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칼럼

[칼럼] 옳았던 비전, 그르친 실천. 로버 그룹의 흥망성쇠 -3부-

CAR GO STUDIOS님의 프로필 사진

CAR GO STUDIOS

공식

2020.11.28. 23:40695 읽음

※본 칼럼은 시리즈로 구성된 콘텐츠입니다.
읽기에 앞서 이전 내용을 다룬 칼럼을 먼저 읽으시길 권합니다

프롤로그

1부


2부

III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 휘하의 로버 그룹

1988년 초, 영국 정부에서는 로버 그룹을 최종적으로 완전히 민영화하였다. 1986년부터 로버 그룹을 맡은 그레이엄 데이가 이를 계승하였고, 회사의 운영 방침도 고스란히 계승했다.

본래 정부에서는 GM에 로버 그룹을 매각하려고 했으나, 당시 노동당 의원들을 포함한 영국 국민들은 랜드로버 같은 자국 브랜드들이 외국 자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렇게 로버 그룹은 그레이엄 데이가 운영하던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 휘하의 민영기업이 되었다.

여태 해리어 전투기와 각종 여행기를 만들던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가 이제는 로버 승용차와 랜드로버 SUV도 만들어 팔기 시작하던 샘이다.
 
로버 그룹 브랜드 차트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의 자회사로서, 로버 그룹은 이전처럼 고수익성의 고급화 제품들을 중점으로 개발하였다. 여기에 혼다와의 기술제휴도 훨씬 밀접하게 추진하여 로버 200 시리즈의 세대교체, 유럽 특화형 중형차 합작 프로젝트 같은 신차들도 합자 개발하였다.

덕분에 협력 파트너인 혼다에서는 보다 세부적인 개발 단계까지 로버 그룹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로버 그룹이 신차를 개발하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유럽 특화형 신차를 만들기 위한 노하우를 배워갈 수 있었다.

랜드로버와 미니는 기존 라인업을 고급화하여 수익성을 개선해 나갔고, MG는 오스틴 로버 그룹 시절에 물려받은 메트로, 마에스트로, 몬테고 라인업을 유지하되 이를 대신하고자 MG B를 고급화한 부활 버전인 MG RV8 같은 고수익성 신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메트로, 마에스트로, 몬테고의 오스틴 계열 라인업은 브랜드 없이 모델명만으로 병행 판매했다.
 

1990년식 미니 쿠퍼. 단순한 경제형 경차가 아닌 영원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전환하는 신호탄의 역할을 맡았다
또한 고수익성의 고급화 제품을 위해, 로버 그룹에서는 자사가 채울 수 있는 모든 틈새시장을 모두 메꾼다는 전략도 준비하였다.

이에 따라 설립된 틈새 시장용 라인업 전문 부서가 로버 스페셜 프로덕트(Rover Special Products)였다. 로버 스페셜 프로덕트에서는 각기 각색의 틈새 시장용 제품 기획들을 준비한 뒤, 미니 카브리올레같이 유망한 기획들을 추려내어 다른 기업들에게 개발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1990년 3월에 정식 출범한 로버 스페셜 프로덕트를 통해, 1960년대 자동차 경기에서 활약한 고성능 모델인 미니 쿠퍼가 그 아버지였던 존 쿠퍼의 손길을 타고 1990년에 부활했다. MG 역시 영국의 디자인 전문 업체 MGA 디벨롭먼트와 연을 맺어 차세대 미드십 로드스터를 개발비 부담 없이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 내 사람들이 하청 내지 외주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로버 스페셜 프로덕트를 곱게만 보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싼값에 수익성이 높은 신차들을 출시할 수 있는 유연성은 경영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로버 200 시리즈. 로버 그룹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차종이자, 혼다와의 기술제휴가 진정으로 절정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세단은 400 시리즈로 독립했다

 이 시기 최고의 업적은 2세대 로버 200 시리즈(코드명 R8), 그리고 랜드로버 디스커버리가 있었다. 2세대 로버 200 시리즈는 1989년에 출시되었을 당시, 고급화 정책으로 비싸진 가격에도 각종 디테일에 신경을 쓴  세련되고 고급진 첫인상과 품질관리로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는 평을 받았다.

여기에 최저가 트림에 들어가는 1.4L 로버 K-시리즈 엔진은 경쟁차들의 1.6L 엔진과 동등하거나 간혹 뛰어넘기도 하는 스펙을 자랑했으며, 상급 사양에 들어가는 1.6L 혼다 D-시리즈 엔진도 나름 고성능으로 동급 경쟁차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었다.

핸들링과 코너링 성능도 매우 뛰어났다. 로버 그룹에서는 신형 200 시리즈를 위하여 혼다로부터 자문단 40여 명과 로봇 공정 시설들을 도입할 정도로 품질관리에도 신경을 썼으며, 그 상품성을 인정받아 영국 내수에서는 1991년에 연간 판매량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잘 팔렸다.
 
신형 로버 200은 해외에서도 나름대로의 수출 물량을 유치했다. 특히 직접 일본차를 가져다 팔기에는 눈치가 보이던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일본차다운 고품질을 영국적인 디자인과 함께 맛볼 수 있다는 이유로 꾸준히 사 주었다.

여기에 1992년 이후로 영국 파운드화의 환율이 유리해져서 수출 시장에서의 수익폭이 커졌다. 로버 그룹에서도 1990년에 영국에서 선호하는 4도어 세단 모델로 로버 400 시리즈를 추가하고, 1991년에는 3도어 해치백과 고성능 모델 GTi를 출시했다.

나아가 틈새 시장용의 컨버터블, 쿠페, 왜건도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매년 하나씩 출시해 시장의 관심을 이어가고자 했다. 또한 이때는 과거의 고질병이었던 노사 관계가 원만해진 시기이기도 했다. 이렇게 R8계 로버 200/400 시리즈는 로버 그룹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가 되었고, 영국의 자동차 열성가들이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 시절을 로버 그룹 최고의 전성기로서 그리워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3도어 모델이 먼저 공개된 뒤 5도어 모델이 라인업에 합류했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도 프리미엄 SUV로 자리 잡은 레인지로버, 그리고 순수 오프로더인 디펜더 사이의 중간급 라인업으로서 흥행가도를 달렸다.

같은 시기에 동급 SUV로 판매되던 미쓰비시 파제로, 닛산 패트롤, 이스즈 빅혼에 비해 디스커버리는 레인지로버 못지않게 세련된 첫인상을 뽐냈으며,

인테리어 역시 탈부착형 가방 형태의 센터 콘솔 수납장, 스티어링 휠의 선글라스 홀더 같은 실용적인 디테일들을 가미해 "라이프스타일 액세서리"의 역할에 집중했다.

여기에 레인지로버를 토대로 만든 덕에 레인지로버에도 들어가는 로버 V8 엔진이 들어가는 등, 플랫폼 공용화의 혜택을 본 부분도 있었다. 덕분에 디스커버리는 영국의 권위 있는 디자인 어워드인 "브리티시 디자인 어워드"까지 수상했다.

간판급 기함 SUV인 레인지로버 역시 고급화가 이루어져 지금도 프리미엄 SUV의 대명사로서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지나서 랜드로버에서는 로버 스페셜 프로덕트와 손을 잡고 엔트리급의 승용차 기반 콤팩트 SUV도 준비했다. 이후 이 프로젝트는 BMW 휘하로 넘어간 뒤 1997년에 랜드로버 프리랜더로 출시되었으며, 2002년까지 유럽 최고의 연간 베스트셀링 콤팩트 SUV로 이름을 올리는 성과를 올렸다.

판매량에 목을 매기보다는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하나 팔아서 제대로 돈과 명성을 버는,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가 추구하던 고급화 전략이 장기적으로는 옳았던 샘이다.

이 시기의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도 차세대 레인지로버에 개발비를 많이 할당해 주었을 정도로 고급화 전략의 성공을 인지하고 있었다.
 
로버 600 시리즈. 혼다 아스코트 이노바의 스포티하고 샤프한 디자인과 구분되는, 크롬 그릴을 포함시킨 부드럽고 정숙한 디자인 테마를 적용했다
하지만 이때도 엄연히 그림자가 존재했다. 이번에는 혼다와의 기술제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로버 그룹의 자체 역량을 평가절하하고 혼다에 너무 의존하는 개발 방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게다가 로버 200의 형제차인 혼다 콘체르토가 기대 이하의 실적을 보인 이후, 혼다는 가능한 한 유럽에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기 합작부터는 로버 그룹에게 불리한 조건이 주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 합자 개발한 유럽 공략형 중형차 프로젝트는 혼다가 개발을 주도하여 로버 그룹은 외관만 디자인, 혼다제 가솔린 엔진만 채용, 미국 수출 금지 같은 조건들이 주어졌다.

1991년부터는 로버 200 시리즈의 후속 차종이 될 차기 준중형차도 합자 개발했지만, 실질적인 개발 형태는 혼다가 모든 것을 주도하여 먼저 완성 짓고 로버 그룹이 이를 받아다가 수정하는 형태가 되었다.
 
2세대 로버 400 시리즈. 유럽시장용 혼다 시빅을 토대로 만든 로버 그룹과 혼다의 마지막 합작 차종이다
전자의 결과물인 로버 600 시리즈는 형제차인 혼다 어코드(일본 내수용의 혼다 아스코트 이노바와 동일 차종이다)와 충분히 차별화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었던 데다가 1994년 "디자인 카운슬 어워드"를 수상하여 디자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혼다가 직접 디자인한 인테리어 디자인도 로버 그룹에서 배운 디자인 방법을 잘 익혀 실용적이면서도 좋은 첫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다.

반면, 후자의 결과물인 2세대 로버 400 시리즈(코드명 HHR)는 로버 그룹에서 바라는 바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을 정도로 로버 그룹이 감당해야 하는 제약이 심했다.

혼다와 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차세대 로버 400을 개발할 당시 개발진들은 거의 하나 마나 한 신차 프로젝트를 거둬들이자고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 측을 찾아갔으나, 이들은 혼다와 협업하지 않으면 회사를 폐쇄하겠다고 반쯤 협박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로버 메트로. 효율적으로 잘 끓인 양질의 사골국이자,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가 로버 그룹에 얼마나 인색했는가를 보여주는 자화상이었다

혼다와의 기술제휴 없이 로버 그룹에서 자체 개발하는 프로젝트들도 자금난에 시달려 중간에 타협을 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1990년에 출시된 로버 메트로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는 로버 그룹 초반에 취소된 AR6 프로젝트의 대안으로서, 출시 10년차를 앞둔 해치백인 오스틴 메트로를 페이스리프트하여 로버 엠블럼을 덧붙인 차종이었다. 로버 K-시리즈 엔진을 얹고 서스펜션 세팅과 인테리어도 업데이트하는 등으로 양질의 사골국을 끓이기는 했지만, 한 차종을 10년 넘게 사골국을 끓이는 상황이라 경쟁력에서 한계가 있을 것임을 개발진들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개발진들이 같은 플랫폼에 새 외양을 씌운 대안 프로젝트 R6X를 준비했지만, 경영진들은 로버 메트로와 중복투자로 취급하여 개발진들이 R6X를 통과시키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이 R6X는 그나마 로버 메트로의 후속 차종으로 개발하는 방침을 제시해 통과되었지만, 로버 메트로가 기대보다 꾸준히 잘 팔릴더러 R6X 자체도 개발진들이 바라지 않던 수정사항들이 덕지덕지 덧붙여지는 바람에 의욕을 상실, 결국에는 개발이 흐지부지되었다.
 

로버 800 시리즈 페이스리프트. 미국 공략형으로 개발했던 쿠페 버전도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통해 처음 데뷔했다, 우측 차량은 로버 p5이다
기함인 로버 800 시리즈도 같은 문제에 시달렸다. 1986년에 출시된 로버 800 시리즈는 R17이라는 코드명으로 개발한 자체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1991년에 출시했는데,

완전 신차가 나와야 하는 시점에서 앞뒤 도어를 유지하는 페이스리프트로 때워야 한다는 점을 개발진들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로버 800의 하체에 새 실내외 디자인을 씌운 R16 프로젝트를 대안으로 준비했다. 개발이 진행 중이었던 로버 600 시리즈보다도 유려한 유기적인 보디 스타일을 적용하여,

1980년대 중순의 각진 도어를 유지한 R17보다 디자인 변화가 자연스럽고 출시 시한이었던 1990년대 초반과 잘 섞여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경영진들은 R16 대신 R17을 차세대 기함의 미래로 선택했다.

R17의 최종 결과물인 부분변경 로버 800 시리즈는 왕년의 고급차 이미지를 되살려 줄 크롬 그릴 덕분에 반응이 좋았지만, 1999년까지 수명이 연장되는 동안 페이스리프트라는 한계 때문에 경쟁력을 빠르게 상실했다.
 
로버 K-시리즈 엔진의 1.6L 및 1.8L 버전도 돈 문제에 시달렸다. 제한된 예산안 내로 다양한 배기량을 커버하려는 궁여지책으로 엔진 블록 사이즈를 유지하면서 실린더 용량을 키웠는데, 이것이 큰 문제를 일으켰다.

1.4L 짜리로 먼저 준비되어 작을 수밖에 없었던 엔진 블록 내에서 더 큰 배기량을 구현하느라 헤드 가스켓이 엔진 냉각수로부터 버텨야 하는 압력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이 엔진이 1995년부터 주력 모델들에 적용되기 시작하자 10만 km도 안 뛴 차들의 헤드 가스켓이 터지는 결함이 속출했고,

로버 그룹이 그동안 쌓아온 고객만족도를 죄다 망가뜨렸다.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가 고객만족도를 우선 가치로 두고도 이에 걸맞은 투자에 인색해했던 결과였다.
 
로버 800
바깥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의 본업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1980년대 내내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에서는 항공기 리스 사업으로 꾸준히 돈을 벌어 왔고, 이는 조금이나마 로버 그룹의 자금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1991년과 1992년 사이에 항공업계가 불황에 시달리자 항공사에서는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리스한 항공기들을 하나둘씩 반납했다.

 여기에 비행기를 리스하려는 항공사들의 수요도 메말라버렸다. 그러다 보니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에서는 로버 그룹에 투자하고 싶어지더라도 투자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는 로버 그룹을 매각할 기회를 찾다가 1994년 1월, 독일의 프리미엄 자동차 기업 BMW에 로버 그룹을 매각하기도 결정한다.

 -4부에서 계속-

III 포스트 더보기


 

II 투고, DENNIS K's Design Storehouse K. 강동우님
편집, CAR GO STUDIOS 문상원 편집장
cargostudio@naver.com


본 포스트에 작성된 글의 저작권은 카고 스튜디오와 문상원 님, 강동우 님에게 있습니다. 허가 없는 무단 도용 및 퍼가기를 금합니다.
2020.11.28 III CAR GO STUDIOS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