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6. 도둑질과 고백이라는 벌, 공작나비(3)_교과서 수록 작품
도둑질을 했다는 감정보다
내가 망가뜨린 이 아름다운
희귀종을 보는 게 더 괴로웠네...
황혼 녘에야 어머니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용기가 생겼네.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고
슬퍼하실지 짐작이 갔지만,
내가 고백하는 것이 벌을
견디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이라는 걸
어머니는 이해해주실 것만 같았지.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네.
“에밀에게 가서
직접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그런 다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해."
공작나비(3)
Das Nachtpfauenauge
- 헤르만 헤세, 1911년
중학교 교과서 수록 작품입니다. 비상, 지학사, 천재 교과서에 '공작나방'이란 제목으로 실려있습니다.
나비에 관한 이야기가 왜 나방으로 번역되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 신비스런 동물(공작나비)이 그 지루한 에밀에게 잡히다니! 그래도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제야 드디어 그 희귀종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반가움이 앞섰네. 불타는 호기심과 함께 말일세. 하지만 그다음엔 부러움이 밀려오면서 진귀하고 비밀스런 나비가 하필 지루한 땅딸보한테 잡혔다는 사실이 너무 부당하게 느껴졌네. 그래서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녀석한테 달려가 나비를 보여달라고 하기가 싫었네. 하지만 내 머릿속 생각은 나비한테서 떠나지를 않았어. 그래서 다음날 학교에서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하는 순간 당장 녀석에게 달려가기로 마음먹었지.
나는 밥을 먹고 집을 나서자마자 마당을 지나 이웃집 건물 4층으로 뛰어 올라갔네. 하녀 방과 작은 목조 공간들 옆에 그 교사 아들 녀석의 방이 있었는데, 솔직히 난 자기 방을 따로 쓰는 녀석을 전부터 무척 부러워했네. 어쨌든 도중에 아무도 만난 사람 없이 단숨에 4층까지 올라가 에밀의 방에 노크를 했네. 그런데 아무 대답이 없었어. 에밀이 방에 없었던 거지. 혹시 몰라 문손잡이를 꾹 눌러보았는데, 글쎄 문이 열리지 않겠나? 평소엔 방을 비우게 되면 늘 세심하게 꼭 잠가두는 녀석이었는데 말일세.
나는 나비만이라도 좀 볼 수 없을까 싶어 친구도 없는 방에 들어갔네. 들어가자마자 에밀이 나비를 보관해두는 커다란 상자 두 개가 눈에 들어오더군. 부지런히 눈을 굴리며 살펴보았지만 거기엔 내가 찾는 것이 없었네. 문득 나비가 아직 펼침용 판때기 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 역시 예상대로였네. 거기 있었던 걸세. 공작나비는 갈색 날개가 길쭉한 종이띠로 팽팽하게 펼쳐진 채 나무판에 걸려 있었네. 나는 몸을 숙여 아주 가까이서 살펴보았네. 털로 덮인 연갈색 더듬이, 연하디연한 색상의 우아한 날개 가장자리, 아랫날개 안쪽 가장자리의 고운 솜털···. 날개 위의 눈만 종이띠로 덮여 있어서 볼 수가 없었네.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종이띠를 떼어내고 핀을 통째로 뽑아버렸네. 순간 크고 야릇한 눈 네 개가 나를 바라보더군. 내가 그림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기묘했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이 놀라운 동물을 갖고 싶다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이 몰려오지 않겠나! 결국 나는 나비의 몸에서 핀을 뽑고, 벌써 건조가 끝나 형태를 잃지 않은 나비를 손에 쥐고 방에서 나왔네.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생애 최초의 도둑질이었지. 그런데도 그 순간엔 그걸 깨닫지 못하고 오직 하늘을 날 듯한 기쁨밖에 느끼지 못했네.
나는 나비를 오른손에 숨기고 계단을 내려갔네. 그때 누군가 밑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어. 순간 양심이 깨어나면서 내가 더러운 도둑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동시에 이러다 들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지. 본능적으로 훔친 나비를 쥐고 있던 손을 얼른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었네. 그러고는 천천히 내려갔지. 타락과 수치심의 차가운 감정에 휩싸이고 불안에 떨면서, 올라오는 하녀 곁을 지나 건물 현관에 멈추어 섰네. 가슴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어이가 없었고, 나 자신에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네.
곧 이 나비를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네. 이걸 도로 갖다 놓고, 어떻게든 이 모든 걸 없었던 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 그래서 도중에 누군가를 만나거나 도둑질이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도 재빨리 몸을 돌려 계단으로 뛰어가, 일 분 뒤 다시 에밀의 방에 도착했네. 나는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 나비를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았네. 그런데 나비를 찬찬히 살펴보기도 전에 벌써 사고를 직감했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더군. 공작나비가 망가져버린 걸세! 오른쪽 앞날개와 오른쪽 더듬이가 없더군. 주머니에서 부러진 날개를 조심스럽게 꺼내보았지만 날개는 이미 회복 불능으로 망가져 서 다시 접합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네.
도둑질을 했다는 감정보다 내가 망가뜨린 이 아름다운 희귀종을 보는 게 훨씬 더 괴로웠네. 손가락에 묻은 고운 갈색 날개 가루와 찢어진 날개를 보면서 이걸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재산 전부와 즐거움 모두를 기꺼이 내줄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네.
나는 슬픈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오후 내내 우리 집 작은 정원에 앉아 있었어. 그러다 황혼 녘에야 어머니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용기가 생겼네.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고 슬퍼하실지 짐작이 갔지만, 내가 고백하는 것이 벌을 견디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이라는 걸 어머니는 이해해주실 것만 같았지.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네. “에밀에게 가서 직접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그전에는 난 널 용서할 수 없어. 혹시 네 물건 중에서 어떤 걸 그애에게 보상으로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야. 그런 다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해."
6화 끝.
7화로 이어집니다.
- 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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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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