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더니...4년간 128조 쓰고도 출산율 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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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3.03. 오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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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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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15~49세 여성 한 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수)이다. 역대 최저이자,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기록된 적 없는 수치다. 출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 적은 ‘인구 데드 크로스’도 사상 처음 발생했다.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대한민국이 자연 소멸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이 충격적인 숫자를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야당 시절과 임기 초까지만 해도 “반드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던 문 대통령과 여당의 침묵을 두고 실망감을 드러내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야당시절엔 “박근혜 저출산 대책은 틀렸다” 비판

2012년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청주 흥덕구의 한 산부인과병원을 방문해 신생아를 안아주고 있는 모습. /조선DB

야당 시절 문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에도 박근혜 정권의 저출산 문제 해결 의지를 비판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저출산 대책은 틀렸다” “좋은 일자리, 여성 경제 참여, 주거 대책을 마련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강조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비판한 페이스북 게시물

집권 초까지도 문 대통령은 저출산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며 문제를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2017년 4월 대선 당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은 문 대통령의 저출산 관련 공약을 설명하면서 “저출산 문제는 꼭 해결하겠다”며 이 사안이 “일종의 국가 존립과 민족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12월 2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첫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 가면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접어들고, 2031년이면 대한민국 총인구가 줄게 됩니다. 이제는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경제가 어렵다는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심각한 인구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심각한 인구위기 상황을 해결할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금이며, 골든타임을 살려내는 게 위원회가 할 일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절박성을 대통령으로서 잘 인식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위원회도 존재감을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대통령의 참석도, 회의를 자주 하는 것도, 시민사회 등 외부와의 소통을 긴밀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과 달리 저출산은 현 정부 들어 악화일로를 걸었다. 합계출산율은 문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 1.05명에서 해마다 줄어 2018년 0.98명, 2019년 0.92명에 이어 지난해 0.84명까지 떨어졌다.

출생아수도 2017년 35만8000명에서 2018년 32만7000명, 2019년 30만3000명 순으로 감소했다. 지난해엔 전년 대비 10% 급감한 27만2400명을 기록하면서 30만명 벽마저 힘없이 무너졌다.


급감하는 출생아 수와 함께 저출산에 대한 문 대통령의 관심도 외견상으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모아놓은 청와대 홈페이지 ‘대통령의 말과 글’에서 검색해 보면,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공식석상에서 ‘저출산’을 언급한 것은 24번이었는데, 이 중 대부분은 정부가 추진하는 다른 정책의 명분으로 저출산을 내세울 때였다.

가령 문 대통령은 2018년 7월 5일 행복주택을 홍보하기 위해 서울 구로구의 한 신혼주택을 방문한 자리에서 “오늘 새로 발표하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그대로 하면 2022년에는 지원이 필요한 모든 신혼부부에게 있는 주거문제가 다 해결된다”며 “주거문제의 해결이 저출산 극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자신이 의장으로 있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것도 2017년 12월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28조 썼는데...저출산 포기했나”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이후 4년간 저출산 대책에 128조원, 연평균 32조원을 썼다. 올해는 작년보다 6조원 늘어난 46조원을 쓴다. 그런데도 출생아수가 곤두박질치자 온라인에서는 그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오가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정책으로 ‘취직-결혼-내집마련’이라는 젊은이들 인생 과정 자체를 불가능하게 막아버렸다” “현 정부의 가장 큰 실정은 저출산 방치” 같은 비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미 집권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그 이후에 대해선 관심을 안 갖는 것 같다” “타노스는 왜 그렇게 고생을 했을까. 문재인 대통령을 찍어내서 각국에 뿌려주면 쉽게 인구조절이 되는 걸” 같은 글도 올라왔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저출산 관련 글 목록

유승민 전 의원은 25일 “인구절벽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년간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등 실패한 정책에 매달렸을 뿐, 정작 미래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저출산 문제는 포기해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저출산의 근원적 원인은 “주택과 일자리 뿐 아니라 보육, 교육, 노후에 대해 불안하기만 하고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명진 기자 cccv@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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