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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실 전자 비디오 게임의 역사는 꽤나 긴 편인데요. 무려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비디오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하기 시작한 건 1972년 놀런 부쉬넬의 '퐁' 때 부터였죠.
비디오 게임이 지금처럼 현재와 미래의 먹거리 산업분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퐁'의 사례에서처럼 여러 개발자들의 공이 상당히 컸는데요. 이번엔 게임사에 영향을 주었던 세계의 유명한 게임 개발자들을 소개해보려 해요.
★토막상식 : 세계 3대 게임 개발자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90년 대부터 알려졌으며 통상적으로 리처드 게리엇, 피터 몰리뉴, 윌 라이트, 시드 마이어 중 3명을 꼽는답니다.
리처드 게리엇
(Richard Garriott)
리처드 게리엇은 80~90년대 울티마 시리즈로 컴퓨터 RPG게임의 기틀을 확립했었답니다. 특히, 1985년 출시된 '울티마 4:아바타의 임무'는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작으로 꼽히는데요. 이후, 1988년의 '울티마 5:운명의 전사들', 1990년의 '울티마 6:거짓 예언자'까지 연달아 대히트를 쳤었죠.
울티마 시리즈 이전에도 리처드 게리엇은 이미 고등학생 시절, 혼자서 '아칼라베스'라는 RPG게임을 만든 바 있는 천재 개발자였었답니다. 그의 천재성은 1997년 '울티마 온라인'에서 또다시 발휘되었는데요. 울티마 온라인은 지금의 MMORPG의 기반을 닦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죠.
울티마 시리즈 전체를 단어를 꼽으라면 높은 자유도! 그래서일까요? 꽤나 질풍노도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답니다.; 이례적인 엔씨소프트 합류와 2007년 1,000억원 제작비 타뷸라 라사의 대실패, 엔씨소프트와의 먹튀논란, 민간 우주여행자 등등. 최근엔 다시 게임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하네요.
울티마 시리즈
울티마 온라인
피터 몰리뉴
(Peter Molyneux)
피터 몰리뉴는 참신하고 혁신적인 게임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한 게임 제작자(게임계의 스티브잡스?!)인데요. 게이머가 전지전능한 신의 입장에서 게임 세계를 관조하는 이른바 갓 게임(God Game) 장르의 아버지이기도 하답니다.
어릴 적, 개미집에 관찰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피터 몰리뉴는 1989년 발매된 '파퓰러스'를 통해서 개미들의 신에서, 게임 속 신이 되고자 했었는데요. 파퓰러스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장르의 기초를 닦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1994년 '테마파크'는 타이쿤 류 게임, 1997년 '던전키퍼'는 권악징선(勸惡懲善) 류 게임의 각각 시초가 된 걸출한 작품인데요. 특히, 2001년 '블랙 앤 화이트'는 그의 갓 게임의 장르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죠. 2004년 '페이블' 시리즈 이후, 그 명성이 조금 퇴색한 감이 있지만 그의 업적들은 두고두고 회자할 만하지 않나 싶어요.
파퓰러스
신디게이트
테마파크
던전키퍼
블랙 앤 화이트
페이블
갓 어스
윌 라이트
(Will Wright)
윌 라이트는 이 세상 모든 심(Sim)들의 아버지로, 1989년 도시 건설게임 '심시티'를 통해,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장르를 만들어냈답니다. 2000년엔 최초의 생활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를 탄생시키기도 했죠.
윌 라이트는 본래 프라모델 등 모형세계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컴퓨터를 접한 이후 그의 이상은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으로 보다 확장되었답니다. 1984년 '반겔링만의 습격'이라는 첫 작품을 개발하던 도중 헬기에서 바라본 지상의 장난감 같은 모습에서 심시티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해요.
심시티는 당시에 너무나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출시 전 성공 여부에 대해 업계에서 대체로 회의적이었다고 해요. 결과는 아시다시피 대성공! 교육용으로도 많이 활용되며 게임에 대한 시각 자체를 탈바꿈시켰죠. 이후, 인간 본연의 생활을 즐기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심즈는 무려 1억만 장 이상 팔렸답니다.
심시티 시리즈
심즈 시리즈
스포어
시드 마이어
(Sid Meier)
시드 마이어는 90년대부터 불려진 이른바 세계 3대 게임 개발자 중에서도 여전히 막강한 이름값을 하고 있는데요. 바로, "타임머신, 악마의 게임, 문명하셨습니다."로 유명한 '문명'의 아버지랍니다. 최초의 문명은 1991년 출시되었었죠.
문명은 시드 마이어가 즐겼던 보드게임 '모노폴리'(브루마블의 원조격)와 건설&경영 시뮬레이션의 선구자 '심시티'의 영향을 받아 탄생하게 된 게임인데요. 그래서일까요? 심시티의 윌 라이트와 시드 마이어는 상호 존중을 넘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도 있답니다.
문명 외에도 1990년 '레일로드 타이쿤'으로 타이쿤 장르의 대중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던 시드 마이어는, 공식적인 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게임 개발자로도 유명한데요. 어느덧 원로 개발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현역으로서 열정적으로 개발 현장에서 뛰고 입답니다.
문명 시리즈
레일로드 타이쿤
놀런 부쉬넬
(Nolan Bushnell)
놀런 부쉬넬은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가진 게임 개발자인데요. 패미컴의 닌텐도 이전에 게임 시장을 이끌었던 미국 아타리社 의 창립자로도 유명하답니다. 하지만 그가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가 된 데에는 정작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죠.
바로, 세계 게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게임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퐁'! 단순한 탁구 슈팅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72년 출시된 최초의 상업용 비디오게임으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답니다.
퐁의 성공은 오락실을 탄생시켰고, 가정용 퐁 게임기도 기록적인 판매량을 올렸었다고 해요. 당시, 미국 최고의 레저였던 볼링장의 인기가 주춤하기도 했었다는데요. 퐁 마니아였던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퐁의 후속작 '브레이크아웃(벽돌깨기)'를 만들기도 했었답니다.
퐁
미야모토 시게루
(Shigeru Miyamoto)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마리오의 아버지, 게임계의 신적인 존재이자, 닌텐도의 살아있는 전설. 그 어떤 수식어도 아깝지 않을 위대한 게임 제작자! 닌텐도가 곧 미야모토 시게루이고, 미야모토 시게루가 곧 닌텐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싶네요.
장난감을 만들고 싶어 닌텐도 입사를 했지만, 단순 잡무를 주로 했었는데요. 사내 공모전에서 만화 '뽀빠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임 아이디어가 채택이 되었고, 이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신화가 시작되는 '동키콩'의 탄생(1981년)으로 이어졌답니다.
이후, 동키콩의 점프맨을 '마리오'로 탈바꿈하여 1985년 새롭게 세상에 내놓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1986년 액션/어드벤쳐/RPG/퍼즐을 모두 아우른 '젤다의 전설'로 그는 게임계의 월트 디즈니가 되었고,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답니다.
게임이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문화 콘텐츠로 발전한 데에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공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환갑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닌텐도의 핵심 개발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글로벌 히트로 닌텐도를 부활시킨 닌텐도DS와 닌텐도Wii도 그의 작품이었답니다.
동키콩
슈퍼마리오
마리오 카트
젤다의 전설
Wii 스포츠
Wii Fit
존 카맥
(John Carmack)
존 카맥은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게임장르 중 하나인 FPS게임의 아버지이자, 온라인 멀티플레이 모드를 최초로 도입한 천재 게임 제작자인데요. 다른 게임 제작자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프로그래밍 능력에 좀 더 특화된 인물이랍니다. 그리고 매우 젊었죠.(1993년 둠을 출시할 때, 겨우 23세)
천재 프로그래머가 으레 그러하듯이(?) 괴팍한 면도 있었는데요. 어린 시절 컴퓨터를 구하려고 사제폭탄을 이용하려 했다가 소년원에 1년간 수감되었던 일화는 매우 유명하죠. 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멘토이자 동료였던 존 로메로를 만나면서 게임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했답니다.(이드 소프트웨어 탄생의 계기)
1992년 FPS게임의 효시이자, 최초의 1인칭 슈팅게임 '울펜슈타인3D'으로 게이머들을 충격에 빠뜨리더니, 1년 후 '둠'으로 게이머들을 열광시켰죠. 특히, 데스매치 모드라는 최초의 온라인 대전 시스템은 오늘날 온라인게임의 발판이 되었답니다. 존 카맥의 FPS는 1996년 '퀘이크'로 정점을 찍었는데요. 이는, 최초의 풀3D PC게임이었어요.
울펜슈타인 3D
둠
퀘이크
빌 로퍼
(Bill Roper)
빌 로퍼는 세계적으로도 물론 유명하지만, 한국에서 특히나 더욱 유명한 게임 제작자이지 않나 싶은데요. 바로, 국민게임이자 오늘날 e스포츠의 계기가 된 '스타크래프트'의 메인 프로듀서로 한국에도 자주 내한했었기 때문이죠. 사실 직접적인 개발보다는 팀을 아우르는 프로듀싱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랍니다.
본래 무명 음악가였던 빌 로퍼는 '블랙쏜' 게임음악 참여를 계기로 블리자드에 입사하게 되었는데요. 기발한 아이디어와 긍정 마인드로 포지션을 넓혀갔답니다. 1995년 '워크래프트2'에 이어, 1996년 최초의 액션RPG '디아블로'까지 대성공을 거뒀는데, 디아블로에서 처음 도입된 배틀넷은 온라인 멀티플레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죠.
1998년 '스타크래프트', 2000년 '디아블로2', 2002년 '워크래프트3'까지 승승장구하다가 블리자드를 떠나, 플래그십 스튜디오라는 개발사를 창립했는데요. 이때부터 빌 로퍼의 몰락은 시작되었답니다. 2007년 출시된 '헬게이트:런던'으로 대실패를 경험하고 회사가 파산하기까지... 현재는 떠돌이 개발자 신세이죠;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코지마 히데오
(Hideo Kojima)
코지마 히데오는 세계적인 영화계의 거장 박찬욱 감독도 극찬한 천재인데요. 단순히 적을 해치우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잠입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랍니다. 본래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그는 1985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계기로, 게임에 그 재능을 바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코나미에 입사한 뒤, 1987년 스파이가 되어 잠입을 하는 '메탈기어'가 처음 발매되었는데요. 그 생소한 흥미진진함에 꽤 호평을 받았답니다. 사실, 메탈기어 시리즈가 본격화된 것은 패미컴 버전의 성공 때문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 패미컴 버전엔 코지마 히데오가 참여를 하지 않았었죠.
이후, 코지마 히데오는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로 진화시켰는데요. 3D 잠입 액션 어드벤처의 신기원을 연, 1998년 '메탈기어 솔리드 1'과, 2001년 '메탈기어 솔리드 2'로 세계적인 게임 개발자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답니다. 이때부터, 영화 같은 영상, 스토리 연출력으로 감독이라는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죠.
메탈기어 시리즈
스내쳐
폴리스너츠
사카구치 히로노부
(Hironobu Sakaguchi)
울티마 시리즈로 대표되는 서양식 RPG는 정서의 차이로 동양권에서는 그 인기가 상대적으로 덜했는데요. 일본에서는 이런 서양식 RPG게임에 감성적인 스토리를 담아내며 새로운 스타일의 일본식 RPG장르(JRPG)가 탄생했었답니다. 그런 일본식 RPG게임의 대표 시리즈가 바로 '드래곤퀘스트'와 '파이널판타지'인데요.
호리이 유지가 1986년 에닉스에서 '드래곤퀘스트'를 만들어냈다면,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이에 자극받아 1987년 스퀘어에서 '파이널판타지'를 만들어냈답니다. 파이널 판타지의 컨셉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스토리였고, 이를 위해 캐릭터 디자인에서부터 배경음악에까지 상당히 공을 들였었다고 해요.
파이널판타지는 이후에 감동이라는 컨셉 속에 내용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발전을 거듭했는데요. 이는 1997년 '파이널판타지7'에서 화룡점정을 찍게 되어, 3D그래픽과 화려한 동영상, 놀라운 세계관, 탄탄한 스토리 등 놀라운 게임성으로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답니다. 소니의 PS가 대세 콘솔로 자리를 잡게 되는 1등 공신이기도 했죠.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무려 1,7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파이널판타지:더 스피릿 위드인'의 참담한 실패 이후, 스퀘어를 퇴사하여, 미스트 워커라는 개발사를 차렸지만 예전의 명성만 못하다고 하네요.
파이널판타지 시리즈
로스트 오디세이
크로노 트리거
라스트 스토리
게이브 뉴웰
(Gabe Newell)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을 꼽으라면 단연 스팀(Steam)을 얘기할 수 있는데요. 2003년 처음 출시될 때만 해도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게이브 뉴웰의 선견지명에 모두 감탄하고 있으며, 사실상 PC게임 유통시장 독과점적인 지위에 올라있죠.
게이브 뉴웰은 얼핏 빌 게이츠와 유사한 행보를 걸어왔는데요. 하버드 중퇴 후 MS에 합류했었지만, 존 카맥의 '둠'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 현재 게임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일좌를 차지한 밸브 코퍼레이션을 창립(1996년)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1998년 전설의 시작이 되는 '하프라이프'를 세상에 내놓게 되죠.
하프라이프는 조작, 연출, 레벨 디자인 등에서 오늘날 현대 FPS의 표준이 되는 시스템을 정립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어요. 이후, 하프라이프에서 파생된 '카운터 스트라이크'로 지금까지도 FPS장르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답니다. 게이브 뉴웰은 게이머들과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으로도 유명한데요. 그의 천재성과 이런 열린 사고방식이 그의 성공에 큰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프라이프
카운터 스트라이크
팀 포트리스
포탈
레트트 4 데드
도타 2
타지리 사토시
(Satoshi Tajiri)
현재 지구촌을 들끓게 만들고 있는 포켓몬스터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일까요? 그는 바로 타지리 사토시인데요. 포켓몬스터의 명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실 같아요. 그는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증의 일종)을 딛고 일어선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게임 제작자랍니다.
곤충채집을 유난히 좋아했었던 타지리 사토시의 어린 시절 경험은 포켓몬스터 기획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해요. 그렇게 1996년 탄생한 '포켓몬스터 적. 녹'은 처음엔 기대와 달리 저조한 판매량 이었는데요. 닌텐도의 미디어 믹스 전략으로 반전의 계기가 만들어졌죠.
만화 연재, 애니메이션, 음식, 캐릭터 상품, 카드 등 전방위적인 프로모션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인 붐으로 이어졌답니다. 지금의 포켓몬스터는 게임을 넘어 하나의 사회문화 콘텐츠가 되었는데요. 타지리 사토시는 현재 개발 일선에서 물러나 게임 프리크의 사장으로서의 직무에 집중하고 있다고 하네요.
포켓몬스터 시리즈
스즈키 유
(Yu Suzuki)
오락실이 대부분 사라진 지금에도 여전히 그 의의를 가지고 있는 데는 체감형 아케이드 게임들의 덕이 큰데요. 스즈키 유는 바로 그 체감형 아케이드 게임의 아버지이자, 1993년 최초의 3D 격투게임인 '버추어 파이터'를 만들어낸 선구자였답니다.
'퐁'에 감명받아 게임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스즈키 유는 세가에 입사한 후, 1985년 세계 최초의 체감형 아케이드 게임인 '행온'을 내놓게 되는데요. 이어진 1986년 '아웃런', 1987년 '애프터버너'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오락실의 풍경 자체를 뒤바꿔 놓았답니다. 체감형 오락기기는 오락실의 주인공이 되었죠.
닌텐도가 미야모토 시게루를 위시해 가정용 게임 시장을 장악했다면, 세가는 스즈키 유를 위시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을 장악한 셈인데요. 세가는 가정용 콘솔 '드림캐스트'를 출시하며 반전을 노리게 되었고(90년대 후반 소니PS의 강세), 스즈키 유 인생의 반전도 시작되었답니다.
세가는 스즈키 유에게 무려 70억 엔이라는 전폭적인 개발비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가정용 콘솔 타이틀 '쉔무'(1999년)를 맡겼지만, 역사상 최악의 흥행실패와 함께 가정용 콘솔에서 철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는데요. 이후, 여전히 개발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한번 퇴색한 명성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답니다.
행온
스페이스 해리어
아웃런
애프터 버너
버추어 파이터
쉔무
나카 유지
(Yuji Naka)
80년대 중후반부터 닌텐도는 마리오를 앞세워 가정용 콘솔 시장에서 라이벌 세가를 따돌리고 한 걸음씩 앞서가기 시작했는데요. 이에 대한 세가의 대답이 바로 '소닉'이었죠. 나카 유지는 마리오를 능가할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의 선봉장이었답니다.
'슈퍼 마리오'로 정립된 횡스크롤 점프 액션게임의 정석에 스피드와 어드벤처 요소까지 가미되어 1991년 출시된 '소닉 더 헤지혹 1'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는데요. 소닉이 TV화면을 쌩쌩 달리는 모습은 저에게도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답니다. 당시 기존의 게임들과 그 궤를 달리하는 파격적인 속도감이었죠.
이후, 마리오vs소닉, 닌텐도 패미컴vs세가 메가드라이브의 라이벌 구도가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답니다. 나카 유지는 2000년에 최초의 성공한 콘솔용 온라인 게임으로 평가받는 '판타지 스타 온라인'을 제작하기도 했었는데요. 세가를 떠난 지금에도 소닉 관련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며 소닉의 아버지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죠.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판타지 스타 온라인
알렉세이 파지노프
(Alexey Pajitnov)
1984년 구소련의 과학 아카데미 소속의 29살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20세기 최고의 비디오 게임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퍼즐게임 '테트리스'를 탄생시켰답니다. (최고의 자리를 놓고 '슈퍼 마리오'와 각축)
테트리스는 가장 많이 이식된 게임과 가장 많은 아류작이 나온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는데요.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펜토미노'라는 퍼즐보드게임과 수족관에서 가자미와 넙치 등이 헤엄치는 모습 및 바닥에 내려앉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었다고 해요.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정작 개발자로서의 저작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었는데요. 저작권의 개념이 희미한 시기이기도 했고, 그가 구소련 정부 소속 신분이라는 점도 한몫했죠. 공중에 붕 떠있던 테트리스의 저작권은 1996년에야 그에게 되돌아왔지만, 이미 너무 늦어 실상 큰 돈을 만지진 못했다고 해요.
테트리스
이와타니 토루
(Toru Iwatani)
혹시, 영화 픽셀을(2015년)을 보셨나요?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는 아니지만, 입을 뻐끔거리는 거대한 노란색 괴물이 인상적인 영화인데요. 이 괴물의 이름은 '팩맨'으로 1980년 이와타니 토루에 의해 출시된 게임의 동명의 게임의 캐릭터랍니다.
이와타니 토루는 남성 게이머들의 전유물이었던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여성들과 커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고 했고, 남녀노소 대중적인 주제인 '먹는다'라는 컨셉으로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답니다. 그 와중에 먹다 남은 피자의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팩맨의 모습을 만들어냈죠.
팩맨은 코인을 넣고 하는 게임 중 가장 성공한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는데요. 폭력성이 배제된 귀여운 캐릭터를 가진 팩맨은 게임의 저변을 여성들에게까지도 넓히며 게임계의 역사를 바꿔 놓았답니다. 이후, '마리오 시리즈'와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게임이 되었죠.
팩맨
마르쿠스 페르손
(Markus Persson)
나올게 다 나오고 너무나 거대해졌으며 상업 논리로 흘러가는 게임계에서 더 이상의 천재가 설자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즈음, 2009년 '마인크래프트'로 인디 게임 개발자 마르쿠스 페르손이 혜성같이 등장했답니다.
어린 시절 레고를 좋아했던 마르쿠스 페르손은 높은 자유도를 갖추고 모험까지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는데, 자카리 바스가 오픈소스로 재출시한 '인피니마이너'에서 그 해답을 찾게 되었답니다. 마인크래프트는 이 인피니마이너의 소스를 활용하여 탄생을 하게 되었죠.
샌드박스(오픈월드)게임으로 가상의 공간에서 레고를 조립하듯 무한한 자유도를 갖춘 마인크래프트는 현재까지 무려 1억 685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답니다. 현재 마르쿠스 페르손은 마인크래프트에서 손을 떼고 새로운 게임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해요.
마인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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