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깡통’ 찬 DLS, 누구 책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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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8.27. 오전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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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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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결합펀드(DLF) 투자자 A씨는 매일 금융감독원 민원센터에 전화를 걸어 항의한다. 올해 3월 A씨는 “DLF는 독일 국채금리가 오르면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안전하다”는 은행원의 말을 믿고 퇴직금 2억원을 넣었지만 금리가 바닥을 치면서 원금을 다 잃을 위기에 처했다. A씨는 “누가 원금을 전부 날릴 위험한 상품에 퇴직금을 올인하나. 은행이 불안전하게 판매했으니 책임져야 한다”고 토로했다. 


세계 경기둔화로 유럽의 장기채 금리가 급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만든 파생결합상품(DLF·DLS)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지금까지 6개 금융사가 판매한 DLS의 잔액은 8224억원으로 4558억원(55.4%)이 원금손실액으로 추정된다.

DLS는 금리, 통화, 국제유가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이다. 은행들이 판매한 것은 DLS를 사모펀드 형태로 만든 DLF다. 문제가 된 DLF는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에 연계된 것과 영국·미국 CMS 금리에 연계된 상품으로 각 1266억원, 6958억원에 달한다. 우리은행(4012억원)이 가장 많이 팔았고 KEB하나은행도 3876억원을 판매했다.

다음달부터 이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는데 판매액 전체가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한 상황이다. 원금을 전부 잃게 된 투자자와 은행 간의 책임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불완전 판매’ 누구 책임?

DLS사태의 쟁점은 ‘불완전 판매’ 여부다. 은행들은 ‘파생상품의 특성과 위험을 충분히 설명했다’는 입장이지만 투자자들은 ‘위험에 대해 몰랐다’고 반박한다. 법조계에선 은행이 적합성의 원칙과 설명의무를 지켰는지가 불완전판매를 따지는 핵심쟁점이라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금융회사는 투자자의 투자목적, 재산상황과 투자경험 등에 비춰 적합한 상품에 투자를 권유해야 한다. 법에 규정된 가장 중요한 투자자 보호 장치다. 투자자의 나이가 65세 이상인지, 투자경험이 있는지에 따라 투자상품을 선별해 투자를 권유한다.

문제가 된 DLS는 지난 20년간 독일 국채금리를 분석해 설계한 상품으로 그동안 손실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수익률만 강조하다 보니 리스크를 간과하고 일반투자자에게 위험상품을 팔았다는 지적이다.

이번 DLF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는 3700명으로 평균 2억원씩 투자했다. 은행은 프라이빗뱅크(PB)를 통해 사모형식으로 펀드를 팔았다. 최소 가입금액이 1억원 이상이다.

투자자들을 대리해 집단소송을 준비 중인 법무법인 한누리는 “독일, 영국 등 해외 금리의 하락세가 뚜렷한 상황에도 상품판매를 강행했다”며 “이런 사실을 알거나 제대로 설명을 들었다면 상품에 가입할 투자자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은행 관계자는 “공모펀드가 기성복이라면 사모펀드는 소수 투자자에게만 파는 맞춤복”이라며 “투자상품 특성상 수익이 나면 아무 말이 없다가 손해가 나면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 온당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융회사가 파생상품을 팔면서 설명의무를 지켰는지도 논쟁거리다. 은행은 DLF·DLS 투자 약정서에 ‘이해했음’, ‘설명했음’ 등의 조항을 넣었고 원금손실 가능성을 설명한 녹취도 있다고 강조한다. 투자자들은 은행이 설명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 PB와의 대면상담에서 ‘투자상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 보인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번 사태는 투자자들이 불완전판매 입증이 어려웠던 키코나 동양사태와 유사하다”며 “단순히 ‘상품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는 항목에 체크한 것으로 소비자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OEM 논란, 분조위 손에 넘어가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을 포함해 증권사,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DLF·DLS의 설계·제조·판매 등 전반적인 실태를 집중 검사하고 있다. 은행이 상품 설계부터 개입하는 이른바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펀드’를 팔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OEM 펀드란 판매사가 운용사에 직접 펀드 구조를 요청하고 이를 토대로 펀드가 설정되고 운용까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펀드를 의미한다. 펀드 설정방식이 일반 제조업에서 판매자의 요청에 따라 외주 업체가 제품을 만드는 OEM과 유사하다고 해서 나온 표현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OEM 펀드는 불법이다.

앞서 금감원은 NH농협은행의 지시에 따라 OEM 펀드를 구성·운용한 파인아시아자산운용과 아람자산운용에 대해 6개월 영업정지 중징계 의견을 증권선물위원회에 제출했다. 펀드 내 자산 매매를 지원한 DB금융투자, 한화투자증권에는 과태료 부과 의견을 냈다. 반면 농협은행은 자의적이고 조직적으로 펀드 초기 조직단계부터 개입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판매사가 제조사와 어떤 논의를 했는지 자료를 입증하기 어려운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상 운용사는 제3자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며 “운용사 판단으로 시중에 나온 DLS를 담아 펀드를 설정한 것인지, 판매사들의 요구에 설정했는지 실태점검을 통해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파생결합상품의 만기가 끝나 손실금액이 확정되면 원금을 잃어버린 투자자가 기댈 곳은 금감원의 분쟁 조정뿐이다. 자본시장통합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상 판매사가 임의로 투자자의 손실을 보전해줄 수 있는 근거가 없어서다.

금감원은 다음달 DSL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보상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분조위는 사건이 회부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심의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오는 11월에 첫 조정사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사회적인 주목도가 높은 결정인 만큼 외부평가와 여론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분조위 안건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결론을 내리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7호(2019년 8월27일~9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남의 기자 namy8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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