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3법'에 맞선 집주인들 "세입자 전세대출 동의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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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7.30. 오후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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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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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내용으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르면 3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 29일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상가의 부동산 중개업소 아파트 매물 정보가 비어있는 모습. [뉴시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다가구 주택에 전세를 사는 곽 모(31)씨는 30일 집주인에게 전화했다가 당혹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4층 주택의 1층에 사는 곽 씨는 집안에 하수구 냄새가 심해 지난주에 집주인에게 보수를 요청했다. 집주인은 이날 보수업체와 방문하기로 했지만, 오지 않았다. 집주인은 곽 씨에게 “임대차 3법 때문에 속 시끄러운데 냄새나서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 곽씨는 “그간 화장실 타일 깨진 것도 흔쾌히 수리해줬는데 태도가 돌변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아파트를 전세 놓은 황 모(44) 씨는 30일 만나기로 했던 은행 직원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신혼부부인 세입자가 추가 전세대출을 받는다며 황씨에게 질권설정 동의를 부탁했고 이날 은행 직원과 만나 서류에 도장을 찍기로 했다. 황씨는 “2년 전 막 완공한 아파트라 잔금 낸다고 전세를 싸게 내놨는데 기존 전세계약까지 소급적용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돈 없다며 나가주면 고마운 상황인데 세입자를 배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집주인 "전세대출 동의 안해", 세입자 원상복구 의무 강화될 듯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 상한제(5%)가 이르면 31일 시행되면서 전‧월세 시장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집주인은 분노하고 세입자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집주인들은 벌써 규제 틈새를 찾아 나섰다. 대표적인 게 전세대출 동의다.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받으려면 집주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신규 대출은 물론이고 만기 연장 시 추가 대출을 받을 때도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공인중개사는 “계약서상 특약으로 전세대출에 협조하겠다는 문구가 없으면 사실 집주인이 꼭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자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세입자 원상복구 의무를 엄격하게 따지겠다는 집주인도 늘고 있다. 벽에 못 하나 받을 때도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예컨대 에어컨을 설치하면서 배관 때문에 구멍을 뚫은 것을 집주인이 문제 삼는다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생활하면서 생긴 손상이나 마모에 대한 ‘통상의 손모’가 인정되긴 하지만 정확한 규정이 없어 논란의 여지가 크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3년간 거주한 최 모(40) 씨는 “월세 살던 집을 나갈 때 못 자국 개수까지 적힌 체크리스트를 들고 와서 30분 넘게 확인하고 비용을 제했다”며 “한국도 그런 상황이 되게 생겼다”고 말했다.

세입자는 삼중고에 처했다. 당장 집수리를 요구하기가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법에 ‘임대인의 수선 의무’가 있지만, 세입자가 거주하기 힘들 정도의 파손‧장해에 대한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주택임대사업자인 성모(58)씨는 “세를 줬어도 내 집이고 세입자가 자주 바뀌는 것이 싫어서 때마다 도배‧장판 해주고 수리 요청은 다 들어줬는데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라진 전세 매물에 재계약시 반전세 요구도
전세 매물은 씨가 말랐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아파트는 3710가구 대단지인데도 전세 매물이 3개뿐이다. 성산동 중개업소 관계자는 “그나마도 집주인이 들어올 거라며 1년 3개월만 사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도시8단지 스타힐스(1389가구)도 전세 매물이 3개뿐이다.

특히 올해 입주 2년 차를 맞은 새 아파트의 사정이 좋지 않다. 2년 전에 2018년은 45만 가구의 입주가 쏟아지면서, 전국 아파트 전셋값(-0.65%)이 10년 만에 가장 크게 떨어진 해였다. 새 아파트는 잔금을 내야 하는 집주인이 전세를 싸게 내놓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전셋값이 쌌다는 의미다.

그러나 임대차 3법 쇼크가 오면서 2년 전 입주 아파트의 전셋값이 폭등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9510가구)는 2년 전 84㎡(이하 전용면적) 전셋값이 5억원 선이었다. 현재는 10억원까지 치솟았다. 현재 이 아파트 몸값은 19억원 선이다.

전셋값을 올려주고 재계약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집주인이 반전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헬리오시티 84㎡형에 반전세를 살려면 보증금 5억원에 월 160만원을 내야 한다. 가락동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 입장에선 10억원을 받을 수 있는 전세를 반값에 유지할 이유가 없다”며 “본인이나 가족이 입주해서 2년 살고 다시 전세 놓겠다는 집주인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는 임대차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데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불협화음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오원석 기자 chj80@joongang.co.kr

임대차 3법 Q&A
토론도 홍보도 없는 입법에 임대차 3법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다음은 쟁점 사안에 대한 일문일답.


Q : 현재 전세 거주 중으로 계약을 한 차례 갱신해 2년 이상 살고 있다.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나.
A : "요구할 수 있다. 이전의 계약 갱신 여부와 관계없이 법 시행 뒤 한 차례 2년 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


Q : 10월 전세 계약이 끝난다. 계약만료 3개월 전인 7월에 집주인이 이미 재계약 의사가 없다고 통보했다. 계약을 연장할 수 있나.
A : "가능하다. 법 시행일을 기준으로 기존 계약이 1개월 이상 남아있다면 세입자는 계약 만료 시점 한 달 전까지 계약연장 의사를 통보하면 된다."


Q : 집주인이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다른 세입자를 받았다. 이런 경우 계약 갱신 요구가 가능한가.
A : "그렇지 않다. 기존 세입자는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없다. 새로운 세입자가 보호받게 된다."


Q : 집주인이 개정법 시행 전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집을 팔았다. 기존 세입자가 보호받을 수 있나.
A : "아니다. 매매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새 주인이 직접 거주하지 않고 임대한다면, 기존 세입자는 새 집주인에게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Q : 현재 전세 계약이 끝나고 새집에 전세로 들어갈 계획이다. 이 경우에도 5%룰로 보호받을 수 있나
A : "새로운 계약에는 5%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Q : 집주인이 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본인 거주만 사유가 되나.
A : "본인 및 직계존속ㆍ비속의 거주일 경우 해당한다. 기존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실거주 사유 증명을 요구할 수 있다."


Q : 기존 세입자의 갱신요구를 거절하고 본인이 실거주할 경우 기간은 얼마인가.
A : "2년이다. 이 기간을 채우지 않고 새 세입자를 들이면 기존 세입자가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 있다."


Q : 임대료 5% 상한의 계산방식은.
A : "집주인이 50만원 월세를 사는 세입자와 재계약하면서 월세를 60만원으로 올릴 수 없다. 5%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조례로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5%보다 더 낮출 수도 있다. 정부 등록임대주택 사이트 ‘렌트홈’에서 임대료 인상률 계산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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