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인터뷰] 당신이 ‘1도 모르는’ 트랜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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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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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부산 모 스터디 모임방에 기자(오른쪽)와 마주 앉은 선우(가명) 씨와 지니(가명) 씨.


지난 7일 오후 2시, 부산 서면 어느 스터디 모임 공간의 작은 방.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려고 서둘렀는데도 두 사람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정말 어렵게 만남이 성사된 트랜스젠더 선우(가명) 씨와 지니(가명) 씨였다.

20대 중반이라는데, 더 앳되어 보이는 둘과 순간 눈이 마주쳤다. "아…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웬만한 일로는 당황하지 않던 20년차 기자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조심스러운 인터뷰여서 제법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그러니 고백부터 해야겠다.

성전환 수술을 한 변희수 부사관이 강제 전역을 당하고,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이야기가 연일 뜨거운 이슈였다. 가족, 동료들과 이런저런 의견도 나눴지만, '크게 나와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내가 얼마나 알길래 이러쿵저러쿵하는 거지?’

미국이나 유럽 여러 도시를 방문할 때 ‘무지개 깃발’(성소수자 운동의 상징)이 내걸린 거리를 만나면 호기심에 이리저리 서점 등지를 둘러봤었다. 텔레비전에 게이,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면 ‘그래, 이들도 인권이 있는데 다같이 살아야지’라며 나름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게이와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뭉뚱그려 일컫는 ‘LGBT’의 뜻을 안다는 정도로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지난해 11월 열린 제1회 경남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대형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부산일보DB


그랬던 기자가 트랜스젠더에 대해 ‘1도 모른다’는 건 금방 확인됐다. 수소문과 기다림 끝에 전화기 너머로 접촉한 지니 씨와 만남을 조율하면서다. "저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고요." 대체 이게 어느 나라 말인가 싶었다.

이 인터뷰는 세상에서 엄연히 살아가는 그들과 소통하고, 그 삶을 들여다보려 노력도 않고 애써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또 두 사람의 신분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다소 길어지더라도 그들이 전한 이야기를 그대로 반영하려 노력했다.

■ '트랜스젠더 탐구생활'

"죄송하지만, 전 그런 용어를 잘 모릅니다." 지니 씨는 그런 기자에게 트랜스젠더의 기본 개념을 소개한 사이트(transroadmap.net)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왔다. 미리 예습 좀 하란 얘기였다. 천만다행이었다.

인터뷰 날, 기자 앞에 마주 앉은 선우 씨는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과 성별 정정을 마친 '트랜스맨' 혹은 'FTM(Female to Male)'이라 자신을 소개했다. 제법 굵은 목소리였다. 옆에 앉은 성소수자 활동가 지니 씨는 '논바이너리(Non-binary) 트랜스젠더', 그러니까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자신의 성 정체성이라 여긴다. 수술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트랜스젠더 탐구를 시작한 기자에게 시급한 건 명확한 개념 이해였다. '남성 → 여성' 혹은 그 반대라면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제3의 성 이라니.

선우 "성적 지향을 중심으로 보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게이·레즈비언), 양성애자가 있어요. 이와는 완전히 별개로 트랜스젠더는 나는 누구인가 즉, 성별 정체성에 관한 거에요. 여성으로 태어났는데 자신을 남성이라고 여기는 사람(FTM·트랜스젠더 남성), 반대로 MTF(Male To Female·트랜스젠더 여성)가 있겠지요. 여기까진 쉬운 개념이에요.

그런데 이건 사회가 정한 이분법에 기초한 겁니다. 성 정체성은 좀 복잡해요. 남성 여성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여성이라 인식하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어요. 단순히 남성 여성이 아닌 제3의 성, ‘나는 둘 다 아닌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과연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으로 젠더퀴어(Genderqueer)라는 개념이 새로 나왔어요. 외국의 경우 제3의 성을 인정해 여권에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은 그런 개념 자체가 통용되지 않습니다."

그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도 선우 씨처럼 성전환 수술을 해야 할까.

지니 "여성 남성 어느 성으로도 규정하지 않지만, 저의 경우 목소리나 가슴수술을 하고 싶었어요. 근데 집안 환경과 경제적인 문제로 알아보기만 하고, 심리 상담만 하는 데 그쳤어요. 일반인들이 이런 개념을 어렵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공교육 과정에 성소수자가 배제됐기 때문이에요. 성소수자들마저도 단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어요. LGBT란 말도 요즘엔 ‘LGBTAIQ+’라 해서 더 여지를 두고 있어요. A가 무성애자(Asexual), I는 중성(Intersex), Q가 Questionary(스스로 성적 지향성 혹은 성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 등이죠. "

그러고 보니 올해 고교에 진학하는 아이와 학교 성교육 이야기를 할 때 성소수자에 대해 배웠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지니 "교육과정을 확인해보진 않았는데, 캐나다 등에선 정규교육에서 성소수자 개념이나 분류를 가르치는 것 같아요. 어떤 경우엔 성소수자 파트너와 성관계 방법까지 자세하게 교육한다고 들었어요."

지난 7일 오후 진행된 트랜스젠더 인터뷰 현장.


이때 민감한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건 에이즈 예방 때문에 하는 건가요?"

선우 "아뇨. 성행위를 삶의 하나로 규정하고 타인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알려주자는 거에요. 이성애도 있고 동성애도 존재하니까 가르치는 거죠.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동성애, 이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감염되는 거에요."

지니도 보탰다. "에이즈는 성관계로만 감염되는 게 아닙니다. 청소년기에 잘못된 성관계 방법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데, 올바로 가르치자는 취지예요."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 ‘비건’처럼, 성전환은 자신의 의지인지 혹은 선천적인 건지도 궁금했다.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묵직한 질문이 이어지는데도 두 사람은 익숙한 듯 막힘이 없었다,

지니 "(성소수자는) 선천적, 후천적이냐를 요즘은 거론하지 않아요.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묻는데 그게 중요한 논의 지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재 어떻게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거죠. 저의 경우 최초의 기억은 아홉 살 때였어요. ‘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날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깨닫게 된 거죠."

그렇다면 제3의 성인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는 결혼을 하지 않을까? 실례인 줄 알았지만, 꼭 묻고 싶었다.

지니 "논바이너리 정체성과 결혼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개인의 선택이에요. 개인적으로 비혼주의자라 결혼을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연애하면서 제 정체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여성 혹은 남성 파트너로서의 역할이나 성별 지칭을 거부하는 그런 식으로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성적 지향으로 보면 저는 성별 구분 없이 끌림을 느끼는 경우에요."

40대 후반까지 남성임을 의심한 적 없는 기자는 "체험할 수 없는 이야기라 바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솔직히 말했다.

지니 "저희는 반대로 얘기해요. ‘그럼 넌 한치의 의심도 없이 어떻게 남성이라고 인식할 수 있어?’라고요. 저희는 한 번도 성별에서 일치감을 느껴보지 못했고, 꾸준히 성 정체성에 대해 묻고 고민한 사람들이에요."

우리 주변에 트랜스젠더가 얼마나 살고 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지니 "수치로 말하기 어려워요. 트랜스젠더는 성소수자 내에서도 소수자에요. 성소수자 모임도 동성애자 중심인 데다 트랜스젠더 성 정체성이 내부에서조차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요. 트랜스젠더는 굉장히 파편화돼 조금씩 모여 고충을 공유하는 정도여서 조직화되어 있지 않아요. 온라인상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폭력이 난무하지만, 오프라인에서도 말 할 것 없이 위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우 "전 연령대에 트랜스젠더들이 있지만, 세대별로 연결돼 있진 않습니다. 그 시대가 가지는 남성상 여성상이 다른데, 영화 '불온한 당신'은 1945년생 FTM으로 추정되는 분의 삶을 그렸어요. 그때는 적당한 말이 없어서 '바지씨' '치마씨'같은 말을 썼다고 해요. 트랜스젠더라는 말도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들어 나왔으니까 청년 세대 이하의 성소수자 밖에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아요."

성별 정정을 한 트랜스젠더 남성도 군대를 가야 하는지 물었더니, 당사자인 선우 씨가 답했다."현재 제2국민역으로 5급 판정을 받아요. 민방위 훈련만 받으면 됩니다."

■ 커밍아웃, 가족 그리고…숙명여대 사건

까맣게 몰랐는데, 성소수자들은 주변 사람들보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어려운 일이라 입을 모았다.

선우 "일반적으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시기가 대개 2차 성징이 일어나는 청소년기에요. 그 시기에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는 건, 극단적으로는 호적에서 파일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해요. 그래서 가족들의 생각을 떠보는 정도에 그쳐요."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떤 경험을 했을까. 가족들은 잘 적응했을까.

선우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에요. 모두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20대 중반에 성별 정정까지 마친 건 흔하지 않아요. 커밍아웃 이후 아예 집과 연을 끊고 사는 분들도 많아요. 근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직 적응을 못 하고 좀 어려워 하세요. 부르던 대로 '손녀'라 하시고, '언니'는 어디 갔냐고 하세요."

지니는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고민이 많은 둣했다. "저는… 버티기 힘들어서 어머니 빼고는 커밍아웃을 했어요. 근데 성소수자 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 정도로만 얘기해서 정확한 개념은 잘 모르세요. 특히 수술을 하지 않았으니까, 저를 포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성소수자에겐 척박한 작은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독립하려고 부산으로 왔어요. 어머니는 제가 이성애자로 돌아올 거라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커밍아웃 이후에 오히려 대화가 잘 안되요. 트랜스젠더 이슈가 나오면 '싫다' '머리 아프다'며 회피하시거나 싸우게 돼요. 제가 이성애자로 돌아올 구실을 찾으려고 앨범에서 남자의 흔적을 찾는다거나, 아니면 어떤 여자애를 좋아하는 건 착각이다 그런 말씀을 많이 들어요."

주민등록상 번호가 여성인 '2번'으로 시작하는 지니 씨는 "이 자리에 온 건 저와 다른 상황인 선우 씨와 함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다양한 트랜스젠더 이야기를 풀고 싶었고, 특히 지역에 사는 트랜스젠더들의 열악한 환경을 전하고 싶었다"고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7일 선우 씨와 지니 씨는 스스럼 없이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지니 "트랜스젠더라 하면 트랜스젠더 여성을 피해자적인 위치로 그리거나 자극적인 이슈로만 소비합니다. 트랜스젠더 안에도 다양한 맥락이 있는데 다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주류 미디어에서 아직 거기까지만 수용하고 소비한다고 생각해요. 격동의 시기를 겪으면서 퀴어 안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미디어에서 다루는 성소수자는 홍석천, 하리수에 머물고 있어요."

선우 "트랜스젠더들이 사는 모습은 천차만별이어서 사실 '이렇게 산다'고 얘기하기 힘들어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들도 대부분 수도권 중심이어서 지역은 정말 열악해요. 부산에는 그나마 7~8년 된 '부산성소수자인권모임 QIP'와 부산퀴어문화축제 등의 성소수자 단체가 있지만, 트랜스젠더만의 모임이 따로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러니까 변희수 부사관도 숙명여대에 입학한 분도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신 거에요."

마침 궁금했던 변희수 부사관, 숙명여대 얘기가 나와 바로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선우 "사실 그게 여대에 합격한 첫 사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공개적으로 한 건 처음이 맞지만 이전에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누군가 여대에 들어갔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기사가 났을 때 '최초'에만 방점을 둬서 좀 그랬어요."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지니 "정확히는 트랜스 배제적인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부류를 통칭해서 '터프'(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라고 하거든요. 숙명여대 입학을 반대하는 걸 보면서 같은 페미니스트로서 슬픔이 있어요. 무엇보다 퀴어이자 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로서 현장에서 집회도 하고 함께 해왔어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우리 존재를 이렇게 지우나 섭섭한 감정도 있어요."

이번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두 사람은 모두 여성으로 성전환을 마친 MTF가 주인공이다. 이어서 선우 씨가 작정한 듯 말했다.

선우 "이번 일로 고정관념이 좀 나아질지 잘 모르겠어요. 트랜스젠더는 내 몸에 맞지 않는 성별로 태어났다는 걸 자각하며 수십년 동안 사는데 정작 성전환 기간은 1~2년도 채 되지 않거든요. 근데 그 이후만 트랜스젠더의 삶이라 생각하니까, 비수술 트랜스젠더들이 훨씬 많은데도 그런 오해들이 생겨버린 거죠. 또 이번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이들을 위해 새 제도를 만들지 논의해야 할텐데, 터프는 남성과 여성 이외에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니까…."

트랜스젠더의 학교 생활이 결코 순탄치 않았을 거라 짐작했지만, 실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선우 "저는 남성으로 보이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주민번호가 2번일 때는 여자 교복을 주고, 여성 줄에 서고 여자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는 삶을 강요당했어요. 숙명여대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게, 저는 과학고를 가고 싶었거든요. 근데 과학고에선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 제가 원치 않는 성별의 방에서 생활하며 다니고 싶지는 않아서 진학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자체를 가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는데, 부모님이 꼭 가야 한다고 하셔서 조건을 걸었어요. 남녀공학 학교에 남학생으로 다니게 해달라고요. 어찌어찌 입학은 했지만 결국 자퇴했어요. 명부에 성별이 나와 있는데 학교에선 그걸 제대로 관리를 안 해요. 게다가 같은 중학교나 학원을 다녔던 애들이 같은 학교로 진학하기도 하니까 아웃팅을 당할(들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수능고사장도 여학생과 남학생을 아예 다르게 배치하는데, 남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다 주민번호 때문에 여학생 고사장으로 배치되었을 때 같은 학교 학생이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 두려웠어요. 그렇게 배치되는 것 자체도 싫었고요. 그래서 성별정정 전엔 수능도 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선우 씨는 습관적으로 자신은 '운이 좋다'고 반복해서 말했고, 울컥하는 감정을 감추려 애썼다.

■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대한민국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트랜스젠더들에겐 여전히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곳이다. 선우 씨는 그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리려고 했다.

선우 "20대 중반 전에 성전환과 성별 정정 과정을 밟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대법원 예규에 따라 성별 정정을 하려면 만 18세 이상으로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의 진단서도 받고 성전환 수술도 받아야 하고, 판사가 보기에 성별이 바뀌어 보여야 하는 건 물론이에요. 미성년 자녀도 없어야 해요. 더구나 만 24세가 넘지 않으면 정신과에 혼자 갈 수 없어요. 가족에게 커밍아웃이 쉽지 않아서 그 나이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WPATH)는 트랜스젠더에게 의료행위가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게 하는 보조적 장치라 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대학가고 돈 벌고 하는 시기에. 성전환, 성별 정정을 마치기 전까지는 일반인인 것처럼 지정된 역할에 충실하다가, 어느 순간 인연을 다 끊고 성전환을 한 다음에 아예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 지인의 경우 유럽으로 망명을 간 분도 계세요. 왜냐하면 커밍아웃과 성전환 전인 MTF에게 군대 문제가 가장 심각해요. 그게 고비인 것 같아요. 나이 때문에 징집되는 그 시기에 정신과 진단서를 받을 수도 없으니까요."

이런 트랜스젠더의 삶을 사람들이 더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다면 상황이 나아졌을까. 종교단체 등을 중심으로 그들을 부정하는 반발이 엄청난 것이 현실이어서다.

지니 "퀴어문화축제나 인권조례와 관련해 반발이 많았다는 걸 알아요.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 제주퀴어문화축제 김기홍 조직위원장이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기도 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성별이 모호하게 인식돼 길거리에서 차별을 겪곤 했어요. 술 취하신 중년 남성들이 시비를 걸기도 해요. 상가 화장실에서 '어, 성소수자세요?'라고 묻더니 황급히 나간 분도 계셨죠. 가까이 와서 가슴이 있는지 보고 가시는 분도 있고, 눈으로 스캔하는 건 기본이고요."

선우 "호르몬 치료라는 게 없었던 중학생 때 집에 가는데 '넌 여자냐, 남자냐' 하고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지난 7일 진행된 트랜스젠더 인터뷰 현장.


정말 몰라서 선우 씨에게 물었다. "지금도 계속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선우 "아… 네. 그게 우리나라 성별 정정 조건 중 하나가 이전의 생식능력이 없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자연적으로 호르몬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주입해야 건강이 지속되는 상태에요. 거의 죽을 때까지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해요. 수술 전 호르몬 투여 과정에서 이상이 생겨 포기하는 분도 있어요. 2010년대 들어서 FTM의 경우 남성 성기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판례가 생겼어요. 외부성기 수술은 비용도 그렇지만 엄청난 후유증을 유발할 수 있어 성별 정정을 위해 꼭 해야 하는 것이 인권침해라고 본 것 같아요.

어쨌든 해외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이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 정말 신중하게 몇 년 이상 두 가지 삶을 살면서 수술을 결정할 수 있게끔 하기도 합니다. 6개월 정도 호르몬 치료가 가능한지 확인한 뒤 수술을 하더라도 아파서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거든요. 정말 인생을 건 고민 끝에 결정한 일인데, 모르는 분들은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선우 씨와 지니 씨는 용기를 내어 낯선 기자에게 모든 걸 쏟아냈다. 앞으로 더 많이 남은 그들의 삶이 걱정이었다.

지니 "트랜스젠더들도 다양한 결이 있고, 다들 다른 환경과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게 다 지워지고 간단하고 납작하게 똑같이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삶을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들이에요. 올해는 지역에서 더 많은 동료들을 모으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선우 "지금은 정말 이례적인 상황이에요. 연예계 이야기를 제외하고 성소수자 얘기가 이 정도로 이슈가 된 사례가 없었어요. 한편으로는 '이만큼 왔구나,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 존재가 이렇게 다양합니다. 한 뭉텅이로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나 스스로가 규정하는 성별로 사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2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만남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스마트폰의 기사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단독] 숙명여대 성전환 합격자 입학 포기'. 이후 이 기사에는 6000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리며 뜨거운 논란이 지속됐다.

그 긴 그들의 삶을 잠시 들은 이야기로 짐작할 순 없겠지만, 성소수자 안의 소수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정말 다행이었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사진=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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