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대신 볼펜으로 찍었다고 소송까지… "건설사 진흙탕 싸움 점입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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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하던 조합들이 시공사와 마찰을 빚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조합에서는 이미 선정한 시공사를 바꾸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조합이 내부 구성원의 뜻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거나 시공사끼리 진흙탕 싸움을 한 결과다. ‘시간이 곧 돈’인 정비사업 특성상 조합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평구 갈현 제1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설계 투시도. /서울시 제공

2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 갈현1구역 재개발조합은 지난 26일 긴급대의원회의를 열고, 8월에 냈던 시공사선정 입찰공고를 무효로 하는 결의를 진행했다.

갈현1구역은 갈현동 300번지 일원 23만8580㎡에 지하 6층~지상 22층 32개 동 4116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공사비만 9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시공사들이 눈독을 들이던 곳이었다.

앞서 11일 마감된 갈현1구역 시공사 입찰에는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이 참여했다. 하지만 조합은 현대건설이 조합 요구 사안인 최소이주비, 설계도면 등의 내용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긴급대의원회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입찰공고 무효화와 현대건설이 낸 1000억원의 입찰보증금 몰수, 현대건설의 입찰 참가 제한 등의 안건이 통과됐다. 유례를 찾기 힘든 강력한 조치가 단 며칠 만에 이뤄진 셈이다.

갈현1구역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조합이 입찰 이후 곧바로 사업제안서에 문제가 있었는지 파악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합의 부주의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현대건설의 경쟁자인 롯데건설이 대의원회 개최를 위한 동의서 징구를 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일 경우 건설사 간의 과열 경쟁이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1일 시공사 재선정 절차에 나선 구로구 고척4구역도 시공사의 과열 경쟁이 사업에 영향을 미친 사례다. 시공사 선정 당시 정해진 기표용구인 도장이 아니라 볼펜으로 의사를 표시한 투표용지를 유효표로 봐야 하는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이 대우건설과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고척4구역은 고척동 148번지 일대 4만2207.9㎡ 면적에 지하 5층~지상 25층 아파트 10개 동 983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볼펜으로 표시한 게 유효표로 인정된다면 대우건설이 과반수 찬성표를 얻어 시공사로 선정될 상황이다. 하지만 조합은 총회에서 무효표로 보고 시공사 선정을 부결처리했다. 이후 대우건설이 시공사 선정 안건 부결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밝히자 조합은 곧바로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받아들였다. 오락가락한 셈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를 문제로 삼아 법원에 도급계약 체결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지난 8월 현대엔지니어링의 손을 들어줬다. 사업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은평구 홍은13구역 재개발조합도 11일 임시총회를 개최해 시공사 교체를 결정했다. 이곳은 중견건설사인 라인건설이 2017년 시공권을 따내며 서울 도시정비사업 시장에 처음 진출한 곳이다.

조합은 사업비 대여와 마감재 변경 등에 대해 시공사와의 업무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시공사 교체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정비업계에선 대형건설사들이 뒤늦게 홍은13구역을 눈 여겨보면서 시공사 흔들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정비사업 수주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조합이 시공사에 요구하는 게 많아지는 상황"이라면서 "특히 시공사끼리 경쟁이 격화되며 이런 갈등을 오히려 유발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필요없는 분쟁으로 사업이 지연되면 가장 손해를 보는 건 조합원"이라고 덧붙였다.

[이진혁 기자 kinoey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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