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군비 경쟁: 대학으로 몰려드는 서구의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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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 2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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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 스탠퍼드 대학의 Raj Chetty 교수의 미국 대학의 사회적 이동성 연구를 소개하면서 맨 마지막으로 '아이비리그는 왜 우수한 아시아인의 입학을 반기지 않는 것일까?~'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시안계의 교육열 시리즈를 틈틈이 써왔는데 이번 글은 그 마지막 편으로 서구 선진국 국가들도 동참하고 있는 대학 진학열을 다루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는 대학 입학

OECD에 따르면 회원국 35개 국가 모두 대졸자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OECD 회원국 25~34세 인구 중 대졸자 비중은 1995년 23%에서 2016년 43%로 늘어났습니다. 2016년 기준으로 캐나다의 대졸 비중은 61%인데 1991년 32%에 불과했습니다. 다음으로 일본은 60%로 1997년에는 46%에 머물렀습니다. 심지어 직업학교가 잘 발달하여 대학 진학률이 전통적으로 낮았던 독일도 2006년 22%에서  2016년 31%로 대졸 인구가 증가하였습니다.  물론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는 OECD 회원국은 한국으로 1995년 29%에서 2016년 70%로 늘어났습니다. 

* OECD 회원국의 25~34세 인구 중 대졸자 비중 추이

더 높아지는 학력과 소득의 상관관계: 추락하는 저학력 젊은이들

최근 선진국에서의 고학력 선호 추세는 미국의 사례에서 명확히 나타나는 학력과 임금의 높은 상관관계에 기인한 면이 커 보입니다. 
미국의 학력별 실질 임금 추이를 보면 1980년대 후반 이후 대졸 그룹과 대학원졸 그룹에서만 실질 임금의 상승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미국의 학력별 실질 임금 추이

특히 1970년과 2015년 미국의 센서스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265개 업종에 종사하는 25~64세 중 학사학위 소지 비중이 늘어난 직종은 256개 업종에 달할 정도로 대부분의 업종에서 대학 선호가 관측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1970년 간호사(RN) 중 학사학위 소지자는 16%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60%로 늘어났으며 경찰은 6%에서 41%로 증가했습니다. 해당 업종의 업무 요건이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대졸자 비중이 크게 늘어난 직업도 있는데 택시 기사의 대졸자 비중은 2%에서 16%로 늘어났습니다. 한편 27%에서 7%로 대졸자 비중이 떨어진 기계 조작자처럼 오히려 대졸자 비중이 줄어든 업종도 일부이긴 하지만 존재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전체 대졸자의 2/3에 해당하는 2,650만명의 대졸자들이 1970년에는 미학위 소지자들이 하던 일(직업명만 보면)에 종사하고 있답니다. 

* 미국 직종별 1970년 대졸자 비중(X축) 대 2015년 대졸자 비중(Y축)

물론 대졸자들이 많아진 직종이라고 해서 임금이 무조건 높아진 것은 아닙니다. 간호사처럼 대졸 비중이 늘어난 것과 함께 1970년 35,000 달러에서 2015년 64,000 달러로 평균 실질임금이 증가한 직종이 많긴 하지만 디자이너처럼 1970년 대졸 비중이 25%에서 2015년 58%로 배 이상 늘었으나 실질임금은 58,000 달러에서 54,000 달러로 감소한 직종도 의외로 많습니다. 

* 미국 직종별 대졸 비중 증가율(X축)과 임금 증가율(Y축)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학력 선호는 저학력 업종의 임금 감소 추세와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청년층의 실질 임금 하락과 구직난은 부모 세대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 평균 시간당 실질 임금 증감 비교(2016년) 

https://www.ft.com/content/363af3be-1236-11e8-940e-08320fc2a277

* 부모 세대보다 잘 살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각국 청년들의 응답 비교(2016년)

확산되는 아시아식 군비 경쟁

앞의 글에서 소개했지만 주요 선진국에서는 점점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자국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를 높이고 저학력에 계속 머무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나름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당장 영국에서는 2014년부터 시험 적용하고 있는 8-9세 구구단 시험을 대비하여 아시아식 반복 암기 수업을 담당할 교사들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예 일부 미국 학부모들은 한발 더 나아가 대학 등록금은 물론 MBA 등록금까지 부담하며 자식들이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 미국의 대학 등록금 부담 주체 비교(4년제 공립 대학 등록금의 경우 부모 부담 비중이 제일 높음)

https://www.wsj.com/articles/questions-families-need-to-ask-about-paying-for-college-1442800935

* MBA 학비 부담 주체 비중 추이(부모 부담 비중은 2016년 18% 수준으로 다소 하락하였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높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음)

https://www.ft.com/content/2aea6a06-04d7-11e8-9650-9c0ad2d7c5b5

학비 부담에서 자유로워진 덕분인지 또는 더 치열해진 취업 경쟁 덕분인지 또는 비싼 등록금에 대한 학교측의 보상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신세대 미국 학생들(특히 IVY 리그 학생들)은 과거보다 더 높은 학점을 받고 있습니다.  

* 평균 학점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IVY 리그 대학들

https://www.economist.com/news/united-states/21615616-not-what-it-used-be-grade-expectations

The Economist는 이러한 교육열과 교육비 지출을 군비 경쟁이라고 불렀는데 따지고 보면 이 새로운 군비 경쟁은 동아시아에서 시작하여 퍼져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베트남전의 비극과 새로운 영웅

마지막으로 다시 동아시아로 돌아오면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가구 소득의 15%를 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는데 반하여 아직 미국 가구는 2%만 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홍콩의 중고등학생 72%(2012), 대만의 75%(2010), 한국의 71%(2011), 일본의 53%(2007)가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최근 미국과 유럽에도 사교육 시장이 커지고 있다지만 동아시아와 비교할 수준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https://santa_croce.blog.me/220497291546

솔직히 시간이 지나도 동아시아와 다른 선진국 사이의 교육비 투자 비중 격차가 쉽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군비 경쟁은 기존 선진국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았던 아시안계가 학교 성적은 물론 부의 지도마저도 바꾸어 놓는 것을 목격한다면 여력이 되는 부모들은 더욱 자식들 교육에 매진할 것 같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스마트한 아시안계(특히 인도계) 덕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최근(2010-2013) 분석에서 미국의 대졸 이상 아시안계는 백만장자가 될 확률이 22.3%에 이름으로써 백인의 21.5%를 추월하였습니다. 

* 인종별 대졸자의 백만장자가 될 확률

https://www.bloomberg.com/features/2016-millionaire-odds/

물론 타이거맘으로 불리는 억척같은 아시안계 부모의 자녀 교육법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백만장자 확률의 분포를 보면 아시안계가 평균에서 백인을 약간 추월하였지만 신뢰구간은 상당히 넓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시아식 노력이 명문 학교(또는 STEM 등 인기 전공)를 거쳐 고소득 직업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중도에 부모가 바라는 궤도에서 이탈한 수많은 아시안계 젊은이들도 존재할 것입니다.

* 연령별 백만장자 확률과 신뢰구간

어쩌면 인도와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교육열은 베트남전 당시 호치민이 말한 "우리 병사 10명을 죽일 때마다 우리는 한명의 미군을 죽일 것이다. 결국 미국은 지칠 것이다."라는 무자비한 소모전의 현대판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성공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은 낙오자라는 멍에를 져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미 확전 양상을 보이는 이 새로운 군비 경쟁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인도 첫째 아이들의 키에서 나타나는 비극은 이러한 군비 경쟁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anta_croce.blog.me/221174295635

한편 이 시리즈 앞부분에 등장한 미국 사회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타이거맘 추아 교수는 싱가포르로 진출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 변두리 지역 저학력 백인 청년의 고군분투를 서술한 베스트셀러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에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J.D. Vance는 막장 같은 십대 시기를 가까스로 극복한 뒤 예일대 로스쿨로 진학하게 되는데 여기서 자신의 멘토가 되어준 은인으로 추아 교수를 거명하고 있습니다.     
학대라는 표현이 결코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딸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였던 중국계 타이거맘이 미래를 잃어버린 블루컬러 출신 백인 청년의 희망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현재의 미국과 서유럽이 맞닥뜨린 고민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전문가도 아닌 아마추어의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Santacro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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