넘긴 시간에 퇴근한 날이 14일이나 됐다. 새벽 2시를 넘겨 퇴근한 날도 11일이었다.

반면 확인된 출근 시간은 한 차례 오전 8시44분 출근을 포함해, 모두 정시 출근 이전인 오전 9시∼10시 사이였다. 위지윅스튜디오의 공식 출근시간은 오전 10시다. 유씨 주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고인의 가족들은 장례식장에서 “최근 3개월간 아들이 새벽에 퇴근하고 아침에 출근하는 일을 반복했다”며 안타까움을 토했다고 한다. 고인은 평소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업무 피로를 호소하면서도 몰려드는 일들을 마다하지 못했다고 동료들은 전했다. 유씨는 재직 중에 신경 문제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올해 초에도 피로를 호소해 휴가를 받았다. 유씨는 이 회사에서 2017년부터 일해왔다.

위지윅스튜디오의 전·현직 직원들은 업계에 관행처럼 퍼져있는 장시간 노동 문제를 지적했다. 적은 예산과 짧은 시간만 주어지다 보니, 적은 인력으로 빠르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밤샘 근무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위지윅스튜디오 직원 ㄱ씨는 “업무는 많은데 인력은 부족하고, 장비는 따라주지 않다 보니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며 “근본적으로 주어진 작업시간이 너무 짧아 기한을 맞추기 위해선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원 ㄴ씨도 “회사도 변해야겠지만, 클라이언트와 업계 전반의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 전직 직원인 ㄷ씨도 “장시간 노동은 이 업계에선 관행”이라며 “(이곳에서) 주 52시간은 전혀 의미 없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유씨가 속한 라이팅팀이 다른 팀에 비해 노동시간이 길고, 노동강도도 높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라이팅팀은 일종의 ‘조명팀’으로, 모델링·애니메이션 작업 등이 끝난 결과물에 조명을 넣어 화면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때 컴퓨터를 이용해 숫자나 방정식으로 된 데이터를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영상으로 변환하는 ‘렌더링’ 작업을 하는데, 이 작업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라이팅팀 직원들은 새벽까지 최대한 작업을 한 뒤, 밤새 컴퓨터를 이용해 렌더링하는 식으로 일했다. 또한 라이팅팀은 합성팀을 제외하곤 대개 가장 마지막에 작업하기 때문에 밀린 마감 시간에 쫓겨 밤샘 근무를 반복해야 했다고 전·현직 직원들은 전했다.

코스닥 상장 기간에 맞춰 쏟아진 업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위지윅스튜디오는 2016년 4월 설립돼 2018년 12월 코스닥에 상장됐다. 창립 3년 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업무 외 추가적인 업무들이 계속 들어와 업무부담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전직 직원 ㄷ씨는 “주식 상장 이야기가 나오면서 영화 작업뿐 아니라 애니메이션·광고 등까지 작업이 들어왔다”며 “그때부터 업무가 과중해지는 걸 느꼈다”고 지적했다.

회사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위지윅스튜디오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직 사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입장을 내기 조심스러운 상황”이라며 “유족분들이 부검을 신청하고, 노무사 등을 통해 산업재해 신청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 유족분들이 더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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