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전형 거쳐야 사무실 빌려줘요”… 극심해진 강남 오피스 공급난

입력
수정2022.05.09. 오후 2:51
기사원문
최온정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 강남구 언주로 일대에 12층짜리 건물을 보유한 A씨는 최근 임대차 계약을 맺으려던 B사와의 계약을 고민끝에 포기했다. B사가 제출한 임차의향서를 기반으로 매출구조와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따져봤을 때 장기간 임대계약을 맺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A씨는 “기왕이면 돌발적인 이슈가 없이 장기간 함께 할 수 있는 업체로 고르는게 목표”라고 했다.

#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C씨는 최근 100~200평짜리 오피스를 구하려는 기업들의 문의를 받을 때마다 고민이 많다.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임대로 내놓은 건물이 없어 거래 성사율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C씨는 “한 오피스당 임차의향서가 3~4장씩 들어갈 정도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니 임대인들의 기준도 높아졌다”면서 “한 1년째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강남 일대에서 오피스 수요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A씨처럼 임차인의 조건을 따져보고 임대차계약을 맺는 건물주가 늘어났다. 강남권 대형 오피스 시장이 ‘임대인 우위 시장’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수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면적 약 1만평(3만3000㎡)짜리 A급 오피스 빌딩은 의향서 제출을 넘어 면접까지 보고 임차 기업을 고르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0%’로 떨어진 강남 오피스 공실률… “사무실 구하기, 하늘의 별따기”

9일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인 존스랑라살(JLL)이 최근 발행한 ‘서울 A급 오피스 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강남 지역 오피스 공실률은 0.4%를 기록하며 2012년 이후 처음으로 0%대로 내려갔다. 서울 내 주요 권역인 여의도, 광화문 모두 10% 미만의 공실률을 기록했지만, 강남의 공실률이 유독 줄어든 것이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변에 늘어선 건물들./최온정 기자

이처럼 강남 오피스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크게 상회하면서, 양질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강남 입성을 노리는 스타트업 사이에서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임대차계약을 맺으려다가 임차를 희망하는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검토한 후 계약을 반려한 A씨의 사례처럼 임대인 우위 시장이다 보니 사무실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오피스 빌딩을 중개하는 태평양중개법인 관계자는 “직원 200~300명 정도 되는 회사 사무실을 찾는 게 제일 어렵다”면서 “좋은 위치 임대 매물이 거의 없다보니 차선책이라도 발견하면 의향서를 보내놓고 기다리지만, 기업의 수익구조가 불안해 보이거나 사업계획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임대인이 거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강남구 테헤란로 포스코타워 내 전용면적 1300㎡(약 400평) 규모의 오피스가 나오자, 20개가 넘는 임차의향서가 몰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 끝에 직장인 커리어 플랫폼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가 최종 선택을 받았다.

상업용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좋은 위치에 빌딩을 소유한 건물주의 경우, 원하는 임차인 구성이 정해져있어 이에 맞춰 업종을 고르는 편”이라면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회사 방향성과 관련된 프레젠테이션까지 거쳐 임대차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양재·남부터미널역까지 매물 동났다”… 오피스 못구한 기업들 ‘발동동’

테헤란로에서 시작된 ‘임차권 확보 경쟁’은 인근 언주로를 비롯해 양재·남부터미널역 근처까지도 번지고 있다. 강남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으로 오피스 수요가 뻗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도 오피스 공급 부족 현상이 빚어지면서 임차를 희망하는 기업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신도림에 위치한 한 공유오피스의 모습. /연합뉴스

이런 추세는 공실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4분기 기준으로 강남 일대의 공실률이 급격히 감소한 가운데, 1~2분기 20%를 넘었던 남부터미널 일대의 공실률은 3분기 7.3%, 4분기 8.7% 등으로 크게 줄었다. 작년 2~3분기 기준 테헤란로(7.5%→7.1%)와 논현역(2.2%→0.5%) 등과 비교해봐도 감소폭이 크다.

상업용 부동산 중개 플랫폼 ‘네모’ 관계자는 “최근 오피스 시장에 막 진출했는데, 임차인이 원하는 물건을 찾아보려고 해도 시장에 기본적으로 괜찮은 사무실이 너무 부족하다”면서 “임대료가 상당히 올랐는데도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인프라를 갖춘 매물이 나오면 바로 나가는 추세”라고 했다.

공유오피스 패스트파이브 관계자는 “강남의 경우 웃돈을 주고 들어가야할 정도로 임차경쟁이 치열해졌다”면서 “특히 최근 규모가 급성장한 플랫폼 회사들의 경우 임대료에 민감하지 않고, 돈에 상관 없이 자리만 있으면 들어가려는 기업들이 많아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고 했다.

사무실이 필요한 기업들의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고준석 제이에듀 투자자문 대표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강남권을 선호하는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임대료가 비싸더라도 오피스를 구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초기자금 투자가 중요한 스타트업이 임대료로 너무 큰 돈을 쓰면 중도에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도 생겨날 수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