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뒤에 ‘토너먼트 생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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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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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정점인지 모르고 계속되는 한류 열풍의 3가지 이유,
치열한 경쟁·깐깐한 소비자·글로벌 가성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가입자 수 자체를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2021년 9월23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오징어 게임>(감독 황동혁)은 공개 3주 만에 전세계 넷플릭스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출연 배우부터 촬영 장소까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한류는 정점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제 시작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 콘텐츠는 어떻게 글로벌 경쟁력을 가졌을까? 음악산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 소비자, 가성비라는 3개의 키워드로 살펴보았다.

1. 치열한 경쟁의 산업구조

한국 시장은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고립된 섬과 같다. 그런데 바로 이 한계가 한국 콘텐츠의 높은 경쟁력을 만들었다고도 생각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음악 디지털화를 정착시킨 곳이다. 정보기술(IT) 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 규제 아래 민간 경쟁 또한 심화했다. 음악보다 조금 늦었지만 방송 인프라 역시 케이블 채널과 인터넷티브이(IPTV)로 급박하게 전환됐다. 핵심은 전환 속도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빨리 바뀌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 콘텐츠는 한정된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차별화된 디테일을 개발하거나, 잘 팔리는 규칙에 안주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내용보다 비용이다. 극단적인 경쟁 상태에서 비용 구조의 효율화야말로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합리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콘텐츠 산업은 매우 빨리 수직계열화됐다. 2007년, 연예기획사들이 드라마/영화 제작사와 손잡거나 직접 자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원더걸스의 노래 <텔미>(Tell Me)가 사용자제작콘텐츠(UCC) 열풍을 만들기도 했다. 2006년 론칭한 tvN과 엠넷이 유료 엔터테인먼트 방송 시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유튜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2008년 1월이다. 한국 콘텐츠 산업의 분기점을 2007년 무렵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2019년 미국 방송사 에이비시(ABC)의 여름 콘서트 시리즈 <굿모닝 아메리카>의 무대에 선 방탄소년단(BTS). 연합뉴스 AP


극단적 경쟁, 비용 구조의 효율화

이때는 음악 기획사, 드라마·영화 제작사,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수익의 파이프라인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수·합병하는 시기였다. 작은 시장에서 최대 효율을 만들기 위해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자체적으로 몸집을 불려왔다. 물론 이질적인 산업이 결합되는 과정은 쉽지 않아서 2010년이 되기 전에 연예기획사들의 연합 구조는 많은 진통을 겪었다. 그러나 사실상 수직계열화 모델은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었다. 지금도 카카오·네이버 같은 플랫폼 기업과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기업의 인수·합병은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케이팝(K-Pop), 드라마, 영화의 완성도는 이런 배경에서 높아졌다. 2010년 무렵 아이돌 연습생 수는 100만 명을 기록했다. ‘신한류’라고 부르는 2차 한류가 발생한 무렵이었고 글로벌 사업자의 한국 진출도 가시적으로 벌어졌다. 경쟁이 심화하는 시점에서는 지속성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문제다. 인디 음악도 별다르지 않다. ‘홍대 앞’은 한국 인디 문화의 상징이자 유일한 서브컬처 시장이었다. 다시 말해 매우 높은 진입장벽이었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의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 콘텐츠가 거의 동시적으로 글로벌 성과를 낸 계기에는 이런 내부 경쟁 체제가 작동했다고 본다. 나는 이것을 ‘토너먼트 생태계’로 정의한다.

2. 전 국민이 평론가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직후의 평가를 기억하는지? 대부분 혹평이었다. 신파 스토리, 평면적인 캐릭터, 유치한 전개 등이 이유였다. 하지만 한 달 뒤 이 드라마는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오징어 게임>만 그랬을까? 한국에서 1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나 히트한 드라마도 대부분 악평에 시달렸다. 전문가 의견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 국민이 평론가’라는 농담은 사실 농담이 아니다.

한국 관객, 좀더 넓은 범위에서 한국 소비자는 매우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유행에도 민감하다. 그게 바로 한국이 마블 시리즈나 007 시리즈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세계 최초 개봉 지역이 되거나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아시아 전초기지처럼 여기는 이유일 것이다. 흥미로운 건, 한국의 메이저 영화나 드라마가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면서도 장르적 관습과 예술적 감수성을 동시에 욕망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종종 사회비판적 태도까지 반영되면서 한국 콘텐츠의 메인스트림은 기이한 대중성을 확보했고, 글로벌 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2009년 노래 <텔미>로 사용자제작콘텐츠(UCC) 열풍을 일으킨 뒤 미국으로 진출했던 원더걸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관습적이면서 예술적이고 사회비판적이기도 한

원인이 있을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1990년대에 한국은 이미 피시(PC)통신으로 ‘취향의 공동체’라는 소비자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런 네트워크 환경은 성장기에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를 경험한 청년세대(엑스세대) 중 일부를 마니아 집단으로 전환했다. 전체 소비자 그룹에 비해 이들의 규모는 작았지만 문화 콘텐츠 관여도는 매우 높았고, 무엇보다 대부분 잠재적 생산자라는 정체성을 가졌다. 그 영향력은 블로그라는 인터넷 생태계로 확장됐고, 문화 콘텐츠에 대한 비평적 관점과 태도는 제작 집단에도 매우 중요했다.

사실 ‘전 국민이 비평가’라는 농담은 소비 그룹 대다수의 정보 접근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 인터넷 사용률은 개개인의 정보 검색, 습득, 재해석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한다. 한국의 보편적 라이프스타일에는 콘텐츠 소비와 정보 검색, 뉴스 소비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이 매우 깊게 반영돼 있다.

3. 글로벌 가성비

글로벌 산업의 관점에서 한국 콘텐츠는 ‘가성비’가 좋다. <오징어 게임> 회당 제작비는 약 25억원 수준이고, 8부작 총제작비는 약 200억원으로 알려졌다. <킹덤>의 회당 제작비도 15억~20억원 수준이다. 회당 4억~5억원의 제작비가 드는 방송사 드라마와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높은 편이지만 미국 드라마를 기준으로 보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왕좌의 게임>은 회당 제작비가 71억~83억원, <기묘한 이야기>는 회당 71억~110억원, <만달로리안>은 회당 179억원, 마블의 티브이(TV) 시리즈는 회당 299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오징어 게임> 제작비는 이 작품들에 비해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제작비가 최소한 1천억원 수준인데 그 이하는 보통 저예산 영화로 분류된다. 한국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의 10분의 1 수준인 100억원 규모로 정의된다. <기생충> 제작비는 150억원, <설국열차> 제작비는 430억원이었다.

음악은 어떨까? 연습생 시기부터 데뷔까지를 케이팝의 제작 기간으로 볼 때, 최대 5년간 투입되는 비용은 적어도 2억~30억원 수준으로 추정한다. 여기에는 10곡 정도의 작곡비, 5곡 이상의 뮤직비디오, 싱글과 앨범의 발매 시점마다 투입되는 마케팅과 프로모션 비용이 포함된다. 수익모델은 음반 판매와 콘서트, 광고인데 이 중 광고 매출이 가장 높은 편이다.

콘텐츠를 ‘예측 가능’으로 만드는 팬덤

미국의 경우는, 추정치이지만 히트곡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는 곡당 1억원 정도, 래퍼의 피처링은 버스(verse)당 8천만~5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팝의 작곡은 주로 송캠프 방식으로 진행된다. 송캠프는 한 번에 10명 내외의 작곡가가 동시에 협업하는 방식으로, 테일러 스위프트나 아이유 같은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이상 곡당 비용은 비싸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돌 그룹에 작곡/프로듀싱을 하는 멤버가 있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케이팝의 실제 경쟁력은 팬덤에 있다. 팬덤은 저성장 시대에 더욱 불안한 콘텐츠 비즈니스에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여기에 IT 테크놀로지가 개입하면서 엔터테인먼트는 측정 가능한 모델로도 전환된다. 유니버설뮤직그룹 같은 글로벌 음악산업의 플레이어들이 케이팝 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기도 하다. 바야흐로 한 세기를 지배한 스타시스템이 저물어가는 시점이라고 본다.

한국 시장의 성장을 글로벌 관점으로 살필 필요도 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보고서를 토대로 유추해보자. 2021년 4월 공개된 2020년 보고서는 한마디로 ‘(일본을 제외할 때) 아시아는 세계에서 비상식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고, 한국이 그 시장을 주도한다’고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지역이고 그중 브라질이 가장 크다. 그다음으로 빨리 성장하는 지역은 아시아인데,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일본을 제외한다면 라틴아메리카보다 훨씬 높은(29.9%)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중 한국은 케이팝으로만 44.8%의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로컬 콘텐츠 시장이다. 반면 미국은 가장 느리게 성장하지만 가장 큰 수익을 내는 곳이다. 시장 규모 자체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뜻이다.

글로벌 관점으로 한류를 보기

이제까지 한국 콘텐츠의 가장 큰 문제는 ‘글로벌 진출’이었다. 이 문제는 지금 글로벌 미디어의 한국 진출과 알고리즘과 자동번역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상황은 급변한다. ‘밀도 높은 시장에서 확보된 경쟁력’이라는 비교우위도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으로 꼽은 요소들은 모두 외부 상황에 따라 바뀌는 변수다. 반면 상수는 내부 역량이다.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핵심은 바로 인력, 사람에 있다는 뜻이다. 크리에이티브에 투자한다는 것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차우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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