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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모터쇼 컨셉트카는 어디로? 컨셉트카들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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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5:308,088 읽음

III 모터쇼의 꽃, 컨셉트카.
당신은 모터쇼를 가 봤는가? 아마도 차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적어도 한 번쯤은 다녀오셨을 것이고, 차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도 종종 방문하시는 축제이다. 한국에서만 연 60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시는 이 거대한 축제를 자동차 브랜드에서 무시할 순 없을 터, 자동차 브랜드들은 억대의 자금을 투자해 부스와 자동차들을 전시한다.

그중 백미는 단연 '컨셉트카'라 불리는 쇼카들인데, 오직 모터쇼를 위해 소수로만 제작이 되어 현실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를 아낌없이 접목해 제작한다. 자사의 브랜드 철학을 디자인으로 표현해 화려한 모습을 뽐내는 컨셉트카들은 자사의 부스에 이목을 끌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터쇼에서 반응이 좋으면 그대로 양산이 되는 경우도 있을 만큼 컨셉트카는 자동차 브랜드들의 미래이자 방향이다.

그렇다면 컨셉트카들은 모터쇼가 끝나면 어떻게 처리할까? 일부 컨셉트카들은 전용 창고에 보관을 하거나, 자사의 디자인 센터에서 전시를 해둔다. 그리고 가끔씩 행사에 출품해 눈도장을 찍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절차를 밟는 컨셉트카는 일부일 뿐, 브랜드조차도 행방을 모르는 경우도 있으며 심하면 폐차가 되는 경우도 있다.

1999년 출품된 현대의 FGV-II 컨셉트카는 엉뚱하게도 타이완에서 폐차 상태로 발견되었다. © 현대자동차, Flickr

한국은 이런 경우가 더욱 심하다. 80년대 '마이카 붐'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둔 한국 브랜드들은 90년대 초부터 컨셉트카를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미성숙했던 관리로 인해 놀랍게도 00년대 초반까지의 거의 모든 컨셉트카가 폐차 / 행방불명인 상태다. 그리고 이런 만행은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초, 한국 GM의 군산공장이 매각되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퇴직자가 발생했으며 공장에 있던 물건들도 폐기/매각 수순에 들어갔다. 그중엔 대우자동차 시절 컨셉트카를 포함한 수많은 기념비적 차량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고물덩어리가 될 뻔했던 이 차량들은 '홍순경' 군산공장 대외협력단장이 한국 GM 본사를 설득시켜 가까스로 폐기는 면하게 되었고, 결국 오랫동안 자사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던 모 대학교에 교육실습용으로 기증이 된다.

그리고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컨셉트카들은 결국 대학교 내의 야외 주차장에서 발견이 된다.

당시 컨셉트카 기증 기사가 나온 지 약 10개월 만이다, 결코 기증된 지 오래되진 않았던 시점이라었음에도 대부분 상태는 좋지 않았으며, 그 사이엔 부품 파손이 된 컨셉트카도 있었다. 그렇게 컨셉트카의 처참한 관리 상태를 알게 된 III CAR GO! 에디터들은 그곳의 상세 사진을 제보받아 한국 컨셉트카의 관리 상황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한땐 모터쇼를 빛냈던 컨셉트카가 지금은 방치 상태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 블로거 HMK님

III 대우 만티카. (1997 출품)
사진을 찍은 전 날에 폭우가 왔던 관계로 외부의 찌든 때는 다소 씻겨나간 상태였다. 1,2열 도어가 붙어있는 걸윙도어 방식으로 도어가 개폐되는 점이 특이한 이 컨셉트카는 마티즈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경형 컨셉트카이다. 대우 로고는 GM대우 로고로 어설프게 교체되었고, 앞 범퍼는 진흙으로 추측되는 더러운 것이 묻어 있다. 문은 제대로 닫아두지도 않았는데, 이마저도 왼쪽 문은 완전 떨어져 나간 상태다. 이것이 정녕 관리를 한 상태란 말인가?

레조 자체도 요즘엔 보기 귀해진 이 시점에서 타쿠마 컨셉트카가 발견된 것은 큰 기적이다. © 블로거 HMK님

III 대우 타쿠마. (1997 출품)
대우 레조는 선행 컨셉트카가 무려 3종이나 되는 차량이었는데, 그 컨셉트카 중 가장 오래된 차량인 타쿠마 컨셉트카도 여기서 볼 수 있었다. 비교적 외부 상태가 괜찮은 축에 속하는 차량이지만, 문을 고의적으로 막아둔 것인지 실리콘으로 덕지덕지 마감된 흔적이 눈에 보였다. 보통 실내외가 구현된 컨셉트카는 도어도 오픈이 되는 게 통상적인데, 영문은 모르겠지만 아마 군산공장 시절 때 막아두지 않았겠나 추측할 뿐이다.

대우의 야망을 담고 있던 조이스터에게 남은 것은 없다. © 블로거 HMK님

III 대우 조이스터. (1997 출품)
대우의 몇 안 되는 로드스터 형 컨셉트카, 조이스터도 방치되고 있었다. 모터쇼 때의 화려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더러운 테이프 자국과 너덜너덜하다 못해 삐져나온 하드톱 파츠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더군다나 본 컨셉트카는 실내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장기간 방치 시 지금보다 더욱 큰 피해를 입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본 차량의 문 잠금장치는 완전 도려져나간 상태였으며, 도어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개폐가 힘들어 보였다.

(본 컨셉트카에 대한 정보는 위 포스트에서 자세히 확인이 가능하다.)

과연 사람들이 모른다고 이 차의 존재가치도 없는 것일까? © 블로거 HMK님

III 대우 바다. (2001 출품)
본 차량은 대우차를 애호하시는 분도 잘 모르시는 컨셉트카다. 바로 대우차 인수 직전인 2001년에 만들어진 컨셉트카인 대우 바다다. 필자 개인적으론 대우 컨셉트카 중 가장 흥미를 느낀 컨셉트카인데, 드디어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실내가 미구현된 목업 모델로 보이던 이 컨셉트카는 사이드미러를 전부 도둑맞은 상태였다. 앞 플라스틱 몰드도 상태가 마냥 좋아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주차장 지붕이라도 있던 위 컨셉트카들과는 다르게 완전히 야외에 노출된 상태였다.

GM대우의 시작을 알린 이 컨셉트카는 GM대우와 함께 서서히 잊혀갔다. © 블로거 HMK님

III GM대우 스코프. (2003 출품)
GM대우가 출범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출품된 스코프 컨셉트카는 저 당시까지만 해도 계속 밀어주던 '3분할 그릴'을 헤드램프로 이어 전면 디자인에 적용한 모습이다. 본 차량은 나쁘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매입만 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매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던 차량이기도 하다. 반면, 저 컨셉트카와 같이 출품되었던 '유니버스' 컨셉트카는 여수의 한 공영주차장에 방치가 되어 있는 사진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G2X 전엔 스피드스터가 있었다. © 블로거 HMK님

III GM대우 스피드스터. (2003 출품)
금방이라도 달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 차량은 컨셉트카라기 보단 시제차? 혹은 프로토타입이라 보면 이해가 쉬울 차량이다. 왜냐하면 본 차량은 GM 산하의 '오펠' 브랜드의 창업 100주년을 기념해 생산된 '스피드스터'의 GM대우 버전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인천공항의 GM대우 라운지에서 전시가 되던 이 시제차는 KD 생산까지 염두에 두며 GM대우가 진지하게 출시를 저울질했던 차량이다. 뭐, 결국엔 타산성 문제로 출시는 무산되었고 군산공장 창고에서 보관되다 늦게 빛을 보게 되었다.

이외에도 한국에서 극소수만 남은 라세티 왜건, 누비라, 레조 생산 1호 차 등이 방치되고 있다. © 블로거 HMK님

이외에도 누비라, 레조 생산 1호자, 10KM 내구 테스트 차량, 윈스톰의 전신인 S3X 컨셉트카 (테일램프 분실.), 마티즈 아트카 같은 세상에 한 대뿐인 귀중한 차량들이 주차장 외곽에 방치되고 있다. 이 차들 역시 테일램프 파손, 스페어 바퀴 장착 등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GM도 이 차량들을 기증함으로써 관리할 이유가 없어졌다. 대학교 측에서도 교육실습용으로 기증 받은 차량들이라 이 차량들을 관리할 이유도 적다. 하지만 이 차량들은 단순히 대학생들의 실습용 차량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결코 분해되며 사라지는 존재가 되면 안된다. 어느 누구도 이 차량의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머지않아 이 차량들은 영영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한국GM 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브랜드 전반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소외된 과거들이 생겨 사라지는 불상사가 생겼다. © YTN, 보배드림 '세피아 컨버터블'님

III 한국의 자동차 기업들의 무관심, 그리고 악순환.
이렇게 한국에서 대량의 컨셉트카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때는 2014년, 한 자동차 커뮤니티에 '대전 엑스포의 한 건물에 컨셉트카들이 방치되어 있다'라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방치되어 있던 차량들은 다름 아닌 당시 기아가 '자동차관'에 전시했던 컨셉트카들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여러 네티즌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여 방송까지 나갈 정도로 공론화가 되었지만, 결국 대전 엑스포와 기아차. 그 누구도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결국 '스포티지 랠리카'를 제외한 나머지 차량들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저 폐차되었다는 증언만 있을 뿐이다.

이 사건을 이후로 많은 네티즌들이 분개했고, 한편으론 비웃기도 했다. 관리만 잘 했으면 얼마든지 지금도 살아있지 않았겠냐고, 자신들이 만든 차도 보존을 못 하는 회사가 무슨 미래가 있겠냐고. 이렇게 한국에선 자사의 컨셉트카를 관리하기는 커녕 애물단지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우리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없으면 그들의,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흐릿한 기억 너머로 넘어갈 것이다. © 현대, 동아일보

요즈음 현대, 기아를 비롯한 한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이른바 '역사 발굴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다른 국가에 비해선 턱 없이 짧은 기간에 발전을 이루었던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기에 자사를 대표할 '헤리티지'랄 게 딱히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현대에선 포니 쿠페를 모티브로 계획한 '45'를 양산하기로 결정한 상태이며, 기아 역시 늦게나마 자사의 간판 올드카들을 적극적으로...? 매입/복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 등져 소외되어버린 그들의 또 다른 '역사'가 있다. 그것들이 바로 예전의 컨셉트카들 인것이다. 비록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젠 대중들의 기억에도 서서히 잊혀가는 차량들이지만, 그런 역사도 결국엔 자신들의 귀중한 역사 중 한 부분이지 않은가? 한때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하며 빚은 찬란한 역사들을 이젠 그들이 스스로 밟고 있다.

불미스러운 일로 소실된 예전 컨셉트카를 근대에 다시 제작한 BMW, 무관심 속에 폐차되고 있는 한국의 컨셉트카. © BMW, 보배드림 '세피아 컨버터블'님

III 컨셉트카들이 한국에서 빛을 보는 날.
컨셉트카야 말로 진정한 브랜드의 유산이다. 양산화의 압박 없이 자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마구 집어넣은 예술 작품이 아닌가? 어쩌면 일관된 아이덴티티랄 것 없이 트렌드만 뒤쫓는 한국 브랜드들이 그래서 컨셉트카들을 푸대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헛된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한국 브랜드들은 자사의 소중한 역사를 보존해야 된다. 적어도 자신들의 역사를 보존하려 하는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는가. 땅 산다고 10조를 때려부은 대기업들이 컨셉트카 하나 보관하는 게 엄청난 부담일까? 결코 이런 자동차 문화의 발자취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독자분들을 포함한 다른 분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하다. 단지 이 글을 읽어주시고 컨셉트카에 대한 중요성만 느껴주신다면 자동차 브랜드들도 마냥 방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한국에서도 오래된 컨셉트카들이 빛을 볼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III CAR GO! 작성: 김동진 에디터.
cargostud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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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III CAR GO!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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