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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비보이 실종사건 “비보잉 정책의 체계적 지원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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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5. 15:10648 읽음

인터뷰 이준학 갬블러크루 팀장
김아영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연구원

갬블러크루 이준학 팀장
1980년대 미국의 흑인 하위문화로 시작해 2000년대 초 한국에 안착한 비보이 문화. 일찍이 영국의 문화학자 딕 햅디지(Dick Hebdige)는 하위문화를 ‘저항’의 형식으로 규정했지만, 한국의 비보이들에게 그가 말한 하위문화의 본질은 본래 없었을 수도 있다. 세상에 대한 반감, 갈등과 반목보다는 그저 춤이 좋아서 시작했고, 한눈팔지 않을 만큼 순수했던 이들. 세계 1등 타이틀과 함께 한때 한때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독차지했으나,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의 비보이를 다시 말한다.
대한민국 비보이 실종사건, 기원과 맥락

최근 10년 간 한국 비보이의 활동 양상이 궁금하다.
대한민국 비보이 문화의 전성기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다. 2010년 이후엔 쇠퇴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댄서들도 많았고, 비보이 아카데미도 활성화됐었다. 세계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했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자주 다뤘다. 댄서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많았고, 광고 의뢰나 의류 협찬도 줄을 이었다.

국민은행 CF에 비보이가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 1등이 세계 1이런 카피였다
그 CF는 2006년에 나왔다. 그 이전에 2004년 모토로라 스핀모토, 애니콜 가로본능 광고가 있었고, 이듬해에는 동아제약 에너젠 광고가 등장했다. 박지훈, 신규상, 김연수 등 갬블러크루 멤버들이 모델이었다. 국민은행 CF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김연아 선수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방송, 광고 영역은 댄서들이 스스로 개척하기 어려운 분야다. 이는 연예기획사와 계약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2007년엔 필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이 필라글로벌을 인수하면서 2년간 겜블러크루와 전속계약을 하기도 했다. 윤 회장은 한국에서 글로벌기업을 인수한 첫 번째 인물이기도 했고, 비보이와의 광고가 그의 파워리더십과도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이후 나이키, 푸마와 같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과도 CF를 제작했다. 지자체 행사 참가 문의도 쇄도했다.

2006 KB 국민은행과 갬블러크루 김연수의 콜라보 광고

비보잉의 원산지는 미국 흑인들의 하위문화로 알고 있는데, 좀 더 정확한 기원을 알고 싶다.
비보이 문화는 1980년대 국내에 유입됐다. 뉴욕 브롱스에 있는 흑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시키고 이를 알리고자 형성된 문화다. 사실 비보이 댄스의 시초는 ‘브레이크댄스’다. 가사 없이 반복되는 노래 간주(Break)가 심심하게 느껴지니까, 여기에 춤을 접목한 것이다. 비보이를 ‘브레이크보이’, ‘비트보이’로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R.ef, T.I.P, 가수 MC몽이 소속되어 있던 피플크루가 이른바 비보이 1세대로 등장했고, 이태원의 유명 나이트클럽인 ‘문나이트’ 에서 비보이 문화가 활성화됐다. 당시에는 춤을 배울 수 있는 자료가 너무도 희귀했다. 춤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미국 댄스 비디오를 국내에 유입시켰고, 이 비디오가 전국에 퍼져나갔다. 그때 비디오를 선생처럼 모셨던 1세대들이 급기야 자신들의 춤을 담은 비디오를 국내에서 정식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전국 각 지역에 비보이 팀이 형성된 것도 그즈음이다.

한국과 다른 나라의 비보이 문화를 비교한다면?
미국이 비보이 종주국이자 본토다. 미국 댄서들만의 느낌이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오리지널인데, 니들이 뭐라고 따라하는 거야?’ 이런 마인드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아이러니한 건, 이들은 본업이 따로 있다. 회사를 다니거나 흔히 전문직으로 일컫는 회계사도 있다. 춤은 취미처럼 즐기지만 세계 최고다. 반면 한국 댄서들은 춤에 올인한다. “멍청하게 왜 이것만 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미국 댄서들이 한두 시간씩 즐기면서 연습할 때, 우리들은 10시간 넘게 춤만 춘다. 베틀대회에서 지면? 운다(웃음). 왜 졌는지 몇 날 며칠 비디오를 틀어놓고 분석한다. 반면, 미국 댄서들은 쿨하다. “아, 졌구나? 다음에 이기면 되지. 맥주나 한 잔 하러 가자.” 지금 생각해보면 촌스럽지만, 처음 세계 대회에 출전했던 2003년만 해도 한국 댄서들이 김치를 어마어마하게 챙겨갔는데, 해외 비보이들이 그걸 보고 ‘김치파워’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김치파워로 무장한 악바리 근성’이 오늘날 한국의 비보이를 만든 동력이 아닐까. 이제 김치 대신 초청국의 음식을 부담 없이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생겼지만, 악착같은 건 여전하다.

세계대회에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는데, 해외 진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2001년을 기점으로 비보이계 프로와 아마추어가 나뉘게 된다. 당시 리버스크루, 난장판, 드림스, 아웃사이더, BL 등이 생겨났고, 부산을 거점으로 확산됐다. 2001년에 푸마가 후원한 비보이 대회가 열렸고, 우승자에게 독일의 세계 비보이 축제인 ‘베틀 오브 더 이어’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 한국 댄서들이 해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헤드스핀’과 같은 간단한 동작을 보고 “대체 뭐 하는 거냐”고 반문했지만, 이젠 대중들도 헤드스핀 같은 기술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인식하는 편이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순)2005년 일본 오키나와, 2013년 프랑스 세계대회, 2013년 첼스 배틀 한국대표선발전 출전, 2014년 LG유플러스 광고에 출연한 겜블러크루

소위 그렇게 잘 나갔었는데, 발전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가 뭘까.
당시의 영광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한편으론 욕심도 컸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게다가 다른 장르에 비해 역사가 너무 짧다. 연극이나 무용계에는 흔히 “선생님”이라 칭할 수 있는 선구자들이 있다. 그러나 댄서 중엔 ‘선생님’이 거의 없다. 스트리트 댄서 출신 중 연장자 연령은 많아야 40대 중반이다. 이들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은 나이에 비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40대 중반의 스트리트 댄서 출신의 선생’이 기득권 세대에서는 힘을 발휘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게다가 무용, 연극과 같은 협회도 없어서 발전이 더디다.

비보이 전성시대 이후, 지자체와 함께 서다

서울시 대표 비보이단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벌써 4년째다. 비보이단을 만든 서울문화재단의 취지는 “문화적 소외계층과 유소년들의 건전한 여가활동, 재능발현의 기회 제공”이었다. 반응이 어떤가? 
반응은 무척 좋다. 비보이 공연은 대개 장미축제, 물축제 등 각종 지역 축제와 연결된다. 서울시에서 자치구에 비보이단 운영 관련 공문을 발송하면 자치구에서 검토 후 필요 시 협력해 공연을 연다. 지역축제 운영자들은 ‘서울시 대표 비보이단을 활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공연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고, 우리 댄서들은 더 많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경험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휴지를 매입해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을 내어주기도 한다. 댄서들에게 고마운 존재다. 

서울시 대표 비보이단으로 활동 중인 갬블러크루

다른 사례도 있나? 다른 시와 협력한 비보이 단체라든지.
‘진조크루’와 부천시, ‘퓨전엠씨’와 의정부시의 협업이 좋은 사례다. 특히 진조크루는 2012년 부천시 문화예술 홍보대사로 위촉된 이후, 부천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2015년에는 서울에 있던 소재지를 부천시로 옮겼다. 시내 6층 건물의 5층 전체를 임대해 연습실과 사무공간을 얻었고, 연마다 지원금을 받고 있다. 부천시의 문화교육, 공연 사업도 대부분 진조크루가 도맡고 있다. 전주를 대표하는 ‘라스트포원’도 있다. 멤버 모두가 전주 출신이고, 앞서 말한 독일 ‘베틀오브더이어’에서 우승하면서 2005년 라스트포원 거리도 조성됐다. 얼마 전 전주 비보이그랑프리가 11회를 맞았고, 부천 세계비보이대회(BBIC)도 열렸다. 여러 지역을 대표하는 비보이 단체 조성과 육성 정책은 무척 중요하다. 다만 아직까지도 문화공연이 서울에 편중되어 있어 아쉽다. 더 많은 비보이 단체들이 지역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내로라하는 댄서들을 모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었다.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법 제정을 계기로 장관 주재 하에 열린 간담회였지만, 체감할만한 변화는 없었다.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됐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당시 좌담회도 사단법인 한국힙합문화협회가 자리를 마련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의 관심은 있어왔지만, 사실 협회가 비보이 문화 발전에 더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그런 노력 덕분에 대중들이 비보이 문화를 단절 없이 즐기고 있다고 본다.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남은 과제들

대중들은 즐기는 수준에 올라왔다지만, 비보이들은 마냥 즐길 수만은 없지 않은가. 
10대 비보이들이 나이가 들면 군대도 가야하고, 결혼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차비, 식비 같은 기초 생활비마저 걱정하는 댄서들도 다수다. 목숨 걸고 춤만 춰서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것이다. 더 큰 위기는 일본, 중국의 성장세다. 문화강국 일본이라지만, 과거 한국 댄서들이 모이면 이런 말을 했다. “2003년부터 향후 10년 동안 우린 못 따라 올 거다.” 하지만 이젠 옛날 말이다. 일본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한국 댄서들을 초빙해 자국 비보이 꿈나무들에게 몇 달 간 댄스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미국, 유럽 최고의 댄서들을 강사로 임명해 정기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이렇게 교육 받은 일본, 중국 수료생들은 이미 유튜브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젠 라오스에서도 비보이 천재가 등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부차원의 비보이 양성 교육이 전무하다. 안정적인 지원과 교육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흔히 ‘해외 진출’을 얘기하지만, 국내에서의 인정과 인기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방법이 있을까.
비보이도 축구 프로리그처럼 리그전을 열자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울산 갬블러크루, 서울 진조크루, 대구 TG브레이커스 이런 식으로 지역 대표 댄스팀을 만들고, 기업과 매칭해서 꾸준히 리그전을 열자는 제안이다. 비보이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다. 하지만 마냥 기업 후원을 요구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기업에서도 비보이 문화에 대한 대중적 수요가 있어가 투자를 할 게 아닌가. 결국 자금 조달 방식이 공공지원으로 향하는 추세다.

활동 예산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공공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나.
10~15% 정도다. 나머지는 연극, 음악 등 타 분야들과 나눠 갖는다. 문제는 지원을 담당하는 산하기관에서도 장르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거다. 지원서를 열면 제일 먼저 체크하는 게 ‘지원 유형’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막힌다. 대부분 음악, 무용, 전통문화, 시각예술 이런 방식으로 구분되어 있고, 스트릿댄스는 아예 없다. 일반예술, 대중예술 등의 구분방식도 있지만, 너무 포괄적이다. 그나마 다원예술이 적합한데, 이마저 비보이, 서커스 등 여러 장르가 혼재돼 있어 지원 가능성도 떨어지고, 받더라도 적은 금액을 나눠 갖는 꼴이 된다. 어떤 때는 그냥 ‘무용’에 체크하고, 직접 괄호를 넣어 “스트릿댄스 비보이”라고 적어 넣기도 한다. 선정될 확률은 열에 한둘이다. 더구나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는 심사위원들 중 비보이 출신 심사위원은 한 명도 없다. 우릴 지원해야 할 이유가 줄어드는 것이다.

M.net <댄싱9>과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얼마나 도움이 됐나.
매우 큰 도움이 됐다. 일시적이지만 반향이 뜨거웠다. 시즌 4가 제작되면 갬블러크루 멤버들 중 누가 나갈지 이미 정해놨을 정도다(웃음). <댄싱9>이 3회 이상 지속될 수 없었던 이유는 방송 초창기에 실력파 댄서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모던댄스, 발레, 댄스스포츠 등 분야별 춤꾼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시청자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려면, 이전 시즌보다 더 뛰어난 댄서들을 출연시켜야 하는데, 제작진들 입장에서 그게 부담일 게다. 그에 비하면 <쇼미더머니>는 신인 랩퍼 발굴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댄서들이 모이면 우스갯소리로 이런 얘기도 한다. “우리가 20년 동안 랩 했으면 뭐라도 됐을 텐데, 괜히 춤췄다.” 랩이나 노래는 가사를 통해 의미가 전달되지만, 춤은 오로지 동작으로만 느낌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댄싱9>에 출연한 겜블러크루 멤버들(왼쪽부터 김기수, 박인수, 신규상) * 출처: M.net 홈페이지

비보이가 예전처럼 주목받는 한류 콘텐츠로 자리매김 하려면, 무얼 준비해야 할까.
인재 양성이다. 현재 한국 비보이 연령이 너무 높다. 10년 전만 해도 원정 배틀에 나가서 조를 배정받으면, ‘A조~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브라질. 어? 우리 이기겠는데?‘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 온 몸에 철심 투성이인 30대 초중반의 나이지만, 여전히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부에서는 비보이가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한류 문화라고 내세우지만, 댄서들은 한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류로 내세울 만큼 잘난 게 있나. 우린 그저 대회 나가서 우승하고 즐겁게 춤추는 게 목표다. 연습할 수 있는 공간,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조건이 보장됐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교육 시스템 구축이다. 해외 각국에서 이뤄지는 스트릿댄스 장르에 대한 정부 지원, 꾸준한 인재 양성이 무서울 정도로 격차를 불러오고 있다. 후배들의 활동 기반이 마련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하루라도 빨리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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