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책 미리보기] 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연재]#5. 나비로 만나는 아이들의 세상, 공작나비(2)_교과서 수록 작품

문예출판사님의 프로필 사진

문예출판사

공식

2017.01.16. 06:001,277 읽음

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친구에게 오색나비를 보여주었네.
그러더니, 결점을 지적하더군.

타당한 지적이었어.
녀석 말마따나
내 오색나비는 다리가
두 개 없었으니까.

난 그 정도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헐뜯기 좋아하는 친구 때문에
오색나비에 대한 기쁨은
반감될 수밖에 없었네.

그래서 그날 이후로
그 친구에게는
나비를 보여주지 않았지.


공작나비(2)
Das Nachtpfauenauge
- 헤르만 헤세, 1911년

중학교 교과서 수록 작품입니다. 비상, 지학사, 천재 교과서에 '공작나방'이란 제목으로 실려있습니다.
나비에 관한 이야기가 왜 나방으로 번역되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중점박이푸른부전나비

지금도 무척 예쁜 나비들을 보면 그때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네. 그러고 나면 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무지막지하게 탐욕스런 황홀감이 순간적으로 나를 다시 덮치는 느낌이 들어. 내가 어릴 때 처음으로 산호랑나비에게 살금살금 다가갈 때 느꼈던 그런 황홀감 말일세.

그 이후엔 어린 시절의 무수한 순간과 시간이 한꺼번에 떠올라. 꽃향기 가득한 마른 들판의 뜨거운 오후, 정원의 서늘한 아침, 비밀을 간직한 듯한 숲 가장자리에서의 저녁 시간 같은 것들이지. 모두 내가 그물채를 들고 몰래 숨어서 보물찾기에 나선 사람처럼 매 순간 깜짝 놀랄 즐거움과 행복감을 기다리던 순간이었어. 그렇게 기다리다가 아름다운 나비를 발견하면, 굳이 특별한 희귀종이 아니어도 상관없네.

그냥 예쁜 나비 한 마리가 햇빛을 받으며 꽃자루에 앉아 색색의 날개를 숨 쉬듯 아래위로 천천히 움직이고, 내가 숨이 멎을 듯한 사냥욕에 휩싸여 살금살금 천천히 다가가 나비의 반짝거리는 색상과 수정 같은 날개 혈관, 더듬이의 미세한 갈색 털 하나하나까지 모두 보는 순간 그건 정말 부드러운 기쁨과 야생의 욕망이 뒤섞인 긴장과 환희였네. 나중에 살아가면서는 거의 느껴보지 못한 그런 감정이었지.

부모님은 가난해서 아들한테 나비 수집 케이스를 사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수집한 나비들을 보통 종이 상자 속에 보관할 수밖에 없었네. 일단 둥근 코르크 병마개 일부를 잘라 바닥에 붙인 다음, 위에 핀을 꽂았지. 그러고는 종이벽을 구부려 내 보물들을 그 안에 보관했네. 처음에는 나도 친구들에게 수집품을 자주 보여줬지. 하지만 친구들은 유리 뚜껑이 달린 나무 상자나, 벽에 녹색 거즈 천을 댄 애벌레 통, 아니면 나로서는 꿈도 못 꿀 다른 비싼 물건들을 갖고 있어서 내가 가진 원시적인 물건을 내놓는 게 창피했네. 게다가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사실 별로 크지 않았고. 그래서 특이하고 흥분되는 나비를 잡아도 친구들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그냥 누이들한테만 보여주고 마는 게 습관이 됐지.

한번은 우리 동네에서 희귀한 파란색 오색나비를 잡아 핀에 꽂아 상자에 넣어두었네. 표본이 마르자 나는 뿌듯한 마음에 최소한 이웃에 사는 친구한테는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더군. 마당 건너편에 사는 교사 아들이었는데, 흠이 없는 게 흠인 친구였지. 그런 점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좀 섬뜩하게 여겨지는 측면이 있었어. 어쨌든 그 친구도 나비 수집을 했네. 얼마 되지 않는 볼품없는 수집품이었지만 어찌나 세심하고 규범대로 보관했던지 나비 하나하나가 꼭 보석 같았네. 심지어 그 친구는 부러지거나 손상된 나비 날개를 다시 접합하는 특출난 재주까지 있었어. 아무튼 당시 난 모든 점에서 모범생인 그 친구를 약간 경탄하고 부러워하면서도 미워했지.

큰 오색나비

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그 친구에게 오색나비를 보여주었네. 녀석은 전문가적인 눈으로 감정하더니 희귀성을 인정하고는 이십 페니히 정도의 가격을 매겼네. 에밀은 다른 수집품들도 그렇지만 특히 우표와 나비의 가치를 정확히 돈으로 책정할 줄 아는 걸로 유명했거든. 어쨌든 그렇게 가격을 매기고 나서는 내 나비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네. 오색나비가 잘못 펼쳐져 있다는 거야. 왼쪽 더듬이는 쭉 뻗었는데 오른쪽 더듬이는 굽었다는 거지. 그러더니 또 하나의 결점을 지적하더군. 이번에도 타당한 지적이었어. 녀석 말마따나 내 오색나비는 다리가 두 개 없었으니까.

난 그 정도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헐뜯기 좋아하는 친구 때문에 오색나비에 대한 기쁨은 반감될 수밖에 없었네. 그래서 그날 이후로 그 친구에게는 나비를 더는 보여주지 않았지.

2년 뒤 우리는 제법 머리가 굵어졌네. 하지만 내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네. 아니 그때가 한창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을 걸세. 그런데 어느 날 에밀 그 친구가 공작나비를 잡았다는 소문이 돌지 않겠나? 그건 내가 아는 친구 누군가가 백만 마르크를 상속받게 되었다거나 리비우스의 잃어버린 책을 찾았다는 소식보다 훨씬 충격적이고 흥분되는 소식이었네. 우리 중에서 공작나비를 잡은 사람은 아직 없었거든.

나는 우리 집에 있는 낡은 나비 도감으로만 그 나비를 알고 있었네. 손으로 직접 채색한 동판화였는데 오늘날의 그 어떤 컬러 인쇄판보다 수백 배는 더 아름답고 세밀했지. 내가 이름만 알 뿐 내 수집 상자에는 아직 빠져 있던 나비들 가운데 정말 공작나비만큼 열렬하게 갖고 싶었던 것은 없었네. 그래서 책 속의 그림만 우두커니 바라볼 때가 많았지. 그런 와중에 한 친구한테 이런 얘기를 들었네. 갈색 공작나비는 나무줄기나 바위에 앉아 있을 때 새나 다른 천적이 공격하려고 하면 접고 있던, 좀 더 짙은 앞날개를 펼쳐서 그저 아름다운 뒷날개만 보여준다지 않겠나?

그러면 뒷날개에 있는, 예상치 못한 그 이상한 느낌의 크고 환한 눈들  〔‘공작나비’라는 이름은 공작처럼 날개에 커다란 눈 모양의 무늬가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그래서 여기서 눈은 실제 눈이 아니라 날개 위의 눈 무늬를 가리킨다〕 때문에 새가 겁을 먹고 나비를 내버려둔다는 거지.

공작나비

5화 끝.
6화로 이어집니다.

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2016.11.10.

상세보기

더 많은 책소식을
쉽고 빠르게 만나고 싶다면
'팔로우'를 클릭해 주세요.
*^^*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