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남과 비교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라"는 심리학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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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이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수영 강습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차에 아들을 태우고 수영장에 데려다줬다. 딱히 할 일이 없어, 통유리 너머로 수영장 안을 바라다보았다. 초등학생들이 참 열심히 수영을 한다 싶었다. 

문득 `지고 싶지 않은 건 인간의 본성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뒤따라오는 아이의 추월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초등학생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인을 나누는 로프를 잡고 몸을 당겨 조금이라도 앞선 아이를 따라잡으려는 한 어린이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조금 더 잘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조금 더 못하는 누군가도 있기 마련. 어떤 아이는 눈에 띌 정도로 잘하지만 어떤 아이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사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그게 세상사 이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한 여성의 한숨이 들려왔다. 내가 서 있는 통유리 주변으로 아이들의 부모인 듯한 사람들이 여럿 서 있었다. 내 바로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여성 두 명 중 한 명의 한숨 소리였다. "우리 아이보다 늦게 수영을 시작한 아이가 훨씬 빠르네. 아이가 상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선수가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니 마음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

인생이란 게 그렇다. 나보다 늦게 시작하고 나보다 뒤에 있는 줄 알았던 이가 어느새 내 앞으로 훌쩍 앞서 나아간다. 살아가면서, 그런 경험을 할 날이 어디 수영장에서뿐이겠는가. 경험하고 또 경험하고 또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남과 나를 비교해, 스스로를 자책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걸 깨달으면서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간다.

수영이 끝난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에 가면서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너와 비교해라. 다른 사람이 너보다 수영을 잘 하고 못 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제의 너와 비교해 오늘 더 낫다면, 그걸로 충분히 자랑스러운 거다."

내가 아이에게 이 말을 한 건 캐나다의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이 쓴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강주헌 옮김, 메이븐)`의 한 구절이 기억나서였다. "내일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면이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남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오로지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오늘 어떤 선택을 해야 내일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지 그 답은 나만이 알고 있다. (중략)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현재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당신과 비교하라."

그 책의 그 구절은 내게 `정체성`의 문제로 읽혔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건 내 정체성의 토대를 남에게서 찾는 거다. 수영을 남보다 잘하면 `나는 수영을 잘하는 아이`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반면 수영을 못하면 `나는 수영을 못하는 아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만약 `어떤 일에 남보다 못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면 그 일에 흥미와 의욕을 잃는다. 어차피 열심히 해봐야 나보다 그 일을 잘하는 다른 누군가가 인정과 칭찬을 독점할 것만 같다. 아무리 노력해봐야 나는 그의 어깨에 가려 눈에 띄지 않을 거 같다. 그러니 그 일에 의욕을 잃는다. 뭔가 다른 걸 해야 할 거 같다. 하고자 하고, 하고 싶어 했던 일을 중단하게 된다.

설사 `어떤 일을 남보다 잘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져도 대개 결과는 마찬가지다. 단지 의욕을 잃는 시점만 늦출 뿐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내가 아무리 어떤 일을 잘해도 나보다 훌쩍 앞서가는 사람을 꼭 만나기 마련이다. 그것도 여럿을 만나게 된다. `나는 이 일을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어. 나는 못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빠져들어간다. 지금껏 받은 관심과 인정은 작은 동네 구석에서나 가능했다는 걸 느낀다. 관심과 인정은 타인의 몫 같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의 토대를 남에게서 찾지 않는 사람은 다르다. 그는 남보다 잘한다고 해서 수영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남보다 못한다고 해서 수영을 그만두려는 것도 아니다. 남과의 비교는 그에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에 집중한다. 내가 남보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고유하다는 건 안다. 자신이 우월한 존재는 아니지만, 특별한 존재라는 건 안다. 그래서 자신만의 고유한 소망과 욕구, 삶의 의미를 인지한다. 바로 거기에서 자기 정체성의 토대를 찾는다. 수영을 예로 들면 `나는 수영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 또는 `수영을 즐기는 사람`, `수영이 내 삶에 의미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수영을 하는 것이다. 수영을 하는 이유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발전에 집중한다. 남보다 잘 하는 것보다는 자기 정체성이 향상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남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게 된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나가 됨으로써 `나`라는 존재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나의 인생을 살아간다. 반면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면 결국 남이 바라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자기 정체성의 근거가 남에게 있기에 삶의 기준을 남에게 두고 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아이에게 "수영장에서 누군가 너를 앞지르려고 하면 그냥 보내주어라. 너는 너 자신에게 집중해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말해주었다. 살다 보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필연이다. 그땐 그 사람을 앞으로 보내주면 된다. 그의 앞에 서겠다고 바둥대봐야 소용없다. 그의 실력과 재능은 내 앞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와 나를 비교해 실망하고 내가 가던 길을 멈추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나보다 앞서는 사람은 계속 만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남과 비교해 실망하고 가던 길을 멈추는 건 어리석다. <출처=mage by Peggy und Marco Lachmann-Anke from Pixabay>


중요한 건, 걷던 대로 계속해서 길을 가는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이 있어 충만감을 느낀다면, 그 발전을 에너지 삼아 계속 갈 수만 있다면, 그 길은 자기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큰 산은 아니더라도 작은 산에는 오를 수 있다. 만화가 이현세의 글이 기억이 난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중략)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 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 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인생에서 굳이 에베레스트에 오를 필요 없다. 동산의 작은 언덕만으로도 삶은 의미가 있다. 나는 오늘도 작은 언덕에 오를 채비를 한다. 정기적으로 규칙적으로, 게으르지 않게.

[김인수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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