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미군 미사일이 지붕 뚫고 들어왔는데…‘배상금 2억’ 날린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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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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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갑자기 지붕을 뚫고 '미사일'이 떨어져 내려 바닥에 박혔습니다. 건물 주인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실제로 지난 2015년 말 미군 훈련장에서 쏜 훈련용 '토우(TOW)' 미사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포천 인근 기도원의 건물 지붕을 뚫고 들어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법원이 선고한 배상금이 500만 원에 불과했는데요, 왜 이런 금액이 나왔는지 살펴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서울 북쪽엔 미군 시설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경기 포천시 소재 '캠프 로드리게스(영평 훈련장)'도 그중 하나였는데요. 주한미군 2사단은 2015년 12월 30일, 이 훈련장에서 대전차 토우 미사일 사격훈련을 진행하던 중 장치 결함으로 미사일을 오발했습니다.

미국이 개발한 토우 미사일은 전차를 파괴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유도 미사일로, 약 1m 남짓한 길이에 약 4km의 사거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사격장에서 쏘아진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 가깝게 날아 1958년에 지어진 1층짜리 기도실 건물 지붕에 떨어졌고, 미사일은 지붕과 내실 벽을 뚫고 들어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다만, 훈련용 미사일이었기에 다행히 폭발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엔 이런 경우를 대비해 SOFA(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이른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및 민사특별법에 관련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미군 구성원이 직무수행 중 제3자에게 입힌 손해는 우리나라 정부가 국가배상을 해주도록 하고 있는 겁니다.

기도실 건물의 지분을 공동 소유했던 6개 교회는 사고 사실을 알고 2016년 서울지구배상심의회에 오발사고로 인한 배상액 약 7억 2440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심의회는 오발사고가 주한미군 과실로 발생했단 점을 인정하면서도, 기도원 등의 수리비로 194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교회들은 즉시 국가를 상대로 2억 44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습니다. 양측이 생각한 배상액의 차이가 너무 컸던 겁니다.

교회들은 재판에서 "이 사고로 오발포탄이 기도실 지붕에 떨어졌을 뿐 아니라 파편이 기도실 옆 교회 건물로 튀었고, 교회의 지붕과 창문이 파손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가 이를 보상해주지 않고 파손된 부분 수리도 해주지 않는 사이 기도실과 교회 건물이 침수돼 건물이 완전히 못쓰게 된 이상 건물 2채의 모든 마감을 철거하고 재시공하는 공사비 상당을 배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단 하나, 손해액의 범위였습니다. 주한미군의 과실로 오발사고가 발생한 것이기에 미군이 직무수행 중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였기에, 대한민국 정부가 교회에 배상책임이 있는 것은 명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교회들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22민사부는 지난달 중순 "피고가 원고에게 약 5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사실상 국가의 손을 들어줬고, 이 판결은 확정됐습니다.

우선 법원은 교회건물 지붕 파손이 미사일 탓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오랜 기간 관리되지 않아서거나 이번 오발사고가 아닌 다른 사고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법원은 "교회 건물이 파손된 건 맞지만 오발사고로 인한 것인지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오히려 해당 토우 미사일은 훈련용이라 폭발하지 않고, 포탄이 직접 떨어진 기도실 벽과 바닥을 살펴보면 파편의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워 포탄 파편이 교회 지붕으로 떨어져 교회 지붕을 파손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하며 '기도실'과 '교회 건물' 가운데 교회 건물에 대한 손해배상 부분을 배척했습니다.

법원의 판단을 가른 건 한 산행객이 올린 블로그의 게시물이었습니다.

오발사고 발생 4년 전인 2011년 기도원을 지나간 등산객이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선 해당 건물이 '폐허가 된 기도원'이라고 표현돼 있었습니다. 이 등산객은 교회건물 문 앞에 놓인 큰 돌을 치우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설교대가 허물어져 있고 시계가 멈춰져 있었다'며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까지 올렸습니다.

남은 건 '기도실' 건물에 대한 보수비의 범위였습니다. 양 측은 관련 감정만 두 차례 진행하며 치열하게 다퉜습니다. 2017년 1차 감정에서는 기도실 건물의 모든 마감을 철거하고 재시공할 경우 공사비 1억2000여만 원, 2019년 2차 감정에서는 기도실 건물 지붕 중 파손된 부분과 포탄이 직접 떨어진 방의 벽을 수리하는 데 493만 원이 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국 법원은 기도실 건물 '전체'가 오발사고로 인해 파손됐단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기도실 건물은 사고 당시 건축 57년이 경과된 점, 사고 당시 보도에서 '폐 기도원'으로 보도됐고 2007년 이후 상하수도 사용내역이 전혀 없는 점이나 오발사고가 2015년에 발생했음에도 원고들이 2016년 4월에야 사고 발생사실을 알게 될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기도원은 관리되고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2011년 작성된 블로그 게시물에서 보듯 기도원이 오랜 기간 방치됐고, 법원의 현장검증 결과 포탄이 직접 떨어진 지붕과 구멍이 난 벽을 제외하곤 자연적 훼손을 넘어 오발사고로 인한 파손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2차 감정 결과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오발사고로 파손된 기도실 건물의 지붕 부분과 방 벽을 보수하는 데 493만 원이 드니, 이 금액만 원고들에게 배상하라고 판단했습니다. 양측은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았고,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백인성 기자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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