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퇴 한 모랄레스 "더 강해져서 돌아올 것"…멕시코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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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12. 오후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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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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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레스 "사랑하는 고국 떠나 슬퍼…힘내서 돌아올 것"
수도 라파스 소재 대통령 집 불탄 가운데 시위대 약탈·폭력
"시위 대응 안한다"던 軍·경찰 비상 경계 태세
국방부 장관 사임 "압박으로 정치 문제 해결할 수 없어"

`친미·보수 vs 반미·진보` 둘로 쪼개진 라틴 아메리카
모랄레스 정권 향방 두고 분열 심화될 가능성


10일(현지시간) 대통령직 사임을 발표한 다음 날 저녁 멕시코 공군기에 탄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기내에서 멕시코 깃발을 펼쳐보이고 있다. 그는 멕시코 망명길에 오르면서 "힘내서 더 강해져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출처 =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무부 장관 트위터]
볼리비아 '대선 조작 논란'탓에 선거 3주 만에 사퇴키로 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멕시코 망명길에 올랐다. 11일(현지시간) 모랄레스 대통령은 "사랑하는 볼리비아를 버리고 멕시코로 떠나게 돼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면서 " 힘내서 더 강해져 돌아오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이어 "신자유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군부와 손잡고 민주주의 정권을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의회에 대통령직 사직서를 내고 이를 발표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무부 장관도 같은 날 "모랄레스가 우리 공군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로 오고 있다"면서 "이는 국제사회 협약에 따른 조치로 그는 이제 안전하다"고 언급했다.

11일(현지) 수도 라파스 남부 코타코타 지역에서 시위대들이 뒤엉켜 폭력·약탈 사태가 일었다. 수도권 혼란이 커지자 군과 경찰이 비상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사진 출처 = 볼리비아 신문 라라손(La Razon)]
모랄레스 대통령이 라틴아메리카 진보 진영 정치 지도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망명길에 오른 하루 새, 볼리비아 정치권과 수도 라파스 거리는 대혼란에 빠졌다. 11일 현지 언론 라라손 등에 따르면, 대통령 사임 소식이 나온 10일 저녁부터 야권 주도 하에 대통령 퇴진 운동을 벌인 '부정 대선 반대' 시위대와 '친(親) 모랄레스' 시위대 일부가 엘알토·코타코타·차스키팜파 지역 거리에서 불을 지르고 가게를 털어 최소 20여명이 다쳤다.

사임 발표 후 피신 간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지지 세력이 내준 코차밤바 소재 한 거처 바닥에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 출처 = 에보 모랄레스 트위터]
야권 시위대는 엘알토 시(市) 소재 모랄레스 대통령 소속당(사회주의운동당·MAS) 거점지를 공격했다. 이들이 라파스 시내 비야 빅토리아 소재 모랄레스 대통령 집과 코차밤바 소재 대통령 거주지에도 불 지르는 동안 친 모랄레스 진영 시위대는 엘알토에서 버스 64대를 부쉈다.

11일 국방부 장관도 사임했다. 비에르 사발레타 로페스 장관(MAS당 소속)은 이날 "총알은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라면서 대선 2위 후보인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과 '볼리비아판 트럼프'로 불리는 야권 지도부 페르난도 카마초를 향해 "아무리 억압의 총구를 들이대도 정치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군과 경찰이 부랴부랴 비상경계 태세에 나섰지만 현장은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9일 군부 최고사령관 윌리엄스 칼리만 장군과 쿠리 칼데론 경찰청장은 "시위를 막지 않겠다"고 선언 후 대통령 사퇴를 요구했는데 대통령이 실제 사퇴키로 한 후에도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하고 상대 진영과 마찰을 일으키자 당국 내부에서도 상황 대응·지휘 체계에 혼란이 생겼다고 로이터통신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등 외신이 11일 전했다.

정치권은 국·내외 이념노선과 뒤얽혀 무정부 상태에 다다랐다. 애초에 의회는 11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통령 사직서를 승인하려했지만, 비행편이 취소되고 거리 곳곳이 가로막혀 폭력이 난무한 탓에 의원들이 제 때 의회에 출석하지 못해 12일 회의 재소집을 결정했다. 현재 볼리비아에선 10일 모랄레스 대통령 사임발표와 더불어 헌법상 임시 대통령직 승계 1위인 부통령이 사임했고, 그 다음 순위인 상원 의장도 사퇴한 상태다. 또 모랄레스 계 정당(MAS)이 상·하원을 각각 2/3이상 점한 상태이다보니 대통령 사표 수리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재향군인회에서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날 그는 "모랄레스 사퇴를 환영한다. 베네수엘라에도 의미있는 신호가 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이를 의식한 듯 미국은 "볼리비아 의회가 모랄레스 사직서를 아주 빨리 처리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1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미국은 볼리비아 국민과 군에 박수를 보낸다"면서 "14년에 가까운 집권 끝에 모랄레스 대통령이 물러난 볼리비아 사건은 베네수엘라·니카라과 불법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넘어설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라고 밝혔다. 하루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볼리비아 10월 대선 관련자들이 전부 사퇴해야 한다"는 반응을 내기도 했다.

앞서 트럼프 정부는 '부정 대선·부정 부패'를 이유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뒤엎기 위해 베네수엘라 야권과 손 잡고 대규모 시위·군부 배신을 유도한 바 있는데 실패로 돌아갔다. 야권이라고 해서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서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보니 폼페이오 장관 본인이 "베네수엘라는 지독하게 복잡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볼리비아 혼란이 쿠데타냐 아니냐에 대해 국제 사회는 둘로 갈라섰다.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11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모랄레스 퇴진은 시위의 결과물이지 쿠데타가 아니다"고 밝혔다.

11일(현지시간)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무부 장관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볼리비아 상황은 군이 헌법을 위반해 대통령 사임을 요구한 것으로 정권에 대한 테러"라면서 "모랄레스 대통령의 멕시코 망명 신청을 수용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멕시코 정부]
반면 '신중론'을 기해온 멕시코 정부는 1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반대 의견을 냈다. 에브라르드 외무부 장관은 이날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볼리비아 상황은 군이 헌법을 위반해 대통령 사임을 요구한 것으로 정권에 대한 테러"라고 밝혔다. 이어 "오늘 저녁 모랄레스 대통령이 전화로 망명신청을 했고 우리 정부는 1928년 아바나 망명 국제 협약과 1954년 카라카스 외교 망명 협약, 정치인 망명에 관한 국내 법에 근거해 이를 받아들였다"면서 "이를 미주기구(OAS)에 통보했고 유엔에도 알릴 계획인 바, 우리 의회가 망명을 신속히 승인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앞서 최근 석방된 '남미 진보의 아이콘'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과 '핑크 타이드2.0'(Pink Tide·남미 진보 정권 집권 물결)을 알린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는 '쿠데타'라고 규정한 바 있다. 멕시코·브라질과 더불어 라틴아메리카 주요3국인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르난데스 대통령 당선자는 11일 저녁 볼리비아 상황에 대해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 모랄레스 망명 수용 의사를 내비쳤던 마리오 압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과 각각 통화하면서 "정치적 추방이 없는 자유 선거가 열려야 한다"면서 모랄레스 옹호에 나섰다고 현지 일간 라 나시온이 전했다.

한편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기구(OAS)는 12일 오후 워싱턴 본부에서 긴급 소집 회의를 열어 모랄레스 망명 문제 등 볼리비아 안건을 논의한다. 워싱턴에 모이는 국가는 미국을 비롯해 미국에 친화적인 브라질과 과테말라, 페루, 도미니카공화국, 캐나다, 베네수엘라 등이다. OAS에는 지난 1월 말 이후 '두 대통령 정국'인 베네수엘라에서는 미국이 대통령으로 인정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측 인사가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마두로 정권 측인 호르헤 아레아사 외무부 장관 트위터는 트위터 측 조치에 따라 계정이 일시 정지된 상태다.

다만 1월말 베네수엘라 사태 때처럼 미주 대륙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데 뭉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페루에서는 현재 마르틴 비스카라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해 1월 말 조기 총선을 앞둬 국내 정치에 더 관심이 많다. 브라질에서는 '친미파'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인기가 빠르게 식어가는 가운데 '반미'성향인 룰라 전 대통령이 페르난도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와 손잡고 '남미 진보 재결집'에 나섰다. 칠레의 피녜라 대통령은 중도 우파 계열이지만, '불평등 시위'로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쪼그라 들어 국제 행사마저 줄줄이 취소한 가운데 시위대의 요구에 따라 개헌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달 20일 대선 때 모랄레스 대통령은 40%를 얻어 2위 메사 후보보다 10%포인트 앞섰다며 결선 투표 없는 승리를 선언했다. 다만 중간 개표 결과 1·2위 격차가 10%포인트 이내여서 12월 10일 결선투표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선거 당국이 갑자기 개표 공개를 중단한 후 24시간 만에 모랄레스 대통령이 2위보다 10%포인트이상 앞선다는 수상쩍은 결과를 발표해 대규모 시위가 시작됐다.

지난 2006년 1월 볼리비아 사상 첫 원주민 출신으로 '반미(反美)·진보'를 내세워 집권한 좌파 모랄레스 대통령은 코카잎을 재배하는 원주민 농민이었다가 '토지 개혁·천연가스 수입 재분배'를 주장하면서 정치에 입문해 MAS당을 세웠다. 2012년 국제 원자재 가격 폭락 사태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최빈국'이던 볼리비아에서 연 4~5%대 경제 성장 성과를 냈다. '좌파 정치인'이지만 재정 긴축을 시도해 주목받기도 했다. 한때 환경 보호를 위해 발로 뛰면서 유엔으로부터 '환경 전도사'라는 호평도 받았지만 경제 성장을 위한 개발을 중시해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권력에 집착하면서 대통령 단임제 규정을 3선까지 가능하도록 바꿨다. 2014년 3선 성공 후 4선을 위한 개헌을 시도했는데 개헌 안이 2016년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지난 해 말 최고선거법원을 통해 '연임 조항 위헌 판결'을 받아낸 후 올해 10월 4선에 도전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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