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968억 원에 낙찰된 피카소의 작품 '알제의 여인들'은 17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가 5,000억 원에 낙찰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그림이 된 이 그림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합니다.
피카소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예술가입니다. 그가 활동한 영역은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과 시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생애 동안 3만여 점의 작품을 남기며 활동 범위뿐만 아니라, 활동량까지 엄청났던 인물입니다.
피카소의 이런 천재적인 면모는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의 교육 덕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 실력에 굉장히 자신 있어 했고 당당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말하길 자신은 8살에 이미 라파엘로만큼 그렸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의 이런 자신감의 근거는 스스로의 경력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13살에 개인전을 열었고, 그가 열다섯 살에 그린 데생과 유화들을 보면 이미 그가 대가의 경지에 올랐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 20대엔 그의 그림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준 큐비즘을 구현했고, 40대에는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적인 그림들을 결합하며 그의 전성기는 꺼질 줄 모르는 불같이 흘러갔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알제의 여인들'의 탄생은 그가 75세였던 노년기 때입니다. 피카소의 노년기엔 미술사 속 거장들의 그림들을 리메이크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알제의 여인들'은 본래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리메이크한 그림입니다. 피카소가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패러디한 대에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에게서 그 단서가 있습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 오른쪽에 앉아있는 물 담배를 피우는 여인이 피카소의 마지막 반려자인 '자클린 로크'를 놀라울 정도로 빼닮았던 것입니다. 피카소 스스로가 그림을 보고 그의 연인을 떠올리며 그렸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본 피카소가 자신의 연인과 그림 속 여인이 상당히 닮은 것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어 '알제의 여인들'을 그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림 속 여인 '자클린 로크'는 도자기 공방에서 영업일을 하고 있던 직원이었습니다. 당시 피카소는 도자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공방을 드나들며 둘의 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피카소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올가가 1955년 사망하고 6년 후인 1961년 둘은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면서 59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자클린 로크는 피카소를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그가 죽기 전까지 마지막 연인이 되어주었습니다.
피카소는 그동안 그렸던 자신의 연인들보다도 더 많이 자클린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그가 자크를 링을 통해 영감을 받아 남긴 작품 수는 총 400점 이상이나 된다고 합니다. 둘은 20년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피카소가 사망한 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평온하진 않았습니다. 피카소와 또 다른 전 부인과 자녀들이 피카소의 재산 상속문제를 가지고 법적 다툼을 벌였고, 자클린은 그들에게 피카소의 유작과 재산을 분배해주며 남겨진 문제들을 해결해 갔습니다. 피카소 떠난 이후 그가 남기고 간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11년이란 시간을 써야만 했습니다.
모든 문제의 교통정리를 끝낸 후 그녀는 자신이 가진 피카소의 유작들을 총망라하여 그의 고국인 스페인에서 대대적 회고전을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개막식에 참석하겠다 한 자클린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개막식 당일 그녀는 피카소와 함께 살던 고궁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피카소의 곁으로 떠나버린 것이었습니다.
자클린의 이런 소식은 모두에게 안타까움을 남겼고 그녀가 떠난 후, 그동안의 의지에 따라 그녀가 소장했던 피카소의 작품 1,000여 점을 전시한 가장 큰 피카소의 미술관인 '자클린과 피카소의 미술관'이 설립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