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알몸상태 성폭행 피해자 재차 성폭행한 가해자에 무죄선고는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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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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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직전 성폭행으로 심리적 물리적 반항이 곤란한 상태” / “합리적 근거 없이 피해자 진술 신빙성 배척한 1심은 잘못”

대법원 전경.

6일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준강간)으로 재판에 넘겨진 육군하사 김모씨(24)의 상고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지난 2014년 1월 김모씨는 군에 입대하기 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여고생 A양와 지인의 집에서 술을 마셨다. 당시 자리에는 최모씨 등 지인 2명이 더 있었고 시간은 흘러 그들은 모두 만취 상태가 됐다. 우선 최모씨가 만취해 화장실에 들어간 A양을 성폭행했다.

이후 최씨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김씨는 성폭행당한 후 알몸 상태로 있던 A양을 재차 성폭행했다.

이후 김씨는 군에 부사관으로 입대했고 준강간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렸다. 1심 재판부는 “A양이 성폭행 직전과 도중의 상황은 명확히 기억하면서도 ‘간음이 어떻게 시작됐는지의 상황’만 유독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고등군사법원 역시 “김씨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간음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피해자가 술을 먹고 구토하는 등 상당히 취한 상태였고 최씨에게 성폭행당한 직후인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김씨의 간음행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상황을 일부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피해자 진술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가 모순된다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합의에 따른 성관계였고 피해자가 최씨에게 성폭행당한 것을 몰랐다고 진술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고 직전 성폭행으로 심리적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였다고 인정된다”며 “또 당시 집 구조상 거실과 화장실 위치가 그리 멀지 않은 점 등 정황으로 볼 때 김씨는 최씨가 피해자를 간음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김씨는 검찰에 ‘용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들어갔다’고 진술했는데 김씨가 화장실에 알몸으로 있는 피해자에게 괜찮은지 물어본 후 호감이 있다고 하면서도 성행위를 해도 되는지 동의를 구했다는 것은 진술 내용 자체로도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합리적 근거 없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한 원심은 잘못”이라며 꼬집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괜찮다’는 말을 하급심 판결처럼 해석해선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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