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 찍어 文 막자” vs “洪 찍어 존재 과시”…갈림길 선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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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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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왼쪽),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지난 28일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TV토론을 앞두고 사진 촬영을 위해 자세를 잡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① “안철수에게 투표해 문재인정부 등장을 막자.”
② “홍준표에게 투표해 보수층의 존재감을 보여주자.”

19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8일 앞둔 30일 현재 보수 유권자 표심은 ①과 ②의 갈림길에 서 있다. ①은 “문재인이 당선되면 안 되니 안철수를 밀어주자”는 것이고 ②는 “어차피 문재인이 될 것 같으니 홍준표를 밀어줘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①이 대세였던 보수층 여론에 ②가 차츰 자리를 넓혀가는 모양새다.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표심이 이렇게 출렁인 적은 없었다. 이회창→이명박→박근혜로 이어져온 보수 진영 대선후보는 늘 확고했고, 이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별 다른 고민 없이 투표장에 가곤 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보수층이 “누구를 찍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첫 번째 대선이 됐다.

지난 주말 국민일보 취재진이 만난 60, 70대 유권자 상당수는 “우리도 SNS를 한다”는 말부터 꺼냈다. 선거에 대해 카카오톡 등으로 많은 의견을 주고받는데, 요즘 돌아다니는 글들을 보면 “안철수 지지세와 홍준표 지지세가 다투는 양상”이라거나 “안철수 지지에서 홍준표 지지로 전환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어느 쪽이든 이들이 고민 중임은 분명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자기 치러지는 조기 대선인 까닭에 보수 진영은 뚜렷한 후보 없이 선거를 마주했다. 박근혜정부 지지기반이 와해되면서 ‘콘크리트 지지층’에 속했던 보수 유권자도 길을 잃었다. 지지율 1위로 ‘대세론’을 굳혀가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바라보며 이들은 대안을 찾아 나섰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다. 황 대행이 받았던 10% 안팎의 지지율, 반 전 총장에게 갔던 20대% 중반의 지지율은 보수 표심이 상당히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몇 주 못 가 스스로 포기했고, 황 대행은 막판까지 고심하다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다시 방향을 잃은 보수층은 새롭게 탐색을 시작했다. 문재인 후보 1강 구도가 지속되던 선거판이 흔들린 것은 국민의당 경선 직후였다. 안철수 후보가 경선에서 압승하며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그의 지지율이 치솟았다. 10%대에 머물던 게 30%대로 수직상승했고, 급기야 문재인 후보를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그렇다고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크게 빠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 출렁임은 관망하던 부동층이 안 후보에게 대거 쏠린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그 부동층의 다수는 길을 잃었던 보수표였다. “왠지 문재인 싫다”는 여론, “문재인은 안 된다”는 시선이 모여 “문재인을 막아낼 수 있는 후보”로 찾아낸 것이 안철수였다.

2012년 안철수의 신선함이 몰고 왔던 ‘안풍(安風)’은 이제 문재인이 싫어 안철수를 지지하는 ‘안풍’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바람은 2단계 과정을 거쳐 잦아들었다. 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는 오랜 경험을 가진 정당에서 볼 수 있는 ‘선거 기술’의 결정판이었다. 안철수 후보를 겨냥해 각종 검증·비판 이슈를 만들어내며 불과 1~2주 만에 상승세를 차단했다.

이어 TV토론이 잇따라 열렸다. 안철수 후보의 언변이 그리 탁월하지 않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은 확인했다. ‘말싸움 토론’ ‘순발력 경쟁’에서 그는 점수를 잃고 TV토론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TV토론 이후 보수층 유권자의 SNS에 나돌기 시작한 표현이 “우리의 존재감을 보여주자”는 말이다. “문재인을 막아야 한다”던 주장이 “막지 못한다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당선 가능성이 낮지만 홍준표를 찍자”는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C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30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홍준표 후보는 안철수 후보를 오차범위 안으로 추격했다. 문재인 42.6%, 안철수 20.9%, 홍준표 16.7%란 수치는 ②로 기운 보수표가 많아졌음을 뜻한다. 특히 대구·경북에서 안 후보는 13.4%포인트 하락했고 홍 후보는 6.2%포인트 상승했다.

이번에도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주보다 1.8%포인트 하락했다. 문재인 지지율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버금가는 ‘콘크리트’가 돼 있다. 절대로 많이 떨어지지 않지만, 결코 많이 높아지지도 않는다. 결국 문재인의 당락은 보수표에 달린 상황이 됐다. 문재인을 막을 것이냐, 존재감을 보일 것이냐. 보수층의 고민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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